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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로 Feb 03. 2023

신입사원이 된 철딱서니,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정규직 신입사원이 됐다.

전문대 졸업생, 인생패배자 같던 나는 27살 '중견기업 정규직 신입사원'이 됐다.


입사 첫날, 번듯한 양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면 재롱이라도 부리고 싶을 정도로 무안하고 심심했다. 얼마나 심심했으면 복사기에서 종이가 끊겨 나오는 소리에 박자를 타고 있었다. 불안한 나를 안심시켜 주는 건 멀리 보이는 명판뿐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서야 팀장이라는 사람이 말을 걸었다. 경직된 말투로 "일어나서 이리 와" 그게 회사에서 처음 들었던 말이다. 축하한다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환영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닌가? 면접 볼 때만 해도 다정하게 미소 짓던 사람이 서랍 속에 넣어둔 다른 얼굴을 갈아 끼고 온 것처럼 차가웠다. 애석하게도 그날이 팀장님이 제일 착한 날이었다. 


팀장과 가벼운 담소?를 나눈 뒤 팀원과 인사를 했다. 전부 나이가 어려 보였다. 지금이라면 바로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겠지만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자동차 품질이라면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쉽지 않은 직종이다. 그런 곳에 직원들이 전부 나이가 어려 보인다? 이 말은 바로 퇴사가 많다는 뜻이다. 당신도 그런 곳에 입사하면 2가지다. 버티고 버텨 한 자리 차지할 것인지, 뛰쳐나갈 것인지 말이다. 


그 당시 이런 사실을 물론 알았다 해도 무조건 좋았을 것이다. 전문대 졸업생이 중견기업에 정규직이라니 그 당시 나로서는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팀원들과 인사가 끝나고는 헤드뱅잉을 하면서 회사를 순회했다. 고등학교 때 밴드부를 하지 않았다면 목이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무슨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얼굴을 익히기도 전에 다시 고개를 숙이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넓어 보였던 회사를 겨우 한 바퀴 완주했다. 


헤드뱅잉이 끝나자 낯선 사람이 다가와 종이 한 장을 건넨다. 인생 처음 '근로계약서'를 마주했다. tv를 보면서 세련된 사무실에 앉아 펜을 날리며 서명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학교와 면접이란 전쟁터에서 승리한 나에 대한 보상은, 적장의 목이 아닌 종이 몇 장이 다였다. 중요한 내용이니 천천히 훑어보라던 말과 달리 눈초리는 따가웠다. 성격이 그런 건지, 압박을 느꼈던 건지 대충 이름, 연봉, 근무시간이 적힌 곳만 훑어봤다. 사무실이 아닌 식당에서 인생 처음 정규직 계약이 성사됐다. 나는 그렇게 진짜 직장인이 됐다. 


사인을 마치고 몇 가지 교육을 들은 뒤에 처음 앉았던 책상에 앉았다. 의식하지 않는 듯 나를 의식하는 7명의 사람, 이들은 선배가 됐다. 면접 전쟁 때 강조했던 자신감은 면접에서 다 썼나 보다. 세상 누구보다 쭈굴 하게 앉아 눈동자만 굴렸다. 입사 전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이 회사에 인재가 되겠다, 어쩌겠다 하면서 다짐했던 마음은 도망친 것 같다. 그렇게 첫날이 끝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내야 할 곳은 10평 남짓한 아파트였다. 그곳은 기숙사라 불렸고 큰 방 1개, 작은 방 1개로 분리되어 있었다. 큰 방에서는 세 명이 겨우 이부자리를 펴고 누울 수 있었고 구석자리 바닥이 내 침대가 됐다. 3일이 지나, 룸메이트 3명이 갑자기 친분을 보였다. "며칠 같이 자보니까 코를 너무 골더라,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여기 이 친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 나는 방에서 쫓겨나? 아니 눈치껏 화장실 문 앞, 냉장고라는 새로운 친구 옆에서 잠자리를 청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서럽던지, 어디 가서 미움받지 않은 내가 코골이 때문에 화장실 앞 거실에서 자야 한다니, 얼마나 슬픈 일이었을까? 행복한 이 추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나중에 이 문제는 해결됐지만, 나와 3일간 친구로 지냈던 그들은 서러운 마음은 기억조차 못할 거다. 정말 군대에 처음 입대해 하늘만 보며 밤을 지새우던 그날이 떠오를 정도였다. 3일의 룸메이트들과 4년 동안 웃으며 인사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이중적인 내 모습에 토가 쏠릴 지경이다. 우리는 이런 걸 사회생활이라 한다.


내가 그려왔던 신입사원의 모습은 처음에는 없었다. 아니 분명 있었지만 힘들고 서러운 일들이 그 행복을 덮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렇게 서럽던 그때가 그립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사회생활. 안면근육에 쥐가 나지 않아도 상사나 고객 앞에서 얼마든지 웃을 수 있다. 담배 한 대 피우면서 동기와 신입사원의 고충을 나누는 시간도 없다. 후배들의 힘듦을 들어주고 팀장님의 압박을 버티는 시간만 있을 뿐. 결국 그 모든 건 나빴던 기억보다는 추억과 이야기가 되더라. "당연한 거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 사회생활이 원래 그런 거다, 이런 것도 못 버티고 어떻게 사회생활 하겠냐?" 후배들에게 그런 말은 못 하겠다. 그건 겪고 난 사람의 지식의 저주이자 여유니까. 그저 무사히 오늘을 이겨내고, 힘듦이 경험이 되고, 그런 힘듦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 생겼으면 한다. 사회생활을 겪고 엄청나게 커져있는 자신을 미리 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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