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향이 아줌마

by 모나리자

아무리 사발면이 있는 옆집이 부자처럼 느껴졌어도 나에게 가장 부자는 숙향이 아줌마다.

숙향이라는 이름은 아줌마의 큰 딸 이름이다.

아줌마는 공마당 골목에 살았다.

아줌마와 엄마의 인연은 엄마 아빠의 인연이었다.

엄마의 바로 위, 넷째 이모가 어찌어찌 숙향이 아줌마를 알게 되었는데,

아줌마와 이모가 중매를 서서 우리 부모님이 만난 거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우리 자매는 성인이 되어서 듣게 되었고 우리는 이모를 욕했다.

엄마와 아빠의 잘못된 만남을 만들어 주었다는 우리만의 이유였다.


숙향이 아줌마는 알라딘의 지니 같았다. 아주 뚱뚱하진 않지만 덩치가 있었고,

살짝 그을린 듯한 피부 톤에 금색 링 귀걸이를 했다.

그 당시 아주머니들의 흔한 모습이었지만 아줌마의 포스는 한남동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아주머니 집은 골목 초입은 아니었지만 골목 첫 집이었다.

언덕을 올라와 공마당이 시작되면 오른쪽으로는 집들이 위치해 있었고

왼쪽은 공마당을 지나 언덕을 올라가는 길이었으므로 그 길의 밑부분은 옹벽이었다.

그리고 그 옹벽이 끝나는 부분에 숙향이 아줌마 집이 있었다.

어찌 보면 절벽에 지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 구조를 자세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그냥 3층 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숙향이 아줌마의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계단이 나온다. 즉, 골목 지면과 닿아 있는 1층은 없다.

옹벽 옆으로 대문을 만들어 공마당 윗길의 높이 한층 아래가 아줌마네 1층이다.

즉 대문은 지하 2층인 셈이다.

그 옆집은 계단으로 공마당 윗길까지 높이까지 올라가서 집이 있었다.

하지만 아줌마 집은 좀 달랐다. 난 이 다른 부분을 한참을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때부터 나의 공간에 대한 상상력이 점점 커졌으리라.


숙향이 아줌마 집에는 성인이 된, 대학생 두 명의 자녀가 있었고,

아줌마와는 완전 반대의 매우 말이 없는 아저씨가 계셨다.

그리고 같은 집에 살고 있지 않은 결혼한 아들과 딸이 한 명씩 더 있었다.

아줌마 아들의 딸, 즉 첫 손녀는 나보다 두 살 차이 밖에 안 났다.

즉, 아줌마의 거의 할머니 뻘이었다. 그래도 나는 엄마가 아줌마를 부를 때와 같이

숙향이 아줌마라고 불렀다.


숙향이 아줌마는 욕을 참 잘했다.

골목에서 아줌마의 욕을 안 들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다.

욕이 욕 같지 않은 일상 언어였다.

하지만 아줌마가 진짜 화가 나서 하는 욕이면 눈물이 쏙 빠지게 무섭기도 했다.

물론 나는 그런 욕을 듣지 않았다. 난 혼나는 게 싫었으니까.

외할아버지가 나를 우리 엄마의 딸이라는 이유로

나를 다른 외손주들과 다르게 신경 쓰고 좋아했던 것처럼,

숙향이 아줌마도 내가 우리 엄마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골목 어느 아이들보다 예뻐했다.

이는 아줌마의 이혼한 아들의 첫딸을 안쓰러워하는 마음과도 닮아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줌마가 억척스럽고, 급하고, 욱하는 성격이라고 종종 피하기도 하였으나

우리 가족은 아줌마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생각했을 때 아주머니의 억척스러움은

생활력 없는 남편과 4남매를 키워내야 하는 상황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아줌마는 한남동의 쌍대 계주였다.

물론 아줌마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아줌마는 숙향이 아줌마보다 캐릭터가 약했다.

마치 WWF의 헐크 호건과 워리어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우리 엄마는 상대 계주, 숙향이 아줌마 모두와 거래했다.

엄마는 실리주의자였으니까 말이다.

아줌마는 우리가 큰 집에 사는 동안에도 항상 엄마를 걱정했다.

젊은 나이에 몸이 아파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를 매우 안쓰러워했다.

어떤 때는 친척보다 아줌마가 더 친척 같다는 느낌도 있었다.


엄마에게는 언니가 넷이나 있었지만 모두 먼 거리에 살았다.

또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사느라 서로를 챙기며 살지도 못했다.

나중에 아줌마가 우리 부모님의 중매를 했다는 이야기를 알고는

엄마와 아빠를 이어준 인연이어서였을까라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픈 몸이어도 밝고 웃음이 많았던 엄마를 좋아하지 않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누구라도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숙향이 아줌마 같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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