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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로 Dec 13. 2022

화가 나면 어떻게 해야할까

잘 참는다는 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화나다 : 성이 나서 화기가 생기다.

노하다 : 화내다 또는 화나다를 점잖게 이르는 말

빡치다 : 화나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던 내가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노했다'라고 점잖게 표현하고 싶지만 오늘 상황에서는 '빡치다'가 맞는 것 같다. 잔잔한 짜증들이 모여 마음속에서 '불'이 나는 날은 많다. 내 속에만 가지고 있을 뿐 다른 사람에게 번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정도로 '화'를 잘 조절하고 산다. 그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화가 많았고 그로 인해 사람이나 기회를 잃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살다 보니 생존을 위해 자연스레 몸에 배어버린 습관이다. 오늘은 무언가 잃어야 할 날이었나 보다. 짜증 나다, 노하다, 화나다의 3단계 과정을 밟다 결국 화산 터지듯 빡이 터졌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업무, 쉴 틈 없는 전화, 다른 부서의 끊임없는 부탁이 쌓여 짜증과 화를 만들었다. 이런 일은 자주 있기 때문에 짜증의 단계에서 정신 승리하는 일이 더 많다. '어차피 해야 되는 거 빨리하자, 짜증 낸다고 일이 줄지 않는다'라고 생각해버리고 끝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 심지어 다른 부서서의 일이지만 '바쁜 와중에도' 다른 부서의 일을 대신해줘야 했다. 해본 적도 없는 업무를 당장 처리해야 되는 상황과 당연하게 부탁하는 다른 부서 팀원이 화를 불러왔다. 원래 나라면 '이렇게 해주면 같은 상황에서 나도 분명히 도움받는다. 만약에 도움을 받지 못하면 상대방도 다음번에 어려운 부탁을 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득이다'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이때까지는 불똥이 튀지 않았다. 당연하게 부탁하는 게 마음 쓰였는지 옆에서 계속 미안하다고 말하는 상대를 보며 '화'의 온도는 점점 내려갔다. 한 시간쯤 지났나? 아무리 해도 일은 처리되지 않았다. 상대보다는 상황에 너무 화가 났다. 잠시 휴식이 필요했다. 이상하게도 나의 빡침은 휴식시간에 찾아왔다.


얼마 전 업무가 많아지면서 팀에 6살 많은 형이 입사했다. 술 한잔 하면서 금방 친해졌고 집도 놀러 가는 친한 사이가 됐다. 친한 동생이 화난 걸 지켜보는 형은 어떻겠나? 당연히 풀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좋은 마음이 나로서는 불편한 일이었다. 형의 도움이 예상치 못하게 빡치는 상황으로 몰아세웠다. 쌓이는 업무, 일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화나게 했다. 그럼 결국, 업무를 쳐내고 일이 해결돼야 '화'는 사라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혼자서 화를 잘 삭인다. 온전한 몇 분의 휴식이 본래의 나를 되찾아준다. 그대로만 둔다면 말이다. 사실 겉으로 표현만 안됐다면 형이 나를 위로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여기서부터 잘못된 걸까? 친해지긴 했지만 고작 며칠로 나의 성향을 파악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형은 나를 다른 공간으로 보내며 조금 쉬자고 했다. 그러고는 같은 팀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너무 고마운 상황이었다. 형의 마음이 어땠는지 너무도 잘 안다. 나 또한 주변인의 마음속 불씨가 커질 때 소방관처럼 나타나 불을 잘 꺼뜨리기 때문이다. 위로의 시간이 5분 정도 지나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일을 빨리 끝내야 했다. 그래야 '화'가 종적을 감출 것이고, 퇴근 후 위로해주고 있는 이 사람들과 약속한 회식을 기분 좋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일을 하러 가겠다고 했지만 형은 계속 말렸다. 나는 이때 빡친것 같다. 하지만 의도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빡침을 드러낼 순 없었다. 형에게 애교인지 투정인지 모르는 말투로 '제발 관심 꺼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분명히 그런 의도였다. 가만히 두면 나아질 거라는 말을 내포한 나만의 애교였다. 형한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나 보다. 처음에는 형이 화난지도 몰랐다. 내 성향을 모르듯 나도 형의 성향을 몰랐다. 2시간쯤 지나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일들은 처리됐고 해결되지 않던 일도 끝을 맺었다. 10초도 안돼서 마음속은 진화됐고 평화가 찾아왔다. 이제는 10분 후 있을 퇴근과 회식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


형한테 말을 걸었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이해가 됐다. 내가 했던 한 마디가 마음을 상하게 했던 것이다. 화를 풀어주기 위해 관심을 주는데 그걸 거절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불이 꺼진 게 아니라 불씨가 애먼 곳으로 번졌다. 그렇게 형의 화남은 시작됐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지는 모르겠다. 이것도 친해지는 과정이라면 과정이지만 말이다. 나름 정중하게 형의 위로를 애교로 거절했기 때문에 사과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자 기억이다. 내가 기억 못 하는 분명한 포인트가 있었을 것이다. 화를 풀어주기 위한 노력이 너무나 고마웠기에 끊임없이 사과했다. 회식 장소를 가는 내내 그렇게 했다. 그리고는 내 성향이 그렇다. 가만히 두면 혼자 화를 푸는 성격이라고. 이해를 부탁한다고. 싹싹? 빌었다. 어쩔 수 없는 성화에 형은 화를 풀었고, 결국 우리는 즐거운 회식을 해냈다.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는 화가 났다. 화를 풀어주려는 형도 화가 났다. 내가 꼭 화를 풀었어야 될 이유가 있었을까? 형의 화를 풀기 위해 사과를 했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도 있다. 사람이라면 감정이 있다. 감정을 조절할 수 있지만 없애지는 못한다. 화 자체가 안나는 사람도 있을까? 조절하고 사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화가 겉으로 보이게 한 내가 문제인가? 분명히 참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표출이 되고 말았고, 형은 나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내 감정을 해명하는 과정에 형이 화가 났다. 그렇다면 나를 이해하지 못한 형의 잘못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우리 서로는 맞는 행동을 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에 존재하고 있다. 가족, 연인과의 싸움이 제일 보편적이라고 본다. 서로 이런 말을 한다. "너 생각해서 그런 거다. 이래도 잘못한 거냐?". 이 생각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은 그걸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화가 나는건 당연하다. 상대방이 내민 손에 억지로 화를 풀 필요도 없다. 모든 사람이 서로를 인정해주면 된다. 그 상황에서 인정할 수 없다면, 서로의 감정이 좋아진 다음에 인정해도 늦지 않다. 화를 내자. 대신에 상대방의 화도 인정해주자. 답도 안나오는 생각, 그냥 오늘은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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