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워크 위에서 주짓수 연습
주말부부의 주말일상
비가 내려 해 질 무렵처럼 느껴지는 오후 3시, 산책 겸 저녁식사거리도 살 겸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갔다.
줄지어 켜져 있는 붉은 불빛들 사이 초록색 불빛을 찾아 어둠 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주차를 했다.
무빙워크에서 나는 항상 그의 앞에 선다. 아이는 내 손을 잡기도 하고 남편의 손을 잡기도 하고.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천천히 움직이는 무빙워크 덕분에 반대편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갑자기 불쑥 커다란 팔이 내 어깨를 지나 목을 감쌌다. 그리고 나선 약간의 목 졸림이 느껴졌다.
윽..
나를 상대로 백허그를 가장한 주짓수 연습이다.
무빙워크의 약간 경사진 각도가 목조르기 딱 좋은 각도다.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과 함께 악당한테 주짓수를 써먹어야지 왜 나한테 연습하냐고 물었다.
지금 당장은 악당이 없고, 악당이 나타났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연습을 해야 된다고 했다.
아무한테나 막 할 수 없으니 연습할 대상은 본인의 와이프 말고는 없다고 한다.
맷돌을 돌리려고 해도 돌릴 수가 없다.
"내가 오빠 곁에 있는 것에 익숙해지면 안 돼. 주말에만 보는데 아끼고 사랑해 줘야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할 말을 찾아냈다. 그랬더니 이렇게 얘기한다.
"어차피 깜냥이는 내 곁에 있을 걸 알아. 나를 떠나지 못할 거라는 걸."
거기에 더해서 나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찬 말투과 표정까지.
맞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눈을 땡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나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깜냥이를 신뢰하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신뢰?!
나오는 건 다시 또 웃음뿐.
나의 대본은 갑자기 하얗게 됐다. 반박할 대사를 치지 못했다.
그저 바라보며 웃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렇게 얘기했어야 했다.
잡은 물고기는 스스로 알아서 어항 속에서 잘 자라는 게 아니야.
수온도 적절해야 하고, 밥도 먹을 만큼의 적당량을 공급해줘야 하고, 수질관리도 해줘야 해. 더구나 나는 물고기 중에서도 키우기 까다로운 물고기야. 알아서 잘 자랄 것이라고, 내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익숙해지면 안 돼. 익숙함에 속아서는 안 돼.
주말이 지나고 평일의 시작. 주말에 다시 만나는 날까지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논리를 연마해야겠다. 나는 태권도 1단의 유단자다. 목졸림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술도 유튜브에 검색해 봐야겠다.
마트 안의 수많은 사람들 중, 우리 부부를 우연히 스쳐가듯 본 누군가는 남편이 아내를 아끼고 사랑해서 애정표현의 스킨십을 하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유일한 주짓수 연습대상일 뿐이다. 오해하지 마시길..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