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나리자 Jul 25. 2023

두 번째 이슬이 비쳤다.

나의 첫 출산기

맞벌이기도 하고 주말부부인 우리는 함께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을 주말에 해야 했다.

토요일 출산 전 마지막 검진이 있었다. 다음 주면 출산 예정일이 돌아오지만 아이는 전혀 나올 기색이 없다고 하셨다. 다음 주말에도 같은 상황이라면 유도분만을 해야 한다고 했다. 먼저 출산해 본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유도분만은 힘만 들이다가 결국엔 수술로 가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병원을 다녀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으로 내려간다. 그리고는 12층 아파트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으로 내려가고 오르기를 두 번 한다. 혹시나 갑자기 아이가 훅 나올 것 같아서 거기서 멈춘다.


토요일 계단 오르기 운동 덕분인지 일요일 아침 이슬이 비췄다. 왠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바로 친정으로 갔다. 엄마는 내 배를 보며 아직은 아닐 거라며 안심시킨다. 사람들이 아기가 나올 때쯤이면 배가 밑으로 처진다고들 했는데 내 배는 크게 앞으로만 부풀어 있었다. 엄마 말대로 진통의 기미는 전혀 없다. 남편은 그날 먼저 출근지로 내려가고 엄마와 여동생 나는 운동 삼아 남산에 올라갔다. 남산공원을 열심히 산책하면서 우리 세 모녀는 열심히 웃고, 열심히 떠든다. 나는 언제 출산의 고통을 걱정했냐는 듯이  즐겁게 산책을 했다.

월요일 아침, 두 번째 이슬이 비쳤다.

그날은 8월에 출산 예정인 내 베프와 약속이 있었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오늘일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연속 이슬이 비췄는데 친구를 만나러 가도 될지 물었다.

“응 네 얼굴 보니까 오늘 안 나와. 나가서 놀다 와”     

‘그래, 아직 아닌가?’ 쿨하디 쿨한 엄마의 말에 안심하고 외출했다. 점심에 우리 만삭 임산부 둘은 동그란 큰 배를 마주 하고 빵집에 앉아 신이 나게 먹고 떠들었다. 우리의 겉모습은 임산부지만 우리의 마음은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어찌하다 보니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했다. 한참 떠들고 빵집에서 나오는데 배가 살짝 아픈 것 같다. 느낌이 묘하다. 생리통 같기도 하고 화장실을 가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엄마가 오늘은 아니라고 했으니 좀 더 참아보기로 한다. 우리는 동네를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을 했다.

오후 세시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보다 배가 아픈 게 조금 강도가 높아진 듯했으나 이 정도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엄마는 외출하고, 새벽에 출근했다가 오후 일찍 퇴근하는 동생이 돌아왔다. 나도 피곤했는지 잠이 든 동생 곁에 같이 누워 낮잠을 잤다. 6시쯤 엄마가 밥 먹으라고 깨운다. 아 일어나니 배가 더 아파온다. 안 되겠다 싶어 어서 밥을 먹는다. 병원에 가면 밥을 안 줄 테니 미리 먹는 게 좋겠다. 그리곤 병원에 전화를 했다. 진통 주기가 짧아졌다고 하니 병원으로 오란다. 아 이제 병원에 가야 하는구나. 나는 샤워를 한다. 동생에게 준비해 놓은 출산 준비 가방을 챙기라고 지시한다. 샤워를 하고 동생과 택시를 타러 나왔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전에도 생각해 두었지만 출산 시 병원엔 같이 안 가는 게 나을 거라 결론지었었다. 친정아빠도 지방 출장 중이셨다. 동생과 집 밖을 나오니 비가 온다. 다행히 택시가 바로 잡혀서 병원으로 향한다. 배가 많이 아파온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진통이 있어 병원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병원에 간다고 아이가 바로 나오는 게 아니니 상황보고 다시 연락하면 그때 출발하라고 전한다. 남편은 서울에서 2시간 거리의 대전에 있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니 8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운을 갈아입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관장을 한다. 이거 뭐 느낌 넘 괴상하다. 예전 자연분만, 병원에서 자연분만이 아닌 조산원을 이용하라던 친구가 보여 준 영상이 있었다. 진통이 시작되면 병원에서는 침대에 누워 있게 하고 배에 아이의 심장박동수를 체크하는 벨트를 채운다. 산모는 누운 자세로 진통을 느낀다. 하지만 조산원에서는 산모에게 밖으로 나가 좀 걸을 수 있게 해 준다. 남편에게 도움을 받으며 동네를 걷는다. 호흡법으로 호흡을 이어 가며 진통을 느끼면서 조금 더 걷는다. 진통주기가 좀 더 짧아지면 다시 조산원으로 들어간다. 관장을 하고 나오는 그 찰나에 그 장면이 떠 올랐다.

동생은 나와 떨어져 대기실에 있었고 네 개 정도의 침대가 놓인 방에는 나 혼자다. 나는 그 방을 빙빙 돌며 걷는다. 배가 아파 오긴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앞으로 6시간을 진통을 하리란 예상을 혼자 했다. 이렇게 걸어야 영상 속의 산모처럼 좀 수월하게 출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좁은 방을 천천히 걷고 있는데 간호사가 들어오며 깜짝 놀란다.

“산모님, 누우세요. “

나는 얌전히 침대에 눕는다. 배에 벨트를 두른다. 남편이 없어서 동생과 함께 왔으나 서류들을 내게 준다. 아무래도 나와 반대로 동안인 동생을 미성년자로 보는 듯하다. 무통주사를 맞을 것인지, 입원실이 특실만 남아 있어서 그곳을 사용할 것인지 등등 나는 진통을 하며 서류에 사인을 한다. 침대에 누우니 진통이 더 잘 느껴진다. 벨트로 체크하는 소리가 침대 옆 기계에서 들려온다. 소리가 빨라지면 배가 더 조여지며 진통이 심해진다. 진통을 하는 동안 옆엔 아무도 없다. 옆으로 돌아 누워 침대 난간을 잡는다. 올라와 있는 오른 다리가 덜덜 떨리며 힘이 주어지지 않는다.  ‘아, 이 진통을 적어도 6시간을 버텨야 하다니……. 시간이 가고는 있는 걸까?’

급하게 간호사가 오더니 아이가 태변을 누웠다고 한다. 좀 더 빨리 아이가 나와야 한단다. 힘을 주라고 한다. 친구들 중에  처음으로 아이를 낳았던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친구의 얼굴이 실핏줄이 터져서 말이 아니었다. 출산 시 힘을 하체로 줘야 하는데 얼굴로 줘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었다. 그 순간에 또 그 말이 생각난다. 나는 힘껏 하체로 힘을 준다. 몇 번 힘을 주다가 분만실로 이동한다. 너무 정신이 없고 아파서 계속 눈을 감고 있었는데 분만실 들어가서 침대를 바꾸게 되면서 눈을 떴다. 낯선 공간에 나를 둘러싼 사람들, 특이하게 생긴 분만실 침대에 누워 두려움이 생기려는 순간, 남편이 가운을 받아 입으며 분만실로 들어온다. 남편을 보니 마음이 한결 놓인다. 나중에 연락하면 오라던 내 말이 아무래도 그대로 믿으면 안 되겠다 싶어 바로 출발했다는 남편이었다. 남편이 들어오고 5분 만에, 병원에 들어온 지 2시간 15분 만에 나는 첫아이를 낳았다. 동글동글 귀여운 아가. 사실 영화처럼 아이를 낳은 그 순간이 그렇게 로맨틱하지는 않았다. 그저 내 배 속에 생명체가 자라나서 내 눈앞에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또 배가 시원해진 느낌도 있었다. 진통이 끝나니 정신이 말짱해진다. 무통주사도 없고 촉진제도 없이 낳아서 인가? 분만실에서 나와 잠시 혼자 있는 곳에 누워 있는데 동생이 들어온다. 자기가 분만실로 들어오려고 하는데 형부가 와서 다행히 남편이 탯줄을 자를 수 있었단다. 간호사들이 언니분 정말 대단하다고 무통도 못 놓고 진통이 오는데 소리 한번 안 질렀다고 칭찬했단다. 소리 질러도 아이가 안 나오다길래…

그해 여름 지독히 비가 많이 내려 우면산이 무너졌던 그때다.

2011년 7월 25일 오늘은 우리 큰 아이가 내게로 온 날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작가의 이전글 준비 없이 찾아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