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짓기의 중요성
끔찍한 악몽으로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마다 나는 깊은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갈수록 손끝과 발끝이 얼어붙은 듯했고, 몸은 이유 없이 떨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허리 통증에 몸을 굽히고 일어서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갈수록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사랑스러운 아들의 얼굴이었다.
‘내가 아니면 무럭이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을 거야. 무럭이는 나를 믿고 이 세상에 온 것일 테니, 나는 어떻게든 그를 지켜야 해.’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대학 시절 친구인 경아가 꿈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창문 밖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대학 시절 경아와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어느 날, 경아가 점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경아는 내가 다리를 다치기 전, 손가락 점을 통해 나에게 조만간 내 몸에 커다란 칼자국이 생길 거라고 말했던 친구이다. 그때의 나는 불교와 무속을 구분하지 못했고 어머니의 영향으로 점집은 부처님을 믿는 사람, 그중에서도 어머니처럼 나이 든 여자들만 다니는 줄 알았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젊은 경아가 점집에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 의아했다.
경아와 단둘이 점집에 가는 일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불현듯 내가 세 들어 사는 집 앞에 ‘00 암’이라 쓰인 간판을 내걸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경아에게 물었다.
“우리 주인집 아주머니 만나볼래?”
경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서 살짝 불안한 기색이 묻어 나왔지만, 내 설명을 듣더니 “그러겠다”라고 했다.
1994년 왼쪽 종아리뼈가 3 동강 나면서 뼈에 핀을 여러 개 심는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어머니가 내게 갑자기 말을 꺼냈다.
“너, 자취방을 옮겨야겠다.”
나는,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살던 자취방에서는 좋지 않은 일이 너무 많이 생겼다. 큰 수술을 할 정도로 다리도 다쳤고 지독한 가위눌림에도 시달렸다. 저승사자를 보기도 했고 꿈에 내 얼굴을 한 여자가 나타나 나에게 ‘죽기 싫으면 그 시간에 자지 마’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한 적도 있었다. 나는 그 후로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무속인에게 무슨 말을 들은 건지 곧바로 내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속인이 추천한 방향에서 어머니의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며, 나를 거기로 이사시켰다.
새로운 집은 넓은 마당이 있는 1층 단독주택이었다. 주인 세대와 세입자들이 몇십 년을 함께 살아온 집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사 온 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집 대문에 ‘OO암’이라는 간판이 떡하니 붙었다. 놀랍고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주인집 아주머니와 나는 그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고, 이웃들과도 잘 지냈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그 간판에 대해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셨기에 나는 계속 그 집에 살게 되었다.
.
주인집 아주머니는 깊은 눈빛으로 나와 경아를 바라보며 반갑게 맞이했지만, 나는 긴장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동안 집주인으로만 대했지 무속인으로서의 아주머니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주머니는 이미 준비된 듯한 자세로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친구가 그 앞에 앉았다. 나도 친구의 옆자리에 앉았다. 친구가 자신이 최근에 꾸었던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경아는 나와 함께 산길을 걷고 있었다고 했다. 그 순간, 공포와 신비로 가득 찬 분위기 속에서 하늘에서 무당 옷이 날아왔다. 우리는 놀라서 그 옷을 피해 산속으로 달려갔으나, 갑자기 그 무당 옷이 경아를 덮쳤다고 했다.
그때 경아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나일까? 왜 네가 아니고 나이지?”
경아의 말에 나는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다.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경아는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저는 기독교고 쟤(나)는 불교잖아요. 더구나 쟤 이모는 스님이라고요. 왜 무당 옷이 절에 다니는 쟤가 아니라 교회 다니는 저를 선택한 걸까요?”
그 순간, 현실이 왜곡된 것처럼 느껴졌고, 온몸에 떨림이 느껴졌다. 입술이 바짝 말라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경아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마음을 휩쓸었다.
‘무당 옷은 내 것일까?’
주인집 아주머니는 경아를 똑바로 응시하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쟤(나)는 조상이 엄청나게 공들여 이 땅에 보낸 자손이야. 조상이 쟤를 얼마나 이뻐하는데, 쟤를 무당 만들겠어? 절대 안 만들지!!!.”
그녀의 단호하고 강렬한 눈빛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주머니는 경아에게 덧붙였다.
“교회에 다니면 교회에 열심히 다녀. 이런 데 기웃거리다간 정말 신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2008년, 어머니가 암 치료를 받던 병원으로 경아가 문병을 왔다. 그때 그녀는 신생아용 옷을 선물하며 조만간 내가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말을 믿으라며, 그동안 신에게 시달렸던 일을 고백했다.
과거의 일이 떠오른 나는, 경아가 나에게 자신의 무당 옷을 넘기려고 꿈에 자꾸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나중에, 교회에 다니는 둘째 이모에게, 경아를 지키는 할머니가 내가 걱정되어 찾아오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경아는 법학과를 졸업한 후, 유아교육과에 다시 입학했고 현재 어린이집 원장을 하고 있다. 대학 시절, 그녀와 내가 친해진 것은 같은 과라서 라는 이유도 있지만 같은 봉사동아리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제나 남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돌잔치 대신 그 비용으로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염소와 축구공을 보내기도 했다.
그녀가 신에게서 벗어나 무사히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나도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경아가 대학에 다닐 때부터 베푸는 삶을 살았던 것을 기억하며, 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 바로 베푸는 삶이 아닐까 생각했다.
후에, 나는 석주 큰스님이 쓴 ‘석가, 우리들의 부처님’을 읽으면서 부처님도 복을 짓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했고 거기서 많은 천사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보고 배웠다. 지금 나는 ‘서구 스포츠스태킹 봉사단’ 소속으로 지역아동센터와 주야간 보호센터 그리고 요양병원 등에서 스포츠스태킹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렇게 나의 경험을 세상에 공유했던 것도 나와 같은 상처를 입은 이들을 구하고 싶다는 내 나름의 보시였다. 그러나 세상을 구하고 싶었던 내가 세상에 의해 매번 구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면서, 보시란 결국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걱정돼서 덧붙인다. 복 짓기를 핑계로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전 재산 헌납을 요구하는 이가 있다면 가짜다. 그가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고 남들로부터 존경을 많이 받더라도 계율을 지키는 이라면 이런 요구를 할 수 없다.
또한 불교에는 무재칠시(無財七施)의 가르침이 있다. 내가 가진 재물이 없어도 복을 쌓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곱 가지 방법을 의미한다.
1. 안시 (眼施)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2. 화안시 (和顔施) 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것
3. 언사시 (言辭施)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
4. 신시 (身施) 예의 바르게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것
5. 심시 (心施)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
6. 상좌시 (床座施)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앙보 하는 것
7. 방사시 (房舍施) 사람을 방에 재워 주는 것
이렇게 공들여 쓴 글에 좋아요와 구독을 눌러주는 것도 복 짓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친구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무당옷이보이는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