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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무비 Jun 22. 2021

‘흩어진 밤’ 지난날, 누군가 아닌 우리들의 초상

[리뷰] ‘흩어진 밤’ 지난날, 누군가 아닌 우리들의 초상

어린 시절, 부모님이 다투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참으로 불안과 슬픔, 혼란과 미움이 샘솟는다. 이는 비단 특정한 누군가의 기억과 감정이 아닌,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누구나 마음 한편에 지니고 있을 슬픈 추억일 터다. 영화 ‘흩어진 밤’은 우리의 그런 기억을 되돌아보게끔 하는 작품이다. 조금씩 멀어만 가던 그날의 기억 속으로, 관객은 차분히 스며든다.


영화 '흩어진 밤' 스틸. 사진 씨네소파


어느 날부터 인가 수민(문승아)의 집에는 낯선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 열살 평생 자랐던 집을 떠나 이사를 가야 하는 이유다. 자신에게는 무엇하나 물어보지 않고 가족의 미래를 정해버린 엄마와 아빠는 수민과 오빠에게 각자 누구와 함께 살지 결정하라고 통보한다.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멋있다며 엄마를 닮고 싶다는 오빠. 벌써부터 다른 곳에 방을 구해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아빠. 바쁘다는 이유로 수민과의 시간을 뒷전으로 미루는 엄마. 수민은 점차 짙어만 가는 어둠 속에서 흩어지는 마음들을 바라보다 문득 뛰쳐나가고픈 마음이 든다.

영화 ‘흩어진 밤’(감독 이지형, 김솔)은 부모님이 이혼을 결심한 후 엄마, 아빠, 오빠까지 네 가족이 더 이상 함께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게 된 막내 수민의 일상을 통해 가족의 해체를 바라보는 아이의 심리를 그렸다. 지난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과 배우상을 수상했다.


영화 '흩어진 밤' 스틸. 사진 씨네소파


‘섬세하게 감정을 포착했다’는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복잡한 어른들의 사정과는 달리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열살 수민의 시선이 관객 내면에 깊이 잠들어 있던 지난날의 기억을 일깨운다. 수민의 심경을 디테일하게 그려내서나,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져서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던 슬픈 추억을 되돌아보게 하기에, ‘흩어진 밤’은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물론 여느 독립영화가 그러하듯 다소 개인적인 서사에 집착해 매몰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수민의 시각으로만 세계를 바라보기에, 온전히 가족의 해체가 담겼다기보다 그를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감정만이 주를 이룬다. 때문에 늘어지는 전개가 답답할 여지를 남기고, 누군가는 미처 몰입하지 못한 채 영화를 떠나보내야 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흩어진 밤’은 올해 만난 독립영화 중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 중 하나라, 감히 단언할 수 있겠다. 지난해 개봉한 ‘남매의 여름밤’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무엇보다 놀라우리만치 감탄을 자아내는 문승아의 연기가 박수를 부른다.


영화 '흩어진 밤' 스틸. 사진 씨네소파


“누구나 가족과 관련된 허기가 시작되는 때가 있다”


이지형, 김솔 감독이 밝힌 ‘흩어진 밤’의 기획 계기다. 그 말마따나 굳이 이혼까진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가족이 다투던 모습은 기억 속에 있을 터다. 영화는 당시의 서늘함을 다시금 꺼내게 만들고, 그로부터 지금의 우리가 가족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흩어진 밤’은 그렇게 우리의 기억을 그리지만, 다분히 실존적이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개봉: 6월 24일/관람등급: 전체 관람가/감독: 이지형, 김솔/출연: 문승아, 최준우, 김채원, 임호준/제작: ㈜타이거 시네마, DGC/배급: 씨네소파/러닝타임: 81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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