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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리자 Jul 14. 2023

나의 한남동 #3

한남극장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의 병환으로 우리 가족은 3년 만에 다시 한남동으로 돌아왔다. 살던 집에서 이삿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급하게 한남동으로 돌아온 우리 가족은 큰아버지댁으로 들어갔다.


거동이 불편해진 엄마를 대신해 큰엄마가 우리 가족의 식사를 도와주셨다. 그만큼 엄마는 몹시 힘든 투병생활을 시작할 때였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도 나는 철부지 딸이었다. 낯선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버겁게만 느껴졌던 시기였다. 그나마 큰집에 한 살 터울의 사촌오빠와 여섯 살 터울의 사촌언니가 함께 있다는 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나는 언니 오빠와 큰집에서 텔레비전도 함께 보고 한 살 차이인 오빠와는 골목에서 열심히 뛰어놀았다. 학교에서의 불편함이 골목에서는 없었다. 모두 함께 노는 동네 친구들이었다.


그 시절 한참 유행했던 영화가 있었다.

[우뢰매] 영구와 땡칠이로 인기가 많았던 심형래 씨가 나왔던 영화였다. 텔레비전만 봐도 많은 만화영화를 볼 수 있었건만 왜 그렇게 그 영화를 극장에 가서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한남동에는 한남극장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순천향병원 들어가는 사거리 제일빌딩 지하에 있었다. 한남극장에서 우뢰매가 상영된다는 포스터와 극장 간판을 보니 너무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도 극장이라는 곳에 가보고 싶었던 것인지 정말 그 영화가 보고 싶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픈 엄마를 조르고 졸랐다. 엄마는 동생을 데려간다는 조건으로 나에게 천 원을 주었다. 쭈쭈바가 50원, 쌍쌍바가 100원이었던 시절이었다. 천 원으로 어떻게 동생이랑 영화를 보냐고 울고 있는 내게 큰엄마가 오백 원을 보태어 주신다. 사실 우리는 영화 관람비가 얼마인지 몰랐다. 그저 어른들의 짐작으로 나는 천오백 원을 받아 들고 네 살 어린 동생 손을 잡고 극장으로 향했다.



동생은 아직 학교를 안 갔으니 반값에 보여 달라고 졸라야지 하는 심산으로 떨리는 마음을 달래며 극장으로 향했다. 문제는 건물 앞에서부터 시작이었다. 난 제일빌딩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그 당시 한남동에서는 꽤나 큰 건물이었을 것이다. 입구 앞에서 쭈뼛대고 있는데 6학년은 되어 보이는 오빠 셋이 다가온다. 어디 가냐고 묻는 오빠들에게 한남극장에 영화 보러 왔다고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어봤다.

오빠들은 따라오라며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난 아무 의심 없이 한 손에 동생 손을 꼭 쥐고 오빠들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따라나섰다. 계단 반쯤 내려갔으려나 앞에 가던 오빠들 중에 가장 키 큰 오빠가 뒤로 돌더니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말한다.


“가진 것 다 내놔! 안 내놓으면 맞는다!”

내 심장이 그때 터지지 않은 건 정말 다행이었다.

그 쿵쾅대는 가슴으로 어찌 그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천 원은 우리 돈이고 오백 원은 큰엄마 돈이니까 천 원만 줄게.”


그 말에 오빠들은 천 원을 받아 들고 사라져 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옆에 있던 동생이 그제야 큰소리로 울어댄다.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우는 동생을 달래지도 못하고 건물을 빠져나와 집으로 달려갔다.

<출처:픽사베이>


엄마한테 혼이 났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혼자서는 낯선 곳에 가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그 일이 있고 한 참 뒤,

일요일 큰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가고 있었다.

순천탕으로 향하고 있는 그때 우주문방구 앞에서 그때 우리 엄마돈 천 원을 가져갔던 그 오빠가 있다.

순간 큰엄마에게 저 오빠가 내 돈을 가져갔다고 말하고 나는 골목 뒤로 도망갔다.

빼꼼히 바라보니 큰엄마가 오빠를 잡고는 한참을 나무라신다.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혼을 냈다. 너무 신이 나면서도 또 만날까 무섭기도 했다.

그날 목욕은 아프지 않았다. 때를 밀 때마다 아프고 싫었는데 그날만큼은 큰엄마의 손길은 내겐 쿠션 같았다. 목욕을 끝나고 나오며 바나나우유를 먹으며 집에 돌아오는 길은 세상 두려울 게 없었다.


한남극장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몰라도 난 한남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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