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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무비 Feb 08. 2022

‘온 세상이 하얗다’ 그저 함께 있다는 것의 아름다움

[리뷰] ‘온 세상이 하얗다’ 그저 함께 있다는 것의 아름다움

알 수 없고 이상한, 그러나 보는 이에게 왠지 모를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두 남녀가 있다. 이들은 얼핏 기묘하고 바보스럽다. 어쩌면 공허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특별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관객의 마음을 하얗게 채워준다.

영화 '온 세상이 하얗다' 스틸. 사진 트리플픽쳐스


한 남자가 있다. 매일 죽음을 다짐하지만 알코올성 치매로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하며 다짐을 잊고 살고 있다. 한 여자가 있다. 그냥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우울함과 무력감으로 죽을 결심을 한다. 남자의 이름은 김모인, 여자의 이름은 류화림이다. 우연히 친구가 된 두 사람은 함께 죽기 위해 태백으로 발길을 향한다. 매일을 잊는 한 남자와 매일을 거짓으로 사는 한 여자는 까마귀숲에 도착한다. 그리고 하늘에선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영화 ‘온 세상이 하얗다’(감독 김지석)는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죽기 위해 태백 까마귀숲으로 떠나는 기이한 동행을 담았다. ‘바람의 나라’, ‘롯데렌터카’, ‘빙그레’, ‘에이블리’ 등 다수의 CG를 기획, 연출한 김지석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지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제20회 전북독립영화제 국내경쟁-장편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국내 평단을 사로잡았다. 주연은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강길우와 박가영이 맡았다.

영화 '온 세상이 하얗다' 스틸. 사진 트리플픽쳐스


기묘하고 엉뚱하다. 진중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으나 실소가 지어지고, 가볍고 피상적으로 바라보기엔 무게 있는 대사가 폐부를 찌른다. 그래서인지 ‘온 세상이 하얗다’는 쉽게 단언하기 힘든 작품이다. 죽을 이유를 특별히 설명하지 않음에도 죽음을 향한 모인과 화림의 모습이 납득 가는 것처럼, 영화는 알 수 없는 기이한 마력(魔力)으로 보는 이의 마음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한다.

그럼에도 약간의 부연을 한다면 ‘온 세상이 하얗다’는 분명 관객에게 위로를 건넨다. 시작부터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위로를 발견한다는 것은 얼핏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더군다나 영화는 관객에게 이러쿵저러쿵 캐릭터들의 속사정을 이야기하지도 않고, 보편적인 정서를 환기시키며 직접적인 공감과 위로는 전하지도 않는다.

영화 '온 세상이 하얗다' 스틸. 사진 트리플픽쳐스


하지만 서로를 향해 진정한 관심이나 기대, 바람도 없는 모인과 화림의 괴상한 관계가 아이러니하게도 편안한 감상을 남긴다. 기대가 없기에 허울도 없고, 깊은 애정이 없기에 마음을 옭아매는 죄책감과 부담감도 없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의 옆에 있으며 눈을 마주치고, 걸음을 맞춘다. 그 자체가 위로를 준다. 어쩌면 우리 마음에 너무나 많은 것이 얽혀있기에, 죽음에 같이 다가감에도 부담이 없는 이들의 모습이 깨끗한 눈처럼 반가운 것이겠다.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연이은 롱테이크가 주는 부담과 약간의 지루함이 있고, 건네는 바가 명확히 그려지지는 않아 아리송한 면도 있다. 강길우와 박가영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에게 많은 부분을 맡겼다는 티도 역력하다. 두 배우의 깊이가 아니었다면 그들이 연기한 캐릭터는 다소 나풀대는 종이인형처럼 조금의 생명력도 없을 뻔 했다.

영화 '온 세상이 하얗다' 스틸. 사진 트리플픽쳐스


요컨대 자신만의 독특한 리듬으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작품이다. 김지석 감독이 카메라에 담은 여러 아름다운 풍광이 눈을 즐겁게 하고, 모인과 화림의 기묘한 관계는 상당한 위로의 늪을 진득하게 우려낸다.


개봉: 2월 10일/ 관람등급: 15세이상관람가/감독: 김지석/출연: 강길우, 박가영/제작: ㈜평화사/배급: ㈜트리플픽쳐스/러닝타임: 107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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