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천도재 세 번째 이야기
외사촌 오빠와 스님이신 큰 이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오빠의 장인어른이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큰 이모에게 불공을 부탁했다고 한다. 당시 큰 이모는 자신감을 보이며, “걱정 마라, 장인어른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으셨다.”라고 말했다.
“장인어른, 안 돌아가실 거라더니, 큰 고모에게 기도 후 얼마 안 있어 돌아가셨어.”
외사촌 오빠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무뚝뚝했지만, 그 말속에는 묘한 냉소가 깔려 있었다.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오빠의 말은 단순한 불신을 넘어 깊은 상처처럼 들렸다.
큰 이모와 여스님이 지내고 있는 재가 내가 원한 외할머니의 천도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절을 뛰쳐나가 놀이터에서 한참을 울었다. 절로 돌아온 나는 재를 지내는 법당을 지나쳐 이모의 방으로 향했다. 방의 공기가 묵직하게 나를 누르는 가운데, 벽에 걸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사진이 보였다. 사진 속 외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다정한 미소를 띠고 계셨고, 외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조금은 엄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모의 말에 의하면 외할아버지는 명부에서 높은 직책을 맡고 계시는데 엄격한 성격으로 자식 일에 일절 간섭하지도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자신이 죄가 무거워지는 것도 아랑곳 안 하고 자식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애를 쓰신다고 했다.
사진 속 외할머니의 얼굴은 고요하고 따뜻했지만, 그 표정 속에 담긴 수많은 삶의 고통이 내 눈에 비쳤다. 그 순간, 억누를 수 없었던 감정들이 마치 압축된 봉투처럼 가슴속에서 터져 나왔다. 고요한 눈물 한 방울이 턱 끝을 스치더니, 이내 하염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떨군 채, 사진 앞에 엎드려 중얼거리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부처님, 부처님… 우리 외할머니 너무 불쌍해요. 평생 그렇게 착하게 사셨는데, 그런 험한 죽음 맞이한 것도 불쌍하고, 외할머니가 홀로 생을 마감한 것도 모르고 돌아가신 분 장례 치르며 살아 있는 자손들의 소원까지 등에 짊어지고 저승 가게 했으니…”
내 목소리는 점점 떨렸고, 심장도 크게 울리듯 떨려왔다. 눈물이 계속 흐르며 얼굴을 적셨고, 목까지 울컥 올라오는 감정은 삼키기 어려웠다. 나는 계속 기도를 이어나갔다.
“제발 우리 외할머니 좀 구해주세요. 할머니가 지은 죄가 있다면 그건 다 자식 탓이잖아요. 할머니 탓이 아니에요. 어느 부모가 자식이 죽어가는데 나 몰라라 해요. 부모란 그런 거잖아요…”
목소리가 깨지고, 숨이 터질 듯한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울어도 돌아오지 않을 외할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미안함, 그리고 그 끝없는 죄책감이 나를 짓누르며 덮쳐왔다.
“제발 우리 할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지은 죄, 모두 용서해 주시고 그 업연에서 구해주세요.”
눈물과 콧물로 얼룩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나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외할머니를 위한 기도를 계속했다. 내 기도가 조금이라도 하늘에 전해지기를, 조금이라도 외할머니의 고통이 덜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렇게 나만의 천도재를 지내고 있었다.
그때 법당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굴을 대강 매만진 후 법당으로 갔다. 내가 법당에 들어서자 촛불만이 일렁이고 주변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젊은 여스님은 부처님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정적 속에서 여스님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숨을 고른 그녀의 입에서 낮고 깊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막내 외삼촌)가 사찰을 날린 죄는 너무나 크고 깊어서, 하늘이 그에게 벌을 내릴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비록 작았지만, 그 안에는 묵직한 중압감이 담겨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그 ‘죄’라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 사이의 잘못된 행동이나 실수들이 아니었다. 그 죄는, 오래된 신령의 법을 어지럽히고, 사찰의 신성함을 더럽힌 것이었다.
“그의 영혼은 점점 검게 변해가고 있으며, 이미 영혼의 대부분이 검은 수렁 속에 잠겨있습니다.”
여스님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정숙하지만, 그 말속에 담긴 절망은 굉장히 강렬했다.
“그 수렁은 너무나 깊고 어두워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도 없고, 다른 그 누구도 그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녀가 말할 때, 마치 그 순간에는 공기가 흐르지 않는 듯한 정적이 감돌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자리를 지배하고 있는 듯했다. 여스님은 그저 눈을 감은 채, 고요한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그가 빠져든 수렁은 그 깊이가 하늘과 땅을 잇는 어둠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는 3개 월내에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마지막 말이 끝났을 때, 법당 안의 공기는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다. 절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은 이 말이 단순한 예언에 그치지 않고, 뚜렷한 현실이 될 것임을 느꼈다. 그 예언의 무게는 너무 크고,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법당 안은 깊고 고요한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사방을 둘러싼 천장과 벽들은 마치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감싸 안으려는 듯 공기마저도 조용히 흐르게 했다. 그 한가운데, 큰 이모가 있었다. 이모는 눈을 감고 고요히 입을 열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바람에 실려 온 잔잔한 물소리처럼 부드럽고도 묵직했다. 그녀의 눈은 젊은 여스님을 향하지 않았지만, 그 말은 분명히 그를 향한 것이었다. 젊은 스님은 고개를 숙이며 이모의 말을 새기듯 들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모는 눈을 떠 말없이 촛불을 응시했다. 잠시 후 이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령 기도에 이 사람이 오늘 당장 죽는다고 나와도, 기도하는 사람은 죽음을 함부로 입에 담으면 안 된다.”
이모의 목소리에는 변함없는 고요함이 묻어 있었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강한 신념이 있었다. 젊은 스님은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떻게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지. 눈에 보이는 대로 고대로 전달할 거면, 스님이 기도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이모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말의 의미는 뚜렷했다. 기도는 단지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넘어서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것.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의 불안을 끌어안고, 그 속에서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하면 절을 구할 수 있을지 백방으로 알아보며, 초조와 불안, 그리고 긴장 속에서 젊은 스님에게 무엇이 보이는지 묻고 또 묻던 초라하고 늙은 이모의 모습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그 자리에는 오랜 세월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며 살아온, 단단한 눈빛을 가진 노스님 한 분이 계셨다. 이모가 아닌, 스님의 눈빛 속에는 세상의 시끄러움과 고통을 넘어선 어떤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나이가 들어간 것에서 오는 차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이 가는 것과는 별개로, 이미 지나온 시간 속에서 얻어진 깊은 통찰과 믿음이었다.
법당 안의 침묵은 여전히 깊고 고요했다. 하지만 그 침묵은 더 이상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안에 담긴 고요함은 마치 기도의 소리처럼, 따뜻하고 울림 있는 소리로 다가왔다.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있는 노스님은, 내가 그동안 갈망했던 어떤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저 고요하게 있는 그 모습이, 나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이끌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 순간, 이모가 스님이라는 사실이 믿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깊은 믿음을 심어주었고, 나는 이제 그 믿음을 품고 그 고요함 속으로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큰 이모는 젊은 스님에게 맡겼던 재를 자신이 주관해서 처음부터 다시 지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안 있어 막내 외삼촌은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큰 이모 아들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2025년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큰 이모는 여전히 부처님 앞에서 그들이 잘될 거라 감사하다며 축원한다.
이런 경험으로 나는 천도재 지내는 스님의 능력보다 그가 얼마나 진심인지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가족 천도에 나만큼 진심인 사람이 어디 있을까? 스님에게만 재를 맡기지 말고 옆에서 함께 지내라고 권하는 이유다. 혼자서 죽은 이를 애도하고 싶다면 기도 시작과 끝에 절에 들러 부처님께 고하고 집에서 공덕경을 100번 독송하라고 권한다.
또한 개에 물리면 일주일간 병원 신세를 지고, 뱀에 물리면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지는데,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에 물리면 평생 병원 신세를 진다는 말이 있다. 10악 죄에 말로 짓는 죄가 왜 4개나 되겠는가? 입에서 나온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며, 어디론가 날아가 누군가에게 전해진다.
거짓말을 하면 그 말은 망어(망령된 말)가 되어 진실을 왜곡하며, 꾸미는 말은 기어(꾸며낸 말)가 되어 마음의 흐름을 어지럽힌다. 이간질하는 양설(양측을 흔드는 말)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끊어 놓으며, 악한 말은 악구(악독한 말)가 되어 누군가의 영혼에 상처를 남긴다. 이렇게 말은 단순히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에너지를 지닌다. 때로는 그 말이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에는 천냥 빚을 지게 만든다.
특히 기도하는 사람은 말하는 데 있어 더욱 신중해야 한다. 하늘에 전해지는 말이 기도인데, 순수하고 깨끗한 에너지만을 담아야 그것이 진정한 기도라고 생각한다.
글에 나오는 이름은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