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에게 빌지 마오
불서와 불경을 읽는 내 얼굴은 경이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과거의 잘못에 대한 자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지난날의 잘못이 떠오를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되뇌었다. 그리고 부처님을 떠올리며 절을 올리곤 했다. 책을 넘길 때마다 관련된 과거의 사건들이 떠올랐다. 불서를 통해 과거의 사건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 깨달음은 내 마음에 평온과 통찰을 가져다주었으며 행동 변화를 이끌었다.
그 기억은 1996년쯤으로, 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친구의 자취방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 친구 경아가 ‘수호천사를 불러주세요’라는 게임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는 고등학교 때 유행했던 ‘분신사바’의 후 속편쯤 되는 게임으로 ‘수호천사’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 없는 느낌에 우리는 그 게임을 시작했다.
먼저 친구 두 명이 게임을 시작했다. 모태신앙 기독교인인 두 친구는 빨간 볼펜 하나를 함께 쥐고 눈을 감았다. 그들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이 잡고 있는 빨간 볼펜을 종이의 중앙에 옮겨주었다. 두 사람은 눈을 감은 채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빨간 볼펜을 잡고,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질문을 던졌다. 한 명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고, 다른 한 명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손끝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질문을 받은 빨간 펜(수호천사)은 스르륵 움직이며 친구들의 손을 ‘YES’나 ‘NO’로 이끌었다. 이 모습은 신기하고 미스터리 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친구들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설렘과 궁금증, 그리고 장난스러운 기대감과 약간의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다. 처음에는 장난스러운 질문을 했다.
“둘 중 누가 더 예뻐요?”
“저는 남자 친구가 있나요?”
나는 질문을 한 친구들에게 빨간 볼펜이 가르쳐 준 답을 전했고 그때마다 친구들은 눈을 감은 채 까르르 웃었다.
친구들의 게임이 끝났다. 나는 먼저 명이라는 친구에게 게임을 함께 하자고 했다. 명이는 불자인 나와 함께 “수호천사를 불러주세요”라는 게임을 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명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랑 하면 정말 귀신이 올 것 같아서 못 하겠어.”
다리를 다친 사건 이후, 나는 스스로를 불교 신자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불교와 무속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명이를 보며, 나도 정말 ‘불교 신자인 내가 이런 게임을 하면 귀신이 오는 것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귀신은 불교 하고만 관련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살짝 게임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런데 예전에 나에게 손가락 점을 봐주면서 “너는 커다란 칼자국이 있을 팔자야.”라고 말했던 경아가 나랑 게임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앞에서와 똑같은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되었다. 웃음 속에 시작했던 게임은 점차 진지해졌다. 나는 수호천사에게 물었다.
“교수가 될 수 있나요?”
“변호사가 될 수 있나요?”
수호천사는 교수는 될 수 없으나 변호사는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예기치 않게 물어본 질문이 있었다.
“당신(수호천사)은 지금 행복하세요?”
수호천사는 원을 크게 그리더니 갑자기 “NO”로 가서 멈췄다. 그 순간, 내 가슴속에 무언가 차갑고 섬뜩한 기운이 스쳤다. 게임 내용을 종합하면 수호천사는 자신이 사고로 죽었고, 그래서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답해주던 존재가 사고로 죽었다는 것과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은 왠지 모르게 섬뜩했다. 친구와 나는 눈을 떠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 귀신이 빨간 볼펜을 움직이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우리는 동시에 빨간 볼펜을 집어던졌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나는 생각했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귀신이 어떻게 남의 행복을 위해 진심을 다할 수 있을까?
불경에서는 귀신이 악한 기운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이 그들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공양을 바치면 그 귀신은 더욱 강해지고 그 힘으로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고승들은 사람들에게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말고, 대신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나는 과거 귀신의 도움으로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욕심내었던 것을 참회했다. 그리고 공부가 깊어질수록 나와 인연 있는 귀신들을 불쌍히 여겼고 그들을 구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그들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게 된 계기다.
친구들 이름은 가명입니다.
고승 법문곡 중 ‘권왕가’ 일부 발췌
병이 비록 중하여도 귀신에게 빌지 마오. 수요 장단 정한 것을 저 귀신인들 어이 할고. 부처님이 방광 하니, 죽는 자를 만나거든 부디 염불 하여 주오.
지장경 ‘제7품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함께 이익되게 하심’ 중 일부 발췌
임종하는 날에는 산목숨을 죽이거나 악한 인연 짓는 것을 삼가고, 귀신과 도깨비들에게 제사 지내거나 예배하여 구하지 말라고 권하나이다. 왜냐하면 살생하는 일과 귀신에 제사 지내는 일 등은 죽은 사람에게 털끝만큼의 이익도 되지 않으며 죄만 더욱더 깊고 무겁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