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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리자 Nov 02. 2023

레깅스의 꿈

하비의 꿈

나는 하비다!

하비! 하체비만! 함께 다니던 우리 넷은 하비클럽이었다.


대학시절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진정한 나의 몸을 직면했다. 뚱뚱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딱 벌어진 어깨 굵은 하체. 옷을 하나하나 만들어 볼 때마다 교수님은 말씀하신다.

“대퇴부가 발달했구나.”

“솟은 어깨다. 이런 어깨는 한복은 안 어울려. 양장을 입어야 해. “

그런 말씀에 진즉 결심했었다.

‘그래. 나는 디자인실은 못 가겠구나 피팅할 수 있는 몸이 아니니..’

막내 디자이너로 들어가려면 디자인도 해야 하지만 선배들의 옷을 입고 보정할 수 있도록 피팅도 해야 했다. 하지만 내 몸은 피팅할 수 없는 몸이니 일찍부터 디자인실에 대한 꿈은 접었었다.


스커트를 만들게 된 날, 우리 넷은 좁은 피팅룸에 우르르 들어간다. 허리, 엉덩이 사이즈를 재고 그에 맞게 패턴을 그려야 한다. 서로 사이즈가 비슷비슷했던 우리는 그대로 나와서 패턴을 그렸다. 한참 진행하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우리 테이블에 오셔서 버럭 화를 내신다.

“여자 엉덩이가 이 사이즈가 말이 되니?! 너희들 다시 재서 그려!”

물벼락을 맞은 듯 우리는 다시 줄자를 서로의 몸에 감는다. 아 쪼인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의 스커트들… 맞을 리 없다…

우리는 다시 스커트 봉제선을 뜯는다…

우리 사이즈 맞아요… 교수님…..


요즘은 사이즈가 더 작게 나오지만 그때만 해도 55 사이즈를 입으면 날씬한 기준이었다.

우리 넷은 여자라면 자고로 77,88을 입어야 한다고 외치며 그날의 치욕을 유머로 승화했다.


그 뒤로도 나의 하체는 굳건히 나를 지키고 있다. 그래도 건강한 정신의 나는 미니스커트도 입고 비키니도 입었다. 물론 20대에~

지금은 줘도 안 입는다. 다른 아이템으로도 충분히 우아할 수 있다. 불혹의 나이 사십 대 아니던가?


그러던 내가 너무나 입고 싶은 옷이 생겼다.

바로 레깅스!

등산하면서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레깅스를 입은 여자들을 질투반, 부러움 반으로 바라보기는 했으나 내가 입어보고 싶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집에서 홈트를 하면서부터 그 레깅스가 너무나 예뻐 보인다. 처음엔 홈트를 하는 그분의 몸이 예뻐서 그런 거야라고만 생각했는데 갈수록 저 레깅스 입고 운동하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출처: 유튜브 빅시스>


입고 나가는 것도 아닌데 그냥 함 입어 볼까 하다가도 화면을 보고 디자인 칼라 다 정해 놓고 사이즈에서 화면을 덮는다. 잘못 샀다가 환불해야 하는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 더 겁이 나는 건 내가 입었다가 옷이 늘어나거나 뜯어지기라도 해서 환불 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저렴한 건 더 입을 게 못될 것 같았다. 이렇게 타이트한 옷일수록 원단과 디자인은 더 중요할 것 같았다.


화면을 보고 군침만 흘리고 있는데 며칠 전 파격 세일 제품이 올라왔다. 가격은 무려 오천 원! 택배비 포함해도 만원이 안된다. 그래 요거 한번 입어보자. 가장 바람직한 블랙을 보니 이미 솔드아웃. 그래도 어떤 기회인데 이번에는 사보리라. 빨강이라도 사리라는 의지에 불탔다. 그래서 고른 것이 환타색에 가까운 형광주황!

어떻게든 꾸겨 넣어서라도 입어 보리라~오기만 해 봐라!

드디어 나의 레깅스가 왔다. 인생의 첫 레깅스다. 현란한 색을 보라~내가 골랐다!

수영복을 입듯 꽉꽉 찡기지만 올려 본다. 어라 들어간다. 이게 휘리릭 입히면 레깅스가 아니지. 그래 이대로 올라가 보자. 허리까지 쑥 올라왔다.

입었다. 레깅스를!

이거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나 이 사이즈 맞네. 혼자 으쓱한다.

좋다! 레깅스를 입고 홈트를 한다. 화면 속의 저분이 내가 된 것 같다. 아 홈트 레깅스빨이구나!

이제 나 레깅스 입는 여자다!

레깅스 입고 홈트하는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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