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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이 Nov 09. 2022

11/6(일) 오늘은 좀 쉬고 싶은 날.

어제 시댁 잔치가 있었습니다.

며느리인 저는 떡이며 케이크이며 수건이며 장소 예약이며

준비하느라 애쓴 것도 없이 기가 빨렸습니다.

그냥 서있기만 해도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었지요. 


즐겁게 잔치를 잘 치렀습니다.

친척분들도 기쁘게 드시다 모두 잘 돌아가셨고요.


어머니 집에서 고모댁이랑 모였는데

이때 작은 다툼이 있었습니다.

저는 주된 대상자가 아니었음에도 마음이 짓눌리듯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ㅠㅠ


그리고 밤이 흘러 어김없이 아침이 왔습니다.


밤은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지나간 듯한데

아침의 빛은 여지없이 반짝이고 예쁩니다. 


그래서 또 하루를 살아가나 봅니다.

어둠 뒤에 항상 빛이 오니까. 






아이들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있습니다.


여니는 아침부터 옷 입히기를 하자고 조릅니다.

밀린 설거지며 빨래가 쌓여 있어 집안일을 하며 아이랑 놀아주는데

집중하지 않는 엄마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줘~" 

" 엄마는 놀아준다면서 놀아주지도 않아!!"


"여니야 엄마가 바쁘니까 혼자 놀아줄 수 있어?"라고 말해버렸네요.

솔직히 그리 바쁜 일도 없었습니다.


어제 일로 기운이 쏙 빠진 데다가 머릿속이 복잡해서

아이와 놀아주는 것에 집중이 되지 않았거든요 ㅠㅠ

아이랑 30분 놀아주는 것이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알았어.......나 혼자 놀면 되잖아........... 힝힝" 하며

주섬주섬 옷 입히기 스티커를 챙깁니다.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엄마 때문에 아이에게 상처만 주네요.ㅠㅠ


"여니야 엄마가 타이머 맞춰놓고 딱 20분만 놀아줄게

그다음부터는 혼자 놀 수 있어?" 하고 놀아 주었습니다.


타이머가 울리자

"이제 엄마 할 일해~~ 나 다른 거 하고 놀래~"라고 하네요.


기특하기도 했지만. 그저 엄마라는 권위 있는 사람의 말에 굴복한 듯한 느낌이 들어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그냥 푹 쉬고 싶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여니야 엄마가 오늘은 재밌게 못 놀아 준 것 같아 미안해.

나중에는 진짜 재밌게 놀아줄게!"라고 말해주니 방긋 웃으며 장난을 치네요.


꼭 새기고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후니는 학습만화책을 보는데

한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엄마 입 벌리고 ㅁ라고 말해봐~" 

진짜 한글이 입모양을 따라 만들어졌냐며 재밌게 책을 읽어 갑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가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집 앞 놀이터에서 1-2시간 놀다 들어왔고

배가 고프다고 해서 돈가스를 구워주는데 밥이 거의 없네요 ㅠㅠ

정신을 정말 놓아버린 일요일입니다.


조금남은 밥을 나눠 담고는

돈가스 많이~밥 조금~이렇게 해서 저녁을 때웠습니다.


일요일은 재활용하는 날인데 

해가 지고 나서야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재활용을 하러 나왔습니다.


은은한 달빛이 보입니다.

하루 종일 구름이 낀 하루였었는데.

높은 아파트 사이로 달이 보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저번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저를 향해  "이제 힘 좀 내!"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아이들의 어떤 말도 귀찮게 들리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혼자서 푹 좀 쉬면 좋겠다 싶은 날이 있습니다.

하지만 곁에는 24시간 아이들이 붙어 있지요.


저는 오늘도 아이들의 모든 순간이 너무나 예쁘고 빛이 났고 소중했습니다.

아이들이 곁에 있다는 존재 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는 삶이지요.


오늘은 제가 욕심을 부린 날이네요.

내일은 으샤 으샤! 힘 내보기로 합니다!



아이들의 모든 순간이 감사입니다. 

단 하루도 똑같은 날은 없습니다. 

단 하루도 특별하지 않은 날은 없습니다.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은 없습니다. 오늘도. 책 육아. 배려 육아. 

그리고 나와 아이가 세상 제일 행복한 육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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