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집안에 숨겨진 비밀

외할머니 천도재, 첫 번째 이야기

by 해안 강민주

이 글은 ‘가족 간의 상처와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나와 가족들은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어떻게든 이 상처를 치유하고 갈등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덕분에 우리가 오늘을 살아있다.


큰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 연락을 자주 하지 않던 터라, 급히 전화를 받으며 마음이 불안했다. 전화기 속에서 떨리는 큰 이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급한 일이 생겼어, 도와줄 수 있겠니?”

무언가 심각한 일이 있다는 직감이 들어 나는 얼른 대답했다.

“무슨 일이야? 천천히 말해봐.”


큰 이모는 울먹이며 상황을 설명했다.

“네 외삼촌 하고 태화(큰 이모 아들)가… 둘이 절을 담보로 돈을 빌려서 사업을 했는데… 그게 망했어. 나는 둘이 하는 말만 믿었지. 그저 사업이 잘될 거라 믿었는데 둘이 돈을 못 갚아서 절이 경매에 넘어간대”

큰 이모는 서울 외대 근처 70평 부지에 있는 절을 나보고 사라고 하셨다.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서, 나는 어린 아들을 아기 띠로 가슴에 단단히 매고 서울로 향했다. 아들의 작은 몸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나는 아이의 고요한 숨소리에 위안을 얻으면서도, 아득한 피로감에 짓눌려 있었다. 손과 발은 차가운 얼음이 박힌 듯한 느낌을 주었고, 허리는 끊어질 듯한 통증을 안겨주었다. 온몸이 고통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으로 참회문을 되뇌었다.

“남의 물건 훔치지 않고 내 물건 보시하겠습니다.”

"탐심 내지 않고 만족한 마음 갖겠습니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북적임 속에서도, 나는 아들을 품에 안고 그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큰 이모의 어려움을 이용해 제 욕심을 채우지 않게 해 주세요.”


서울에 도착해 상황을 알아보니, 외삼촌과 태화의 사업 실패로 채무가 계속 쌓였고, 결국 절이 채권자에게 넘어갈 상황이었다. 나는 현실적으로 절을 구할 방법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모에게 절을 포기하라고 말했다.


아들 때문에 절을 날리고 길바닥에 나앉을지도 모르게 된 큰 이모.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 아들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고 오갈 데가 없어진 외할머니. 두 분의 사정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두 분은 늘 “아들, 아들”하던 분이었다. 나는 큰 이모에게 외할머니의 천도재를 지내자고 말했다.

천도재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놀라움과 감동을 느꼈다.

‘아니, 그리 좋은 게 있었단 말인가?’

몇백만 원만 내고 천도재를 지내주면 평생 살아온 삶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곧바로 극락의 삶을 받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천도재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왜 이제야 이런 좋은 것을 알게 되었을까? 하는 자책도 들었다.

‘이렇게 좋은 것을 내 조상을 위해 하지 않을 이유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첫 번째 천도재 대상으로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내가 기억하기로 생전의 그녀는 항상 불경을 틀어놓고 있었다. 아픈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오면 그녀는 검은 환약을 건넸다. 신기하게도 찾아오는 이들의 병명이 모두 달랐는데 똑같은 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며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또한 외할머니는 절대 공짜로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주들이 건네는 작은 선물에도 꼭 보답하셨다. 특히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아꼈다. 그런 외할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그런데 남편의 말에 의하면 남편이 가는 점집마다 외할머니가 나타나 남편에게 조언한다고 했다. 이런 경험은 ‘외할머니는 보통 분이 아니시구나!, 그래서 돌아가신 후에도 늘 우리 가족을 지키시는구나!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그러나 불서와 불경을 읽으면서 죽은 자가 산 자의 일에 간섭한다는 것에 대해 문제를 느끼기 시작했다. 천도재를 통해 외할머니가 극락에서 평온할 수 있도록, 그녀의 영혼이 고통 없이 밝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면 내가 겪고 있는 이상한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내 제안을 들은 큰 이모의 말투는 평소와 다르게 낮고, 차가웠다.

“전생에 나는 외할아버지 첩이었대.”

이모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그래서인지 네 외할머니가 어린 시절부터 나를 구박했어,”

이모는 잠시 말을 멈추며 눈을 감았다.

“나를 아주 어릴 때 남의 집 식모로 보냈어. 추운 겨울에 차가운 냇가에서 주인집 얘들 기저귀 빨래하며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던 것이 아직도 생각나.”


내가 알기로 외가는 커다란 복숭아 과수원도 있었고 땅도 많았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어머니가 어린 시절, 동네에서 일꾼이 제일 많았던 집이 외가라고 했다. 이모는 오래도록 묵혀온 감정들을 토해냈다.

“엄마를 생각하면 아직도 원망스러워. 그런 엄마를 위한 천도재라니... 절대 안 해”


나는 이모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다. ‘절까지 날려버린 아들은 그토록 감싸면서 왜 자신의 어머니는 그토록 미워하는 걸까?’ 나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스님 옷을 입은 이모가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로 그토록 깊은 원망을 안고 있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다. 조계종 사찰이라는 큰 이모의 절이 전통적인 사찰의 모습과 다른 점과 이모가 머리를 밀지 않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쩜 이모가 제대로 된 스님이 아니라 그런 것이 아닐까? 의심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나는 완강한 이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녀에게 그동안 집안의 금기에 가까웠던 외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말을 꺼냈다.

“이모, 그래도 외할머니를 천도시켜 드려야 해.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암에 걸렸어. 둘째, 셋째 그리고 막내 이모까지 집안이 풍비박산 나 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어. 지금 이모는 막내 외삼촌과 태화 때문에 절을 날리게 생겼고”

마음속으로 ‘나는 지금 신에게 시달리고 있어’라고 덧붙였다.


어른들은 외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나와 아이들에게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피해 다른 곳에서 속삭이듯 이야기하던 그 순간들, 그들의 눈빛과 목소리의 떨림 속에서 내게 숨기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았다. 어느 날은 어른들의 대화가 흐릿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 말들은 명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내 마음에 외할머니의 죽음이 그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퍼졌다.

결정적으로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을 때, 용인에서 어머니와 남편과 함께 용하다는 무속인을 만났을 때였다. 갑자기 무속인이 가슴을 움켜잡으며 괴로워하더니, 힘겹게 말을 했다.

“조상 중에 약 먹고 죽은 사람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었고, 눈빛이 흔들렸다. 나를 돌아보는 어머니의 눈에 슬픔과 당혹감이 어렸다. 마치 그 말이 그녀를 짓누르듯, 마음속 깊은 곳의 상처가 건드려진 듯 어머니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모든 재산을 맏이인 큰 외삼촌에게 물려주신 외할머니는 결혼 안 한 자식 넷을 데리고 서울 단칸방에 몸을 의탁하셨다. 자식들이 모두 짝을 찾아 떠나고 난 후, 외할머니가 어찌 살았는지, 나는 거기까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 이모가 이혼했다. 이모는 그때 받은 위자료로 큰 외삼촌 집 옆에 있는 집을 구매했고 그 집에서 외할머니랑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모가 그 집을 팔고 막내 이모가 있는 인천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딸이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외할머니는 점점 기운을 잃어갔다. 결국, 그녀는 집의 매매계약서가 체결된 다음 날, 아침 햇살이 아직 집 안에 스며들기 전, 조용히 먼 길을 떠났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단호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마치 저주하듯 이모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 이모 상황을 봐. 자식 때문에 오갈 데 없어진 외할머니와 똑같아. 이모가 외할머니를 계속 원망하면서 외할머니 천도재를 안 지내준다면 이모도 외할머니와 똑같이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거야.”

내 말을 듣고 있는 큰 이모의 눈은 붉게 충혈되었다. 입술을 꽉 다물고 있는 그 고집 센 표정은 마치 외할머니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큰 이모는 밤새 자지 않고 고민하는 듯했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돈을 빌려 달라고 했고 부처님 앞에서 한참을 기도하기도 했다. 다음 날 아주 이른 새벽, 이모는 결연한 표정으로 나에게 외할머니의 천도재를 지내자고 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도재 비용은 내가 다 지불하기로 했다. 급하게 천도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이 차례차례 준비되도록 도왔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정적, 나는 이 속에서 외할머니의 영혼이 편안해지기를, 그동안의 업연이 모두 풀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할머니의 삶을 애도했다.


그 사건이 있고 얼마 후였다. 나는 어머니가 살고 있던 32평 아파트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지원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마치고 살아난 후, 어지간하면 어머니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드렸다. 그러나 곧바로 한계에 부딪혔다. 당시 나는 신에 시달리고 있었고 남편의 사업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내가 아파트에 대한 지원을 끊는다고 하자 어머니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옆에서 내 말을 듣고 있던 둘째 이모는 마치 나의 고민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심드렁하게 말했다.

“돈 아까우면 그냥 네 엄마 보고 죽으라고 해. 그럼 하늘이 알아서 네 엄마 데려갈 거야.”


그 말은 내 마음에 돌처럼 떨어졌다. 처음에는 그저 얼핏 들리던 한 마디로만 여겨졌지만, 곧 그 말의 무게가 내 안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고,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나로 인해 겪는 이 상황이, 외할머니가 그리고 큰 이모가 겪은 상황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쩌면 나에게까지 대물림 될지 모르는 운명을 바꾸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기로 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나에게서 그 아파트를 사셨고 나는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큰 이모 또한 그 사건 이후, “부처님 밥 먹으며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내가 그 짓을 했나 몰라?”라고 말하시며 머리를 완전히 밀으셨고 조그만 사찰을 다시 운영하고 계신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나는, 주야간보호센터나 노인요양병원에서 어르신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거나 학교에서 자살 예방 교육을 하는 강사가 되었다.


권왕가 일부 발췌

나는 과거 본행 시에 삼악도 중 수고러니 우리 효순 권속들이 나를 위해 공덕 닦아 이 극락에 나왔노라


학교에서 생명존중 예방강의 하는 모습


요양병원에서 스포츠스태킹 강의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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