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나, 그대를 떠나

by 해안 강민주

나, 그대를 떠나


해안


한때는,

솜사탕 같은 손편지가

무쇠 서랍 속까지

달콤한 향으로 가득 채웠지요.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던

그 이름.

그 웃음.


내 세상은

온통

그대의 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서로의 옷고름을

단단히 매며,

영원의 약속을

사진 한 장에 담던 날.


감히 몰랐습니다.

영원의 약속조차

풀릴 수 있다는 것을.


지켜지지 않는 약속에

가슴이 저릴 때마다


하나둘

태워낸 손편지의 재를

사약처럼

천천히

삼켰습니다.


비워진 서랍의

차가운 쇠 냄새 앞에서,

핸드폰 속 그대를

처음으로 삭제하던 날.


붉어진 두 눈 위로

식지 않은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더 이상 태울 편지도,

삭제할 추억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풀려가는

우리의 옷고름을 잘라

그대에게

흘려보냈습니다.


잘린 옷고름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대여.


그대가 모르는 시간 속에서,

영원의 약속을 담았던 사진이

내 안에서

잿빛으로

흩어지던 순간.


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습니다.


나와 다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대의 매 순간이

평온하고,

자유롭기를.


아름다운 새 옷에 취해

그대의 이름 옆에서

눈물로 풀려나간 나를

끝내 떠올리지 않기를.


그리하여,

다음 생의 문턱에서도

우리의 옷고름이

다시는

스치지 않기를.


나는 그렇게,

그대를 떠나,

잿빛 서리 속에서

찬란한 국화로

피어납니다.


투데이 플러스에 실렸던 시

‘나, 그대를 떠나 국화로 피어납니다’

다시 퇴고한 것입니다.


[투데이플러스]

안녕하세요. 강민주 시인님


나, 그대를 떠나 국화로 피어납니다

https://www.today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