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힘들었어요.

그래 맞아. 괜찮은 척 했지만 난 정말 안 괜찮았어.

by SOM

지난 번에 나 잘 살고 있어요, 로 적었는데 이번엔 나 힘들었어요 라는 제목을 다는 게 참 재미있다.


어쩌면 조금은 분노 어린 외침이다. 나 힘들었어요.


괜찮은 척 했지만, 정말 안 괜찮았어요.


괜찮다는 그 상태가 뭔지 까마득히 잊었을 정도로, 안 괜찮았어요.


그래서 안 괜찮은 줄도 몰랐어요. 스스로.


사람이 괜찮을 땐 언제고, 안 괜찮을 땐 언제일까?


나의 경우에는 나 스스로가 내가 이대로는 부족하다고, 안 괜찮다고 여길 때가 바로 안 괜찮을 때이다.


(감정이) 안 괜찮은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내가 여기기에) 안 괜찮을 때, 난 안 괜찮았다.


어떨 때였을까?


성적이 내 맘대로 안 나왔을 때, 좋아하던 아이에게 고백했다가 차였을 때, 누구에게도 말 못할 비밀들을 적은 일기장을 학교 아이들이 돌려봤을 때.


전부 안 괜찮았지만, 그보다 내가 안 괜찮았던 지점은


[나는 무슨 수를 써도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더 노력해서 더 성취해야 그나마 봐줄 만한 사람이 된다]


라는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굳게 믿고 있을 때였다.


내 삶 전반에 걸친 치열한 노력도, 우월감과 열등감도, 삶에 지쳐서 울음을 터뜨릴 때 나오던 눈물도 전부 이 생각 탓이었다.


그러나 이 생각들은 필연적으로 지치게 만들었다. 사람을.


'나'는 없고, 그게 당연했고, 누가 '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더 성취한 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졌다.


내 병은 고3 때 발병했는데, 그 믿음이 최고조를 달해 서울대를 가려면 사람들과 말하는 데 시간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오히려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못 맺는 자아상이-내 공부에 열등감으로서 원동력이 될거라는-


쉽게 말해, '나는 사람들과 인간관계도 못하는 찌질이니까 대학을 잘 가야한다'는 생각을 인위적으로 스스로 하게 만들기 위해, 나는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했다.


그러고보면 사실은 내게 남은 인간관계는 별 게 없었다.


학교 선생님, 친구, 부모님, 자매.


단절한 인간 관계 속에서도 남은 인간관계들. 특히 내가 그렇게 찌질이처럼 굴었는데도 내 곁에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신비스럽다. 나는.


그러나 그 모두들. 나에게 호감이 있었을 그 모두에게 나는 내심 적개심을 가졌다. 왜냐면 내 속에서 활화산처럼 생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쟤는 나 미워하겠지?


쟤가 지금 웃고 있는 거, 사실은 아까 내가 한 말을 비웃으며 날 깔보는 거겠지?


쟤, 나 싫어하고 혐오스럽게 여기겠지?


겉으로 웃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만 들었다.


분노를 항상 꾹꾹 누르고 살았다.


다들 사실은 내가 미우면서도 좋은 척 하는 거라고 여겼다.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그 괴로운 시간들이 전부 병의 증상이었다니, 전조증상이었다니.


왜 나는 이런 병에 걸려야만 했을까?


왜냐면, 평생을 위 생각만 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잘해야 수용될 수 있어.


잘하지 못하면 안 된다고.


내가 뭘 못한다고? 있을 수 없어.


열심히 하는 성격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적당한 재능이 합쳐져 고등 시절을 마칠 때까지 뭐든지 잘해왔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에게 쟤는 뭐든지 잘한다는 인상을 주면서, 그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나는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야. 공부든, 운동이든, 발표든 뭐든.


잘 할 수 있는 모든 걸 잘 하기 위해 나는 존재했다. 그리고 나는 없었다.


그러니까, 못할까봐- 긴장감, 내가 노력한다는 게 드러나고 모두 날 못한다고 깔볼까봐- 공포, 나는 나자신 그대로 수용받지 못한다는- 우울감 등이 쌓여갔다. 그러니 나중에는 그 둑이 터질 수밖에.


그리고 내게 조현병이 왔다. 나는 이 병이 나에게 더 내려놓으라고. 더 힘들지 말라고 온 것 같다. 이상한 소리일 수 있다.


그렇지만, 조현병이 오지 않았다면. 나는 더 불행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누구든 병이라고, 누구든 불행이라고, 누구든 너는 그 이상 더 잘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정신질환이다.


평생을 잘 해야한다고 믿어왔는데, 나는 더 이상 잘 하기 힘든 사람으로 주변에 받아들여졌다. 아니, 어쩌면 내가 살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조현병 환자이니 이 이상 못해도 괜찮아

얼마나 힘들었으면 네가 그런 병까지 걸리니. 나 자신, 너무 수고했고... 이제 좀 쉬어보자.


이런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된 나는 그래서 조현병이 터지고 덜 불행하고, 덜 외롭다.


천운이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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