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리가 안될까?
정리에 대한 욕구가 이렇게 지속적이고 큰 데 왜 정리가 안 되는 걸까? 어릴 때 책상 서랍을 바닥에 엎어서 서랍의 물건들이 하나씩 정리한 기억이 난다. 그렇게 정리된 책상을 보면 기분이 뿌듯했다.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얼마 못 가 다시 뒤죽박죽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 계절이 바뀌면 옷을 정리한다. 날을 잡아서 옷들을 다 꺼낸다. 나에게 이런 옷이 있었구나 하면서 정리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정리 초반에는 진도가 잘 나간다. 그러다 거의 안 입은 옷은 버릴지, 아직 상태가 괜찮으니 계속 보관할지 고민에 빠진다. 이렇게 고민에 빠지니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아직 정리는 반도 안되었는데 시간은 많이 흘렀다. 지쳐서 정리 의욕은 점점 떨어진다. 꺼내둔 옷들을 다시 옷장에 넣어야 한다. 처음에는 나름 큰 틀을 세워 체계적으로 넣는데 넣으면서 이게 맞는지 고민스럽다. 분류가 잘 안 되는 옷들은 ‘에라 모르겠다’하고 막 쑤셔 넣고 옷 정리를 끝낸다.
한 번 정리를 하면 정신적 에너지 소비가 너무 많다. 어디 정리할 것이 옷뿐인가? 책꽂이에 가득 찬 책들, 신발장의 신발들, 여기저기 산발한 약과 건강식품들... 정리할 것들이 많은데 이것들을 정리하려면 정리를 시작하기 전부터 겁이 난다. 다음에 하지 뭐 하면서 정리를 미룬다. 이렇게 정리를 미루다 보니 삶에 미루는 습관이 생기는 기분이다.
한 번 큰 정리를 하고 나면 그 이후는 어떤가? 조금씩 정리한 물건들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있어야 할 자리에 못 있고 이런저런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아무리 찾아도 없던 약이 책꽂이에서 나온다. 책꽂이 앞에서 먹고 나머지는 거기에 둔 것이다. 그 많던 가위는 어디로 간 걸까? 옷장 선반에서 발견된다. 새 옷 택을 가위로 자르고 그대로 거기 둔 기억이 떠오른다. 정리도 안되고 혼란스러운데 치매까지 오는 것 같아서 괴롭다.
돌아보니 정리가 안 되는 이유가 나온다. 정리가 귀찮아 미루었다 한 번에 하는 스타일이다. 대정리는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컸다. 그런 심리적 부담으로 정리의 빈도가 점점 줄었다. 그리고 평소 정리하거나 제자리에 두는 습관은 없었다. 매일 조금씩 무질서 상태가 되어갔다. 며칠만 지나도 누적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더 어지러워질수록 정리하려는 마음을 가지기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마법 같은 정리의 비법이 있기를 늘 갈구했다. 약간의 노력만 들이고도 늘 정리된 집에서 살 수 없을까 하는 방법을 찾았다.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처럼 정리의 천기누설을 구하기 위해 방황했다.
오랜 방황 끝에 확실히 알았다. 그런 만병 통치약은 없다. 마치 한 달 안에 고통 없이 10kg 감량하려는 것과 비슷한 생각이다. 금방 요요가 와서 예전으로 돌아온다. 격투기 선수들이 시합을 며칠 앞두고 몸에 있는 수분을 모두 제거해 하루 만에 수 킬로그램에서 10kg 이상 감량한다. 그런 탈수 상태는 의학적으로 건강에 위험하고 지속될 수도 없다. 원하는 것은 한 번 정리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리된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요요 없이 건강하게 체중을 감량하는 것과 비슷하다. 살빼고 싶으면 건강한 식생활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 정리된 공간에서 생활하라면 정리하는 생활습관이 몸에 익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