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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로 Nov 25. 2022

신입사원이 되면 개명하는 이유

'어이 제군?, 나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있어 XX.'

"어이 제군, 책상 위에 서류 좀 가져와" 신입사원 시절, 별 볼일 없는 나에게도 '호'가 있었다. 호는 어이요 이름은 제군. 182번 훈련병이란 강제 개명의 기억을 지우기도 전에 또 다른 이름이 생겼다. 입사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팀장 놈은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전문대 졸업생 입사자의 대단함을 높여주려 '어이'란 호를 만들고, 면접 전쟁의 승리를 축하해주기 위해 '제군'이라 불러주는 건가?'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그렇다, 신입사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독하게 무시당하고 있었다. '어이 제군?, 나도 이름이 있어 XX!!' 속으로는 짖어대고 겉으로는 자본주의 미소를 보였다. 같이 입사한 동기와 이 고통을 나누는 게 유일한 위로였다. 업무에 치여 보기도 전에 회사를 싫어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취직만 하면 인생이 순두부처럼 부드럽게 풀릴 거라 생각했다. 생각과 달리 회사생활은 팍팍하다 못해 퍽퍽했다. 하루도 'XX'을 외치지 않는 날이 없는 게 신입사원의 현실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신입사원이 되는 희열을 느끼기 위해 20년 가까이 공부하는 것 같다. 그 순간을 위해 20년을 공부했다 생각하면 아깝기도 하다. 그 대가가 고작 개명과 스트레스인가?, 이런 대우를 받으려고 취직한 건가? 이런 생각은 사회초년생의 곁을 지겹도록 서성인다. 사소한 것으로 시작해, 수많은 어려움이 가슴속에 쌓인다. 사회생활이란 고난의 무게가 짓누른다. 인생 처음 겪는 고난의 크기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를 향해 굴러온다. 눈덩이를 피하지 못하면 첫 회사의 로망은 사라지고 퇴사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빛을 보인다. 그때부터 자존감이 떨어지고, 나만 이런 건지, 적성에 맞지 않는 건지 탈출구를 찾게 된다. 이런 상황이 자신에게만 생긴다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겪었다. 간절하게 입사한 첫 회사를 3개월 만에 그만뒀다. 강제 개명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신이 겨우 참아내는 수많은 고통을 나는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쳤다.


매일 9~10시까지 야근, 상사의 폭언, 갑을 관계에 대한 회의 등이 나를 괴롭혔다. 신기하게도 나는 1년 뒤  

첫 직장으로 재 입사를 했다. 그 사이 회사를 3군데나 다녔다. 고통을 주는 100가지보다 좋은 점 하나만 있다면 회사생활을 해낼 수 있다는 걸 배운 시기다. 첫 회사에서는 같이 일하는 동료 대부분이 또래였다. 10시에 퇴근해도 술 한잔 하면서 회사와 상사 뒷담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렸다. 쉬는 날이면 같이 어울리면서 여가를 즐겼다. 그런 동료들을 버린 대가는 쓰라린 상처로 돌아왔다. 상사의 폭언에서는 도망쳤지만 무관심이란 새로운 문제를 겪었다. 야근에서는 벗어났지만 동료들은 각자의 생활에 집중했다. 결국 동료 직원들만 보고 다시 한번 폭언과 야근의 늪으로 들어갔다. 어딜 가나 회사가 싫은 이유는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 버텨낼 한 가지만 있다면 신입사원 때는 참고 버텨봐야 한다. 퇴사는 언제든 선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회사에서 배울 것만 배우고 언제든 떠나면 된다. 하지만 고통을 견딜 수 없다면 고민하지 말고 퇴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처럼 경험하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기만 한다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엄청난 이득이 된다.  


믿지 못하겠지만 당신 눈앞에 보이는 선배라는 작자도 당신이 겪는 고통을 이미 경험했다. 지식의 저주에 갇혀 신입사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고작 이런 걸로 힘들다고? 라떼는 말이야를 자동으로 시전 한다. 그런 선배를 오히려 안쓰럽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인간도 신입사원 때는 당신처럼 눈동자가 맑았고, 뭐든지 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생존이라는 명목 하에 회사에 충성을 바치다 보니 기억상실증이 걸린 것이다. 과거의 고통을 잊고자 보상심리를 당신에게 풀어낸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당신에게 그대로 돌려준다. 아니 몇 배는 강력하게 되돌려준다. 이런 되물림이 계속되면 내 자식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이겨내야 할지 걱정된다. 당신은 그러지 말고 후배들이 생겼을 때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해주었으면 한다. 선배들의 되물림을 끊어 주기를 바란다. 후배들이 당신을 존경하고 배우고 싶어 할 것이다. 주위에 사람이 따르고 어려운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까마득해 보이는 미래라 생각되겠지만 눈 깜짝할 사이 그 순간이 올 것이다.


식상하겠지만 회사생활은 등산과 비슷하다. 과정은 힘들지만 정상에 도착하면 출발할 때 올려보던 것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요동치던 심장은 평온을 찾는다. 내려가면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에게 곧 도착한다 힘을 실어주며 내려간다. 등산의 과정처럼 힘든 과정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참다 보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선배가 되면 후배들의 고충이 한눈에 보이고 위로받던 모습에서 위로를 주는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중간에 지쳐 내려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더라도 자신을 원망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올라가면 그만이다. 당신이 향하고 있는 목표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목표가 없다면 만들 필요가 있다. 적어도 3년 뒤에 차를 사야 한다는 것도 괜찮다. 목적을 가지고 참고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어렵던 일들이 쉬워질 것이다. 회사에서 일만 배운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경력을 쌓으면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힘든 일은 당연히 생긴다고 여겨야 한다. 다가오는 수많은 고통과 고난이 어떻게 나를 성장시킬지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지식의 저주에 갇혀 이런 말을 하는 게 쑥스럽다. 하지만 모든 걸 이겨내고 완성된 당신의 모습이 정말 궁금하다. 이리저리 치이느라 고생 많은 사회초년생들이 오늘 하루는 평온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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