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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리자 Oct 10. 2023

인왕산의 힘

나의 두 번째 출산이야기

나의 큰 소망은 아이를 셋 낳는 것이었다.

남편과 결혼 날짜를 잡고 신혼여행을 준비하며 내가 물었다.


“아이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바로 가질 까요? “

이 남자 당황한다. 하긴 우린 서른이 넘어서 만나 결혼까지 일 년 반이란 시간을 만났으나 신혼여행의 첫날밤을 진정한 첫날밤으로 예약해 좋은 상태였다.

“아이는 ㅇㅇ씨가 낳는 거니까요. 좋은 시기로 결정해요.”

“알겠어요. 그럼 여행 전에 병원에 가서 산전 검사를 받고 가야겠어요.”


주말부부인 데다가 나는 서른이 넘었다. 서른 넘어서 아니 마흔에도 첫 아이를 낳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변에서 말은 못 해도 은근히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들을 보면 난 늦출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 이유는모르겠으나 결혼이 곧 아이를 갖는 일이라 생각했다. 꼭 임무를 맡은 사람처럼, 난 아이를 갖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나의 첫아이는 허니문베이비로 우리에게 와주었다. 아이를 낳고 직장생활을 하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아이는 세 살이 되었다. 조금은 안정되어 가는 시간, 그 시기 소중한 엄마를 떠나보냈다.


아이가 네 살이 되고 남편도 서울에 올라와 함께 생활하게 되자 이내 다시 아이 생각이 난다. 지금도 힘든데 굳이 또 가져야 하나 싶다가도 더 늦으면 정말 둘째는 없을 텐데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나 싶었다. 결혼도 같은 해에 하고 첫째도 같은 해에 갖게 된 친구와 만나기만 하면 둘째 고민이었다.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어찌하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생각보다 아주 흥미롭게 읽었는데 책에 나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눈길이 멈추었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에 대해 피곤한 일을 왜 하냐는 아들의 물음에 어차피 답은 본인들이 알고 있으며 고민한다는 것이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말!


그래 난 그냥 둘째를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큰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문의를 했다. 가장 어린아이가 속해 있는 반은 몇 개월 연령부터 다닐 수 있는지, 3월 등원을 하려면 전 해 9월생까지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혹시라도 다시 주말 부부가 된다면 혼자 아이 둘을 등하원 시키며 출퇴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어린이집이 다르면…. 아찔하다.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갖자.

계산해 보니 그달 안에 가져야 다음 해 9월에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말 그대로 ‘일심동체’가 된다. 아무리 내가 바라기는 했지만 걱정과 달리 나는 둘째 임신에 바로 성공했다.

아이 심장소리를 들으러 가는 날 우리 둘째의 예정일은 10월 7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나… 9월생이어야 하는데…

아이가 건강한 심장소리를 내는 것에 감사하자마자 바로 고민에 빠진다. 일단 건강하게 아이와 지내보자. 그다음 문제는 다음에!


아이와 나는 건강하게 잘 지냈다.

그리고 9월이 되었다.

자 이번 달 안에 만나자!

나는 저녁 식사 후 큰아이와 남편과 함께 인왕산을 오른다. 그때 우리는 인왕산 자락에 있는 수성동 계곡 근처에 살고 있었다. 인왕산 자락 길을 걷기에는 아주 좋았다. 남편과 큰아이는 걸으며 숫자 세기를 한다. 어두워진 길을 우리 셋은 걷고 또 걷는다.


9월 셋째 주, 다음 주면 추석 연휴다.

병원 진료를 보러 갔다. 벌써 자궁이 4센티가 열렸다고 하신다. 하지만 내 배는 아직 처지지 않고 봉긋하다. 내 컨디션도 좋다. 선생님은 진통이 오면 바로 오라고 하신다.

3일을 더 출근했다. 하지만 왠지 4센티가 마음에 걸린다. 이대로 출근하는 게 아닌 것 같아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육아휴직 두 번째 날, 남편 출근과 큰아이 등원 후 나는 혼자 인왕산을 오른다. 이날은 추석 명절 전날이었다. 회사가 가까운 남편과 동생을 인왕산길 세 시간을 걷고 만났다. 서촌에서 유명한 남도분식에 가서 맛있게 떡볶이를 먹었다. 언제 먹어도 떡볶이는 진리다. 남편은 회사로 들어가고 동생과 카페에 앉아 이대로 명절을 잘 보낼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약도 안되어 있지만 오후에 병원으로 가기로 한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일찍 퇴근했다.

혹시 늦어질 수 있으니 동생에게 큰아이를 부탁한다.

우리 부부는 병원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병원에 사람이 많지 않아 금세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내 상태를 보시고는 명절 연휴에 아이가 나올 수도 있으니 오늘 촉진제를 맞고 낳자고 하신다.

‘진통이 없는데 촉진제를 맞으면 아이가 나온단 말인가?’

진통이 없으니 급하지는 않았고 나는 외래가 끝나가는 시간쯤 촉진제와 동시에 무통주사를 맞았다.

여전히 진통은 없었으나 아이가 호흡을 힘들어한다면서 산소마스크를 내게 씌워주며 호흡을 천천히 해보라고 한다. 천천히 호흡하고 안정이 되었는지 힘주는 방법을 설명하신다. 상태를 체크하더니 곧 분만실로 들어갈꺼란다.

‘이대로?!’

분만실에 들어가서 남편이 내 머리맡에 서고 내 다리 밑으로 선생님과 간호사 분이 서계신다.

“산모님 진통 오면 힘주세요”

간호사선생님이 이야기하자,

“산모님 진통 잘 못 느껴요. 지금 힘주세요. “

의사 선생님 말씀에 아까 알려주었던 방법으로 힘을준다.

아기가 나왔다!

한 번의 걸림도 없이 아기를 받아 든 선생님이 남편을 바라보며 한 말씀하신다.

“모든 아기가 이렇게 쉽게 나오진 않습니다~”

그렇게 나는 진통 하나 없이, 아님 진통을 못 느낀 채

9월생 둘째 아이를 낳았다.

다음 해 3월 두 아이는 같은 어린이집에 등원한다.

그리고 4월 남편은 지방 발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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