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기관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1

엄마인 저 때문입니다.

by 랄라이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지 않으니

주변에서 그럽니다.



"엄마가 어떻게 하루 종일 데리고 있어? 난 못해~"

"한 끼라도 먹고 와야 편하지..."


"대단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아이 사회성 떨어져"


"6살에는 무조건 꼭 보내야 돼!!"


"엄마랑만 있으니까 애가 말이 느리지..."



길을 가다가도 말씀하십니다.


" 아가야 넌 어느 유치원 다녀?(어린이집 다녀?)"


그럼 후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 전 아무 데도 안 다녀요"


깜짝 놀라시며..

하시는 말씀들은.


" 엄마랑만 있으니까 심심하겠다. 친구도 만나야지 "


"애기 엄마 이때는 유치원 보내야 해요"



이런 말들은 초보 엄마인 저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저는 후니를 낳고

6개월만 키우고 일을 하러 나가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아이를 낳았더니

아이가 젖을 빠는 모습이 너무 예뻤고 이 젖을 억지로 떼어버리고 일을 하러 나갈 수가 없어


1년만 키우면, 아니 기저귀만 떼면

어린이집을 보내야겠다며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 두었습니다.



당연히 아이를 낳으면 어린이 집에 맡겨야 되는 줄 알았고

국공립 어린이집 경쟁률이 40대 1 정도로 높았기에


못 보내면 끝이구나!

이렇게 다들 어린이집을 보내려고 하는구나!


싶어 초조해지기도 했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땐

주변에서 절대 못한다고 했습니다.



낮에 잠깐이라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후니가 4살 막 태어난 여니가 1살이었습니다.


후니는 막 기저귀를 뗀 제 눈엔 아직 아기였습니다.

동생이 태어나 모든 환경이 달라졌고 엄마를 빼앗긴 느낌도 서러운데

거기다 엄마가 나를 새로운 환경인 어린이집에 보냈다?



나 편하자고 아이와 둘이 누렸던 것들을 (책 읽기 몰입하기 등)

동생이 생겼다는 이유로 빼앗고 싶진 않았습니다.



이것도 온전히 엄마인 제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도 가기 싫어했지만 내밀지 않은 것도 엄마인 저니까요.





둘이 되니 정말 정말 힘들긴 했습니다.


2배가 아니라 10배는 힘들었습니다.


후니에게 예전처럼 먹이는 것도, 책을 읽어주는 것도, 곁에 누워 재워주는 것도

여니가 있으니 쉽지 않았습니다.



후니에게 기다려 달라고 얘기하고

혼자 좀 놀아라고 얘기해야 할 땐

몸으론 여니를 안고 눈으로는 후니를 보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후니에게 예전처럼 해주지 못하는 게

왜 이렇게 서럽던지요.




아이들과 셋이서 보내는 24시간.

쉬는 날은 당연히 없는

멈추지 않는 바퀴가 돌아가는 시간만이 존재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이유는

내 아이의 어린 시절의 모든 순간을

엄마인 제가 곁에서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컸고 모든 이들이 그렇게 커갔듯이

엄마와 아이가 함께 부비고 서로 맘껏 사랑할 수 있는 황금기의 시간은

아이의 유아기 시절 밖 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엄마의 품과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유아기에 듬뿍 줄 수 있는 모든 걸 주고

엄마가 필요 없는 때가 되면

제가 준 사랑의 힘으로 커가길 바랬습니다.




엄마가 무한히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고

엄마가 필요하지 않을 땐 탁 털고 바라만 봐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절 위해. 제가 후회 없이 마음껏 사랑해주고 몸을 내어주고 싶어서

기관에 보내지 않고 함께 있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아이가 젖을 빨고 유치가 하나 둘 나고 기저귀 크기가 달라지고

오줌똥 싸는 것 씻겨주고 갈아주고 이유식을 먹여주고 작은 옷을 입혀주는 것


핏덩이 신생아가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 방긋방긋 웃어주는 모습부터

뒤집고 기고 한발 한발 걷는 것 엄마라고 처음 말하는 것들까지



아이의 커가는 모습을

제눈에 전부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싶었습니다.




엄마하고 부를 때 옆에서 언제든 달려가고

너의 곁엔 엄마가 항상 있어.

엄마가 지켜주고 있어

줄 수 있는 사랑을 다 주고 있단다.



라고 마음껏 표현해주었습니다.




내 몸으로 내 아이를 키워나가는 것이 모든 순간 소중했고 감사했습니다.






다시 그 선택을 해야 한다면

저는 당연히 그 힘들고 외로웠던 시절로

돌아갈 것입니다.



지금 커버린 아이들은

저를 그때처럼 찾지 않습니다.




오동통하고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던

작았던 내 아이들은


그 힘으로

아주 잘 커주었습니다.



잘 못 커주었다 해도

후회할 일은 없지요.



제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다 주어

어린 시절을 함께해 주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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