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왔을 말이다.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작은 일부에만 매몰되면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전체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맞다. 시작과 끝이 어떻게 될지 큰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일의 방향이 흔들리고 완성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 조직 내의 모든 사람이 시작과 끝이라는 큰 그림만 그리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답은 ‘낭패’다.
누군가는 숲 안에 있는 나무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이 나무의 역할은 무엇인지, 다른 나무와의 관계성은 어떤지 등등 세부사항을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전체적인 그림을 기획하는 게 멋있어 보인다. 그 분야의 전문가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본인의 경험치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큰 그림을 그리는 일부터 하려는 사람들도 생겨나는 것 같다.
나무들이 없으면 숲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숲이 어느 정도 크기면 좋겠고 어떤 색이면 좋겠는지 대략적인 방향은 잡을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나무를 심고 관리하지 않으면 생각했던 숲은 완성되지 않는다.
내 경험치가 아직 부족하다면 남이 알려주는 숲의 그림에 맞춰서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일부터 해봐야 한다. 그리고 맡은 일은 제대로 해내야 한다.
인턴으로 들어가면 복사하는 일만 시킨다고 투덜댈 수 있다. 나도 제대로 된 일을 줘야 경험치를 쌓을 수 있을 텐데 허름한 일만 시키니 경험치를 못 쌓는다는 것이다.
복사하는 일도 충분히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 쓸모없는 것을 복사시키는 이상한 회사가 아니라면 복사본의 내용은 지금 회사가 집중하고 있는 어떤 프로젝트의 내용일 것이다. 그 내용을 스스로 읽어보고 궁금증을 가지고 일을 시킨 사람에게 질문하다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찐’ 경험치가 될 수 있는 일을 부여받을 수도 있다.
실무를 배울 수 있는 시기는 사회초년생부터 경력 5년~7년 차까지이다. 그 시기 안에 얼마나 제대로 나무를 심고 관리했느냐에 따라 내가 그릴 수 있는 숲의 크기가 달라진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찮게 생각하지 말자. 하찮다고 생각했던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