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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무비 Aug 27. 2021

‘바쿠라우’ 기묘하고 리얼 잔혹하되 따뜻한 현실 우화

[리뷰] ‘바쿠라우’ 기묘하고 리얼하며 잔혹하되 따뜻한 현실 우화

지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작품 ‘바쿠라우’가 국내 극장 개봉 소식을 알렸다. SF와 스릴러, 슬래셔와 로맨스, 휴머니즘 등 수많은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기묘한 감상을 남기는 작품으로, 브라질 오지에 위치한 것으로 설정된 가상 마을 ‘바쿠라우’에서 이야기를 꾸렸다.

영화 '바쿠라우' 포스터. 사진 영화사 진진


미지의 땅 바쿠라우. 마을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 후, 마을에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총격으로 구멍이 뚫린 물 수송 차량, 하늘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비행 물체, 마을 곳곳에서 발견된 시신들. 연이어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들에 마을 주민들은 큰 슬픔에 빠지고, 마을 주민들을 향한 위협은 조금씩 그들의 목을 조여온다.

영화 ‘바쿠라우’는 미지의 마을 바쿠라우의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 이후 마을에 벌어지기 시작한 미스터리한 일들을 담았다. ‘아쿠아리우스’(2016), ‘네이버링 사운즈’(2012) 등으로 브라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그렸던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줄리아노 도르넬레스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았다.

클레베르 감독은 지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공개하며 ‘바쿠라우’를 통해 “브라질 북동부의 빈곤한 현실을 담았다”고 밝혔다. 그의 말마따나 ‘바쿠라우’에는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갈등과 사회적 문제가 고스란히 담겼다. 물론 지극히 영화적인 언어로 표현됐기에 남다른 집중력을 발휘해 해석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영화 '바쿠라우'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예컨대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의미심장한 뉘앙스를 전달한다. 제목 ‘바쿠라우’는 포르투갈어로 야행성 새를 뜻하는데, 이 새는 보호색을 사용해 어디에서든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다. 이는 영화 후반 무력하게 당하고 있던 마을 주민들이 때를 기다리며 몸을 숨겼다가 한 번에 습격을 가하는 모습과 연결된다.

영화 초반 마을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 역시 다양한 메타포를 담고 있는데, 모두가 함께 한 마음으로 짐을 옮기는 장면이나, 관에서 물이 샘솟는 장면이 그렇다. 특히 후자의 경우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복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 죽은 마을의 대모는 대지가 되어 그리스 신화의 가이아와 연결된다.

대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 가이아는 풍요, 자애 등의 가치와 이어지며, 이는 카르멜리타의 자손들이 브라질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는 것과 다시 한번 결부된다. 그의 육신이 담긴 관에서 샘솟는 물은 브라질 전역을 뒤덮은 열대 우림의 아마존 강을 기억하게 하고, 이는 죽음으로부터 잉태되는 새로운 생명과 삶의 순환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바쿠라우'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이 외에도 다양한 메타포가 담긴 수많은 미장센이 있다. 더불어 ‘바쿠라우’는 영화의 장르를 기이하게 변형시킴으로써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영화는 CG 기술이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지난 할리우드 영화들의 오프닝 시퀀스를 만나는 듯한 연출로 시작한다. 얼핏 조악하게 보이기도 하는 지구 모형을 우주에서 바라보며 조금씩 브라질 오지 마을 바쿠라우로 향하고, 중반부에 들어선 초기 SF 영화에서나 등장했던 어색한 UFO가 등장한다.

이것만 해도 영화가 어떤 장르를 표방하는지 혼란스러운데, 부러 카메라를 심하게 흔들며 관객의 불편함을 자아내는 연출이나, 일반적인 서부극 혹은 복수극에서 볼 수 있을만한 정도를 넘어 슬래셔 무비로 칭할 수 있을 만큼 짙은 폭력성은 영화 메시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유발한다. 허나 동시에 영화의 지향점은 하나로 귀결됨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은 신분과 인종, 나이와 성별에 관계 없이 연대를 이루고 있으며, 마을을 공격하는 이들은 철저히 백인으로 이뤄져 있다. 마을 주민과 용병 모두 상대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길 주저하지 않는데, 같은 행위를 함에도 카메라는 두 집단의 폭력 행위를 다른 방식으로 담는다. 용병의 폭력은 심지어 9살 소년을 죽일 때 조차 무미건조하게 보여지는 반면, 마을 주민들의 살인은 통쾌하고 짜릿하며, 일면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지도록 이끈다.

영화 '바쿠라우' 스틸. 사진 영화사 진진


결국 영화는 클레베르 감독의 전작들과 같이 브라질의 현실이 마주한 문제점을 상기시킨다. 사회 지배층을 이루고 있는 백인 집단과 피지배계층을 이루고 있는 원주민의 갈등 양상으로 시작해 브라질의 빈곤한 북부와 부유한 남부의 지역 갈등, 빈부 격차, 인종 차별에 이르기까지, 첨예한 대립과 다툼을 벌이고 있는 현실 세계의 문제가 폭력으로 가시화된 것이다.

다채로운 미장센과 부러 조악한 인상을 남기는 CG와 소품,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출 등 다소 기괴하고 낯선 분위기가 되레 영화를 풍요롭게 만든다. 이야기의 표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한 꺼풀씩 벗기다 보면 영화는 하염없이 사유하게 되는 즐거움을 자아낸다. 기괴하고 잔혹하지만 때때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지극히 동화적이지만 현실을 적나라하게 들춘다.

허나 이렇게 여러 가지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반가운 작품임에도, 영화를 부담 없이 가볍게 즐기고픈 관객이라면 ‘바쿠라우’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겠다.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전까지 영화의 전개는 하염없이 느리게 흘러 지겨울 수 있거니와 기존 영화에 대한 수많은 변용과 뒤틂이 있기에 ‘그네들만의 놀이’라는 인상을 받기도 쉽다. 요컨대 씨네필이라고 자신하는 이가 아니라면 쉬이 도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개봉:9월 2일/관람등급: 청소년관람불가/감독: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줄리아누 도르넬리스/출연: 우도 키에르, 소냐 브라가, 바바라 콜린, 토마스 아퀴노, 실베로 페라라/수입·배급: 영화사 진진/러닝타임: 131분/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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