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스무비 Oct 25. 2021

거친 파도를 헤엄치는 마리오네트 ‘아네트’

[리뷰] 거친 파도를 헤엄치는 마리오네트 ‘아네트’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홀리 모터스’ 등을 선보이며 거장 반열에 오른 레오 까락스 감독이 신작 ‘아네트’로 돌아왔다. 예술가들의 도시 LA를 무대로 그려낸 레오 까락스 감독의 첫 번째 뮤지컬 영화로, 과감한 연출 형식의 변용이 돋보인다.

영화 '아네트' 스틸.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예술가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 유명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꼬띠아르)과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는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려 사랑에 빠진다. 함께 인생을 노래하며 사랑을 속삭이며 찬란한 미래를 꿈꾸던 두 사람. 그러나 인생의 파도는 그들의 삶을 평온히 흘러가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계속되는 무대 위에서 공연은 이어지지만, 밝은 조명 아래 그들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짙은 어둠에 휩싸인다.

영화 ‘아네트’(감독 레오 까락스)는 오페라 가수 안과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가 사랑에 빠지면서 무대 그 자체가 된 그들의 삶을 노래한 시네마틱 뮤지컬이다. 영화 ‘결혼 이야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오르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한 아담 드라이버가 주연과 제작을 맡았으며, 영화 ‘라 비 앙 로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마리옹 꼬띠아르가 함께 호흡을 맞췄다.

지난 제74회 칸 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자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아네트’. 거장 레오 까락스의 첫 뮤지컬 영화라는 점에서 이미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지만, 칸에서 들려온 ‘아네트’에 대한 찬사는 영화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이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최근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아담 드라이버와 이미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마리옹 꼬띠아르가 주연을 맡았으니, ‘아네트’가 개봉 전부터 예고편 만으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영화 '아네트' 스틸.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허나 영화관의 불이 꺼지고,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할 때부터, ‘아네트’는 관객에게 다소 당혹스러운 심경을 불러일으킨다. 장르 취향 문제가 아니다. 낯선 형식과 연출, 과감한 편집과 촬영 방식으로 관객이 익숙한 영화 언어와는 전혀 다른 행태가 스크린에 펼쳐지는 이유다. 영화는 시작과 끝에서 제4의 벽(연극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 존재하는 가상의 벽)을 깨고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모든 대사를 노래로 전하기도 한다.

인물의 동선과 배우들의 연기 방식도 일반적인 영화와는 결을 달리한다. 다소 과장된 듯한 발성과 표정, 몸짓 등이 특징적인데,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아닌 연극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클로즈업은 과감하고, 조명의 대비는 극명하다. 진행된 사건을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해 보여주기도 하는데, 실제 할리우드 커플의 이슈를 담은 타블로이드를 보는 듯 하다.

특히 낯설고 약간의 불편함마저 자아내는 부분은 안과 헨리의 아기이자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아네트를 그린 방식이다. 아네트는 극 중 인형으로 등장한다.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목각인형 아기가 눈을 깜빡이고, 옹알이를 할 때 관객은 불쾌한 골짜기로 빠져들며 강한 반발심에 휩싸인다. 가장 사랑스러워야 할 아기가 송곳이 돼 관객의 마음을 사정없이 찌른다.

영화 '아네트' 스틸.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네트’는 헤어나올 수 없는 마력(魔力)으로 관객의 눈길을 붙잡는다. 낯선 형식과 불편한 이미지 사이로 극단을 향해 치닫는 감정이 보는 이의 심장을 움켜쥔다. 다양한 메타포를 담은 미장센을 통해 가십거리에 쉽게 매몰되는 사회를 향해 은근한 비꼼을 전한다. 영화적 언어에 익숙한 나머지, 약간의 지적 허영심을 충족고자 하는 관객에게는 도발적이고 새로운 시선으로 허를 찌르기도 한다.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야 아네트는 진짜 사람이 연기하게 되는데, 이때 관객은 아테트가 그간 마리오네트로 등장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레오 까락스가 제목을 ‘아네트’로 지은 이유이자, 영화에 담긴 메시지 자체를 깨닫게 되는 셈이다. 미처 관람하지 못한 관객의 즐거움을 빼앗지 않기 위해 상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해당 장면에서는 약간의 카타르시스와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좌절감 역시 맛볼 수 있다.

요컨대 익숙지 않은 형식과 연출이 당혹스러운 감상을 자아내지만, 낯선 얼굴들에 익숙해진 순간 관객에게 기묘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플롯 자체는 큰 변주 없이 무난히 흘러가지만, 형식과 구성의 변화 만으로도 얼마든지 색다르게 보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음악이 특히 인상적인데, 각 캐릭터마다 다른 음악이 입혀지며 다채로움을 더하고, 영화관의 존재 의의를 다시금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영화 '아네트' 스틸.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개봉: 10월 27/관람등급: 15세이상관람가/감독: 레오 카락스/출연: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수입&공동배급: ㈜왓챠/배급&공동제공: 그린나래미디어㈜/러닝타임: 141분/별점: ★★★★

작가의 이전글 ‘휴가’ 일상의 가장 숭고한 가치 ‘밥줄’을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