여름 정원은 늘 생동감이 넘쳐난다. 이곳저곳에서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느라 바쁘다. 하얀색 머리카락을 동그란 모양으로 꽃꽂하게 펼친 데이지꽃도 연신 생글생글 웃는다. 샛노란색의 작은 얼굴은 마치 갓 태어난 햇병아리들 같다. 그 모습이 순진무구하다. 많은 꽃들 사이에 존재감이 유난히 드러나는 녀석도 있다. 스윗피꽃의 위력은 대단하다. 이름값을 톡톡히 하려는지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그 향기가 정원 안에서 흘러넘친다. 줄기는 다른 어떤 꽃대들보다도 우월하게 단단하다. 자신의 고고함을 잃지 않으려 연약한 덩굴손은 공중을 더듬으며 계속해서 뻗어간다. 진한 달콤한 꽃향기는 어느덧 여름 정원을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 소박한 듯, 화려한 듯 그 어느 중간쯤 되어 보이는 모습은 꽤나 매혹적이다. 당장이라도 만발한 꽃을 한 아름 잘라 커다란 부케를 만들어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은 충동까지 일으킨다.
한쪽에서는 키가 엇비슷한 디기탈리스가 입을 쭉 내밀며 노래를 부른다. 연한 파스텔톤의 종 모양이 줄지어 매달린 꽃의 형태는 무척 사랑스럽다. 뉴질랜드에서 맞은 첫 해 여름은 잊지 못할 계절이었다. 첫사랑이라도 만난 듯 디기탈라스라고 불리는 꽃을 처음 알게 된 때이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귀여운 모양과 꽃잎 안쪽에 박혀있던 무늬의 섬세함은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인간세계에서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환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인간이 함부로 만지면 절대 안 되는, 숲의 존재들만 알고 있는 듯 신비로움에 꽃 잎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키가 높이 솟아오른 디기탈라스 옆에 갖가지 색의 금어초가 줄지어 서있다. 금붕어 입처럼 오므렸다 벌렸다 즐거운 수다들이 오고 간다. 그 사이에 끼고 싶어 안달을 내는 라벤더는 숨죽여 가만히 곁에 머문다.
중천에서 여름해가 쨍쨍 내리쬐는 오후, 파란 하늘에서 작은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든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고민하다가 우산 모양을 한 딜꽃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한참 동안 둘 만의 비밀 이야기가 소리 없이 들린다. 바로 옆에 있던 가지꽃이 살랑살랑 말을 건다. 우아한 연보라색 치마를 곱게 입고서는.
‘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은 절제하는 습관에서 나온다. 이런 능력은 원래 누구나 타고났으나 현대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왜곡되고 잃어버린 채 산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얼마간의 유쾌함, 사랑, 그리고 서정성 같은 것들이다. 이런 작은 기쁨을 이른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눈에 띄지도 않고 일상생활 속에 흔하게 흩어져 있어서 일에만 열중하고 수많은 사람의 둔한 감성으로는 거의 느끼지 못하며 돈도 들지 않는다.
고개를 높이 들어라, 친구들이여! 한번 시도해 보라. 어디서나 한 그루의 나무 또는 적어도 한 줌의 멋진 하늘이 있다. ‘
헤르만 해세 [ 정원에서 보낸 시간] 중
단 한 번도 똑같지 않은 하늘과 바람, 비가 내려 축축해진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 세상에서 가장 섬세한 무늬를 만드는 거미들, 어둑하고 습한 곳에서도 한없이 좋아하는 달팽이들, 모두 살아 숨 쉬는 작은 기쁨들이다.
삶의 빛은 거대한 변화가 아니라, 매일 피고 지는 꽃잎 하나의 고요한 떨림들 속에 숨어있다는 것을.
일러스트
by Eunjoo D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