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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내 기도는 내가 하는 것이다

외할머니 천도재 두 번째 이야기

by 엄마쌤강민주

최근 나의 밤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채워져 있었다. 아이가 잠들고 홀로 깨어있으면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방 안의 공기는 냉기와 불안에 젖어들었다. 목소리가 아닌, 생각의 틈새를 파고드는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했다. 나는 두려움 속에 불경을 손에 쥐고 반복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 글자 하나하나가 내 마음속의 공포를 잠재워주길 간절히 바랐다.

스님인 큰 이모라면 내가 겪는 고통을 한눈에 알아차리리라 믿었기에, 나는 이모에게 내가 겪고 있는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와 하룻밤을 함께 보냈지만, 이모는 여전히 내가 느끼고 있는 어두운 감정들과 내 신체적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모, 나 죽을 것 같아… 나 왜 이러는 거야?’

마음속에서 그런 질문들이 무수히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는데, 왜 이모는 마치 내게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대하는 걸까? 나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하고 무표정했지만 내 마음은 부서질 듯 떨렸다. 이모는 언제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지만 이번에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혹시 이모도 나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마음속의 절규와 고통은 점점 더 깊어지고, 그 속에서 믿고 의지할 곳이 없어진 나는 점점 더 외로워졌다.

‘그래도 천도재만 잘 지내면 외할머니도 나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이모의 절에서 외할머니의 천도재를 준비하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몸은 떨리고, 정신은 흐릿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바로 외할머니가 지금 느끼는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묵직한 그릇에 담긴 공양물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부처님 앞에 놓으며 외할머니의 고통이 이 천도재를 통해 씻겨나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모는 천도재를 지낼 준비를 하며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모의 손길은 정성스러움과 동시에 얼핏 느껴지는 불안과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 때때로 나의 시선을 피했다. 그날, 그 작은 순간들 속에서 그녀가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복잡한 감정들이 내게도 전해졌다.

이모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한 가지 분명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원망이었다. 아마도, 그 원망은 그동안 끊임없이 품어왔던 복잡한 감정들, 가족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얽혀 있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때 ‘어떻게 스님이 자기 어머니를 미워할 수 있어?’라는 의문이 내 마음을 스쳤다. 그동안 절에서 스님으로 살아온 이모는 항상 평화롭고 관대해 보였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내면에는 그런 관대함과는 다른 감정이 가득했다.


‘어떻게 스님이 아들에게 절을 사업자금으로 대줄 수 있지?’라는 의문도 함께 떠올랐다. 절이 아들 때문에 경매로 넘어가게 될 위기에 처했는데, 이모는 왜 지금도 “아들, 아들” 하며 아들 잘되기만 바라는 걸까?‘

‘어떻게 스님이 머리를 안 밀었지?’ 그 의문도 있었다. 스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존재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모는 머리카락을 밀지 않았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나는 점점 더 이모를 불신하는 나를 발견했다. 평소에 믿어왔던 이모는 이제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자 스님이 아니었다. 이모가 내면에서 격렬하게 일어나는 갈등과 혼란에 휩싸일수록 나도 그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가고 있었다. 이모의 모습이, 그녀의 선택이,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점점 더 의심스럽게 변해갔다.


한 스님이 절의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의 모습은 다른 스님들과는 사뭇 달랐다. 일반적으로 내가 보았던 스님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고, 고단한 삶의 흔적이 역력한, 다소 추레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모가 초청한 스님은 얼굴이 매우 고운 여스님이었다. 그의 피부는 투명하게 맑았고, 부드럽고 균형 잡힌 미소가 입가에 맴돌았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서부터 그 분위기는 남다른 기품을 풍겼고, 빛깔 좋은 회색 승복의 옷자락은 바람에 살랑이며, 그분의 고요한 존재감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 외모만큼이나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바로 그분의 눈빛이었다. 그 눈은 한없이 고요하고 깊었지만, 그 속에 담긴 세계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분을 만나기 전에 이모로부터 이미 그분이 나나 이모와 다르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쉬며 그분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그의 존재는 마치 세상의 중심에 선 듯 고요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스님이 들어서며 대문이 닫히는 소리는 마치 신령한 힘이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듯한 울림으로 느껴졌다.

스님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보살님에게 연꽃이 보입니다. 세 개의 연꽃이.”

스님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온화했지만, 그 말속에 담긴 깊은 의미는 매우 거대했다. 스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세 개의 연꽃은 하늘이 당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그 말은 내 마음속에 큰 울림이 주었다. 그 스님의 말 하나하나, 눈빛 하나하나가 나를 확신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분이 이번 천도재에 필요한 무언가를 가져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분은 보통 스님이 아니구나! 이 스님이 있어 이번 천도재는 성공하겠구나!’


재가 시작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나는 차츰차츰 마음속에서 의구심이 일었다. 천도재라는 걸 처음 보았지만 이건 내가 원했던 외할머니를 위한 천도재가 아니었다. 이모의 절을 담보로 사채를 빌려 이 사단을 만든 이모 아들과 막내 외삼촌을 위한 기도라는 걸 깨달은 순간, 심장이 점점 빨리 뛰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작정 절을 빠져나갔다.


찬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발걸음은 무겁게 이어졌다. 나는 근처 놀이터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그곳에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내가 다태아 유산을 했을 때, 이모에게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병원에 입원 중이라 비용만 보내고 그 아이들을 위한 기도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다. 그때 이모는 내가 하는 일, 잘 되고 다시 좋은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불공을 드렸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이모가 하는 기도를 보면서 그전의 기도와 지금의 기도 모두,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바란 것은 사랑하는 이들이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천도재였지 내 일신의 안위와 성공이 아니었다. 내 바람을 짓밟은 이모의 행동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놀이터의 그네가 바람에 흔들리며, 내 마음도 흔들렸다. 외손녀가 준비한 천도재조차 받지 못하는 외할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그 자리에서 울고 또 울었다.


나는 이런 경험으로 기도로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명확한 사람일수록 재를 스님에게만 맡기지 말고 스님과 함께 직접 재를 지내라고 말한다. 내가 원하는 바를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또한 내 문제에 나만큼 간절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내 기도는 내가 하는 것이다.


큰스님도 절에 계신 부처님이나 신장 그리고 기도를 하는 스님들이 ‘기도하는 이의 정성’에 감응해서 움직이는 것이라 말한다. 기도하는 이의 정성이 없이 단순히 천도재를 지냈다고 영가가 쉽게 천도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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