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꾼일까? 2편

by 해안 강민주

투기꾼일까? 2편


해안 강민주


스무 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엄마는

외할머니가 아프다는 말에

잠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잠시였을 뿐인데,

그 ‘잠시’는

평생이 되었다.

부모의 소원이라는 이름에 떠밀려

엄마는 아빠의 집으로 시집을 왔다.


시골의 시간은

엄마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매일 조금씩

숨을 조였다.


그 삶은

이제 와 누가 들어도

눈물 없이는

끝까지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엄마는 말하곤 했다.

자식들 교육 때문에

도회지로 나왔을 때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고.


스무 해도 훨씬 전에

엄마는 부푼 꿈을 안고

전세를 끼고

칠천만 원짜리 집 하나를 샀다.


그 집은

엄마가 처음으로

자기 명의의 재산을 가진 날로

비로소

숨을 마음껏 쉬어본

공간이었다.


그러나 돈이 없던 엄마는

그 집에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다.


자식들마저

각자 가정을 꾸리며

그 집은

세를 주는 집이 되었다.


그러다

이모가 이혼을 했다.

아이 손을 잡고

무일푼으로 시댁을 나와

갈 곳이 없어지자

그 집에

이모가 잠시 머물기로 했다.


그 후 그 집은

이모의 불행과

엄마의 눈물겨운 형제애로 인해

우리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그저

이름만 남은 집이 되었다.


얼마 뒤

엄마가 암에 걸렸고,

나는 무리를 해서

시골집에서 십 분 거리,

시내의 작은 아파트를

사드렸다.


돌아가시기 전

엄마 명의의

번듯한 아파트에서

살아보게 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부모님은

어느 날 갑자기

‘삼 주택자’가 되었다.


2018년,

아빠는 시골 생활을 접고

아파트로 오기로 했다.


사십 년 넘게 살던

시골 집을 팔았을 때,

일억 육천에 팔린 집의

양도세는

삼천육백만 원이었다.


이유는

이모가 살고 있는

우리가 손도 댈 수 없는

칠천만 원짜리 집 때문에

부모님은

‘3주택자’였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집은

집이 아니게 되었고,

말은

말이 되지 못했다.


부모님 사이에도,

자식들과 엄마 사이에도

지워지지 않는

금이 생겼다.


아빠는

끝내

아파트로 오지 않았다.

시골에 농막을 짓고

혼자 산다.


일흔다섯의 나이로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지만,

그곳에 ‘집’이 없다는 이유로

노인에게 주어지는

국가의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의

변변치 않은 주택 두 채는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같이 살지도 않는데

차라리 이혼해서

한 채씩 나누면 어떠냐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떠오르는 밤.


몇십억 하는 남들 집 때문에

초가 삼간 가진 부모와 자식들이

이런 생각을 해야만 하는

시대에 살게 된걸까?


잠이 오지 않는다.

집보다 먼저

사람이

무너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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