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천도재 네 번째 이야기
젊은 스님이 ‘막내 외삼촌은 3개월 이내에 죽는다’라는 예언을 한 후, 큰 이모는 젊은 스님과 자리를 교체했다. 이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부처님 앞에 앉았다. 그의 얼굴은 고요했지만, 눈빛 속에는 무언가 결심한 듯한 단단한 의지가 엿보였다.
큰 이모는 한 손에 요령을 부드럽게 쥐고 있었다. 이모의 손목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요령은 마치 그 한순간이 영원히 멈춘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절 안에는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감돌게 했다. 그의 기도는 물 흐르듯 이어졌다. 주위의 공기는 점점 더 차분해졌고, 이모는 온몸을 기도로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앞서 젊은 스님이 외삼촌이 3개 월내에 죽을 거라고 한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큰 충격은 하염없던 눈물을 단박에 멈추게 했다. 나는 멍하니 부처님 앞에 놓인 정성스레 준비된 음식과 꽃들 그리고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모가 입고 있는 법복에 눈길이 갔다. 조금은 낡았지만 전통적인 법복은 차분하고 고요한 색조를 띠고 있었다. 법복을 입고 있는 이모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이 단순한 의식의 일환을 넘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숙고가 담긴 의례처럼 보이게 했다.
이모가 눈을 감고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속으로 외는 경문은 마치 바람에 실려 퍼져나가는 듯했다. 차가운 공기가 맑고 신선하게 퍼져나갔고, 요령 소리만 울려 퍼지는 절 안은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이모가 “엄마…”라고 말했다. 이모는 우리들에게 외할머니가 오셨다고 말했다. 이모는 이미 이런 일들을 여러 번 겪어본 것처럼 목소리에 놀람보다는 차분함이 묻어 있었다. 이모는 외할머니에게 참회의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아서 마음속에서 혼란이 일었다. 시간이 멈춘 듯, 내 주위의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이모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자신을 남의 집에 식모로 보낸 일로 아직까지 할머니를 원망하고 있었다. 전생에 이모는 자신이 외할아버지의 첩이라서 외할머니가 다른 자식과 달리 자신만 미워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원망은 스님이 되었어도 나이가 60이 되었어도 씻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밤 내가 외할머니의 천도재를 지내자고 했을 때, 이모는 강하게 거부했다. 그런 제안을 듣는 것조차 싫어했다. 내가 비용을 내고 부탁한 외할머니의 천도재를 자신의 아들을 위한 기도로 바꾸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본 것은 노스님이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외할머니에게 지극한 참회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한때 온 마음을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채웠던 큰 이모가 이제까지 자신이 미워하던 이에게 먼저 참회의 기도를 하는 노스님이 되어 있었다.
잠시 후 이모의 입을 빌려 외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내가 명부 시왕과 친하다. 그분들께 그(막내 외삼촌)를 살려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나는 그때 명부시왕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큰 이모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합장을 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도는 더 강렬하게, 그리고 한층 깊어진 감정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억누를 수 없는 눈물로 흘러나왔다. 그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큰 이모 옆에 앉아 울면서 부처님께 기도했다.
“부처님, 부처님, 외할머니가 어떤 삶을 사셨는지 부처님이 가장 잘 알잖아요? 그런 외할머니가 그렇게 험하게 죽은 것도 불쌍한데, 왜 외할머니가 죽어서까지 자식 걱정에 이렇게 고생하셔야 해요. 우리 외할머니 그만 죄짓게 제발 막내 외삼촌 살려주세요. 외삼촌이 살아야 할머니가 자식 위해 죄 안 지을 거 아네요. 제발 외삼촌을 살려주세요.”
눈물이 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며, 내 마음속의 간절함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오직 간절함 밖에 없었다. 이 간절함으로 그 누구보다 자비로우신 부처님께 내 절박한 기도를 올렸다.
나는 명부에서 높은 직책을 맡고 있다는 외할아버지에게도 부탁을 드렸다. 생전에 나를 아끼고 예뻐해 주셨던 분이었기에, 외할아버지가 힘이 있다면, 내 기도를 들어주시리라 믿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생전에 나 얼마나 예뻐했는지 기억해요. 할아버지, 힘이 있다면 외삼촌을 살려주세요. 할머니, 너무 불쌍하잖아요. 제발 외삼촌 살려주세요.”
내 목소리는 갈라지고, 가슴은 또다시 아프게 뛰었다. 사랑하는 막내아들의 죽음으로 외할머니의 고통이 더 커지지 않기를, 외할머니가 자식을 살리기 위해 더 이상 죄짓지 않기를, 그리하여 가족들에게 더 이상 나쁜 업이 쌓이지 않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랐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안 있어 막내 외삼촌은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2025년 그는 여전히 살아 있고 큰 이모는 여전히 부처님 앞에서 그가 잘될 거라 감사하다며 축원한다.
이런 경험이 있어 천도재를 좋아한다. 나에게 있어 천도재는 단순히 죽은 이를 기리는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생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었다. 즉 나는 천도재 속에 담긴 깊은 의미와 나를 변화시키는 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천도재를 하기 위해선 먼저 천도의 대상이 되는 이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가 나를 괴롭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르면 나는 그 사람의 삶을 하나하나 되짚어 나간다. 어린 시절, 가족과의 관계, 겪었던 상처와 아픔들. 그가 지나온 길을 알게 되면, 그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되면, 그가 나에게 했던 못된 짓들이 하나하나 용서가 된다. 용서가 되면, 그를 향한 미움보다는, 그가 세상에 복수하고 싶어질 만큼 그를 아프게 한 모든 것들을 대신하여 내가 먼저 그에게 참회하게 된다, 내가 그의 입장이었어도 아팠고 복수하고 싶었을 테니까. 무엇보다 사과받고 싶었을 테니까. 그 후 그가 잘 되기를, 평안하기를, 그리고 그의 고통이 사라지기를, 그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런 기도가 계속될수록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세상은 자주 나에게 냉정하고, 때로는 무자비했다. 상처가 많아질수록 나의 천도 대상도 같이 늘었다. 그만큼 나를 상처 입히는 이들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이 많아졌다. 내 상처가 극한으로 치달을 때, 나는 전생의 인연들까지 천도의 대상으로 삼았고, 그들의 삶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픈 역사는 내가 지금 고통스럽다고 울부짖는 이 상황조차 수많은 이들의 피눈물로 이루어진 감사한 일임을 깨닫게 한다. 아픔 속에서도 감사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어느 순간,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크나큰 사랑을 받았기에 오늘을 살아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나 또한 나를 사랑해 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다.
따라서 나에게 천도재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나와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의 시간이고 서로를 마음에 품는 화해와 감사의 시간이었으며, 내 마음속 사랑이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2018년 심리학과에 다닐 때 가계도 그리는 것에 대해 배웠다. 심리학에서 가계도 그리기는 개인의 가족 관계와 유전적, 심리적 특성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도구이다. 이를 통해 가족 내에서 발생한 심리적, 정서적 문제나 유전적인 경향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나는 그전에 가계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리는 건지 당연히 몰랐다. 그러나 놀랍게도 내가 내 인연들을 하나하나 품기 시작하면서 그들을 천도시키기 위해 나와의 관계를 그려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가계도였다. 즉 나는 천도재를 통해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스스로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노오란 수선화처럼 환하게 웃는 날을 보내시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