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서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행복한 엄마

by 랄라이







저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녀소녀 한 여자아이로 학창 시절을 보냈고

다들 하니까 저도 공부해서(공부가 끔찍이도 싫었지만) 대학교도 갔고

대학교 다니며 뾰족구두도 신어보고 녹색으로 머리도 염색해보고 클럽에서도 놀아보고

여느 20대 풋풋한 여자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해보며 대학원까지 진학해서 교원자격증도 땄습니다.



덕에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열심히 살진 않았어도 꽤 재밌게 지냈습니다.




저의 직업이 좋았고

가르치는 것이 좋았고 학생들의 눈빛이 좋았습니다.




옷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 입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쁘게 꾸미고 다녔던 시절.




아이 낳기 전의 제 모습.




참 예쁘고 나름 당당했던 모습들을 떠올리면




아이를 낳고 제가 이 시절 옷을 입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6개월 정도 모유 수유하고 아이 맡기고 나가서 일해야지.

멋진 엄마가 되어야지. 일하는 모습 보여주는...



저는 그런 여자였습니다.













아이가 뱃속에 생겼습니다.

신기하고 경이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감사로 가득했습니다.



만삭의 배로 출산 한 달 전까지 일을 하면서도

저는 아이 낳고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너무나 예뻤습니다.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모든 순간이 감동이고 모든 순간이 소중했고 모든 순간이 감사했습니다.



아이의 모든 것을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가 처음 느끼는 보드라운 살결이 엄마이고

따뜻한 엄마품에서 사랑 듬뿍 받으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고

안정된 마음으로 불안을 느끼지 않으며 포근하게

제가 키우고 싶어 졌습니다.




아이를 보기 전에는 생각해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보드라운 아이를 안아주고 젖먹이는 순간이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함께하고 싶었지요.


아이는 너무 빠르게 클 것이고

이 작은 아이가 커가는 순간순간을 엄마인 제 눈에 모두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는 일을 하지 않는. 집에서 아이를 보는. 육아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순탄하진 않았습니다.

아이는 너무 울었고

아이는 너무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야 하는데.......




모르는 것이 많아서 육아서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을 잘 다독였지만

아이를 혼자 보는 것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우선 사람으로서 해야 되는 것들을

제가 지금까지 크면서 희생해보지 않은 먹고 싸고 자는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엄마도 처음 주부도 처음 육아도 처음.



아이의 밥도 직접 해줘야 했고 제 밥도 해야 했고

아이를 먹여야 했고 저도 먹어야 했고

시도 때도 없이 모든 물건들이 입으로 들어가니 닦고 닦고 해야 했고

아이가 자야지만 쉬는데. 밀린 설거지 하는데.

아이는 눕히면 깨고 눕히면 깨니. 저는 잠을 못 자고.

고목나무 매미처럼 딱 붙어 떨어지질 않으니 허리는 이미 내 허리가 아니고.

아이가 싼 것도 치워야 했고 나도 싸야 했고

빨래도 해야 되는데. 신랑 밥도 챙겨주고.



그래서

밥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국에 밥을 말아 허겁지겁 싱크대에 서서 먹곤 했는데

가끔은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제 처지가 서러워

펑펑 울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식탁에 올려놓고 국에 말아 후다닥.








아이를 보는 엄마는 알약 한알로 배부르게 해주는 약이 필요하다며.


흑흑



편하게 응가하고 싶은데 아이가 매달립니다.

아이를 안고 응가 싼 세월도 몇 년....



잠 좀 자야지.. 하고 눈을 붙이면

어김없이 고요를 깨고 새벽에 깨서 웁니다.



둥가 둥가 둥구야..

안고 달래고 "아가야 울지 마~ 아빠 잠 못 자"하며

베란다에서 24시간 여는 해장국집에 켜진 간판 불빛을 보며 버틴 새벽이었습니다.



목이 늘어난 옷만 입고 있었고

제대로 된 옷을 입어도 금방 더러워지고 늘어났습니다.



운동화에 운동복이 제일 편하고

머리는 매일 감질 못하니 질끈 묶는 게 제일 좋고




늘어난 뱃살. 빠지는 머리털. 푸석한 얼굴.

아이와 아기띠와 한 몸이 된 저는

예전 옷들은 아예 입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너무 아껴서 똥이된 구두도.




매니큐어도 당연히 당연히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지 못했습니다.

수시로 입에 넣어줘야 하는데,

수시로 손에 물이 묻는데 가당치 않았습니다.



아이를 낳은 순간 제 삶은 180도 변했습니다.



12시간씩도 잘 자던 제가 2시간 3시간 토막잠을 자야 했고

밥 먹는 것 싸는 것 씻는 것도 아이 눈치를 보고 아이를 매달고 해야 했고

어떤 옷을 입어도 아줌마처럼 촌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저는 여자에서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여자일 때보다 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옹알옹알 움직이는 것도 예쁘고

오물오물 젖을 빠는 모습도 감동이었습니다.



아이 이가 쑤욱 쑤욱 한 개씩 올라오는 것도 소중했고

기저귀 갈아줄 때마다 배에 불어주는 바람에 까르륵 넘어가게 웃어주는 웃음소리가 큰 기쁨이었습니다.



너무 예뻤습니다.

오동통한 볼살, 소시지 팔다리, 안아줘하고 매달리는 팔, 아장 자장 걷는 다리



엄마하고 말해주는 입, 새근새근 잠이든 모습,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

쑥쑥 커서 작아지는 옷들.




엄마 엄마 하며 꼭 붙어 매달리는 작은 생명이

제가 지키고 제가 키우는 제가 만들어가는 생명이



절 살아가게 하고

제가 이 세상을 살아갈만한 이유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이와 단 둘이 유모차를 끌고 놀이터를 나갈 때면

초록 나뭇잎도 소중하고 밝은 햇살도 소중하고 후루룩 떨어지는 빗방울도 소중했습니다.




모든 것이

건강히 옆에 있어주는

저에게 생명을 기대어 살고 있는

이 아이가 있어줌에 감사로 가득했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전 아이를 낳아 키우며

아이가 저 또한 키우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아이로 인해 행복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도 저는 아이에게 자주 말합니다.



"엄마는 후니를 만난 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엄마에게 와준 생명 후니야 정말 고마워"


라고




그럼 후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말 좀 이제 그만해"라고 ^^






그러면서 "나도 엄마 좋아"라고 해줍니다.






저는 그냥 엄마가 아니라.


행복한 여자 엄마가 되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두 아이 기관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