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천도재 다섯 번째 이야기
큰 이모에게 외할머니의 천도재를 부탁할 당시, 몸이 전체적으로 푸석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특히 허리는 차가운 철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듯했다. 욕실에서 머리를 감으려 할 때마다, 허리를 숙이는 것이 두려웠다. 손으로 욕실 벽을 더듬으며,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발끝을 차가운 욕실 바닥에 붙여 그 냉기로 잠시나마 내 몸을 깨우려 노력했다. 그러나, 허리가 숙여지면, 신음이 나올 정도의 고통이 밀려왔다. 머리카락이 물에 젖어 무겁게 늘어지면 얼굴은 더욱 고통으로 일그러져 갔다. 고통이 심해질 때마다 눈은 점점 더 충혈되었고, 눈가에는 땀이 맺혔다. 머리를 감으며 이렇게까지 허리가 아플 수 있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
참회문과 반야심경을 만나고 나서 나는 허리를 굽힐 때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을 외거나, 지난 생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에 대해 떠오르는 데로 참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지금의 고통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외할머니의 고통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천도재를 잘 지내야 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천도재가 끝난 후, 한 줄기 따사로운 햇살이 절의 창문을 넘어 조용히 스며들었다. 어두운 거실 안을 환히 밝히는 그 햇살은 마치 오늘의 모든 의식이 잘 끝났음을 알리는 듯했다. 찬란한 빛 속에서, 우리는 모두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큰 이모와 젊은 여스님, 그리고 내 아들 무럭이, 공양주 보살,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큰 이모의 아들이 그 자리에 함께했다.
테이블 위에는 오늘 천도재에서 쓰였던 떡과 과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곳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스님인 큰 이모는 조용히 차를 따르며 말을 꺼냈다.
“기도했으니까, 다 잘 될 거야.”
큰 이모의 목소리는 확신에 찼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한 줄기 바람처럼, 모두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는 서로를 치하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젊은 여스님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은 하늘에 닿을 테니까.”
이어서 공양주 보살도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럼 모두 잘 될 거라 믿어요,”
무럭이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입에 떡을 물고 있었다. 작고 어린 그 순수한 모습도 마치 오늘의 천도재가 잘 끝나서 앞으로는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햇살이 더욱 밝게 거실을 비추고 있었다. 오늘의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 우리의 바람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모두가 그 따스한 빛 속에 한순간 머물렀다.
그때, 젊은 스님이 손에 들고 있던 가래떡을 조심스럽게 김에 말아 한입 가득 물었다. 그러나, 그가 내 눈과 마주친 순간, 그의 표정이 일순간 변했다. 그의 눈은 크게 뜨여졌고, 얼굴은 급격히 창백해지며 마치 피가 빠져나간 듯했다. 그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기 시작했고, 그의 몸은 점점 더 경직되어 갔다. 입술은 떨며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숨은 거칠게 몰아쳤다. 공포에 질린 듯한 그의 모습은 내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스님은 부르르 떨며,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보살님, 아주 크고 무시무시한 업구렁이가 보살님을 휘감고 있어요.”
그 말에 내 심장은 순간 멈춘 듯했다. 뇌 속에서 생각이 뒤엉키며 어지럽게 휘몰아쳤고,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내 몸은 얼어붙은 듯했으며, 온몸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목구멍은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 내 피부는 차갑게 소름이 돋으며, 그 공포는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스님은 계속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업구렁이에게 한 번 잡히면 벗어나지 못하는데, 보살님은 스스로의 힘으로 반쯤 구렁이에게서 벗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구렁이도 보살님을 놔준다고 합니다.”
스님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채 덧붙였다.
“업구렁이는 업연이라, 구렁이가 스스로 놔준다는 일은 거의 없는데 말이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서, 무겁고 침울한 표정으로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냈다.
“예전에, 한 사람이 저에게 찾아왔었습니다. 그 사람은 온몸이 업구렁이에 휘감겨 있었죠. 그 구렁이는 그의 머리까지 삼킬 기세였어요. 그래서 저는 재를 지내서 그 구렁이를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그 후, 그 사람은 절에 오지 않았고 여기저기 다니며 엉뚱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다시 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또다시 업구렁이에 감겨 있었고, 이전보다 훨씬 더 심하게 고통받고 있었어요.”
스님은 자신의 팔뚝을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그의 팔뚝에는 작은 소름이 돋아 있었고, 그 손끝이 떨리는 모습이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보살님 몸을 감싸고 있는 구렁이가 너무 크고 무시무시해서 제 팔뚝에 소름이 돋은 거 보세요. 보기만 해도 오싹한 구렁이입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가슴 깊은 곳에서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스님의 말이 현실인 듯, 그리고 동시에 상상 속의 괴물처럼 다가왔다. 그 커다란 업구렁이가 나를 휘감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업구렁이를 믿은 이유는, 최근 나를 괴롭히는 악몽과 내 몸에 발생한 이상한 현상, 특히 지독한 허리 통증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말을 하는 젊은 스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젊은 여스님의 이름은 미정이었다. 그녀는 한때 찬란하고 행복한 사랑을 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불행하게 끝났고, 남자와의 이별은 그녀에게 너무도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그녀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 죽음을 선택했고 죽음의 문턱에 거의 다다랐다. 하지만 죽음의 어두운 세계로 한 걸음 내딛기 전에, 무언가 강하게 그녀의 몸을 붙잡았다.
미정은 낯선 병원에서 깨어났다. 죽음에서 돌아온 그녀는 그 후로 세상이 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말소리, 빛의 흔들림, 공기의 움직임까지 모두가 다른 색깔로 다가왔다.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어선 듯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 때문에 다시 죽음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고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스님을 만났고 그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삶과 죽음, 그 경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 그 세계를 본 자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미정은 그 말을 마음 깊이 새겼다.
“그대가 보는 것이 단지 환영일 수 있지만, 그 환영을 올바르게 본다면 그것이 곧 깨달음의 길이 될 것이다.”
스님의 그 말은 모태 천주교 신자였던 미정의 마음을 울렸다. 그녀는 이제 그 깨달음을 찾고자 했다. 스님의 권유로, 미정은 동국대학교 불교 학과에 입학했다. 큰 이모와 미정이 만난 곳도 여기였다. 불교의 가르침은 그녀의 혼란을 정리해 주었고, 세상의 숨겨진 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되었다.
그녀는 점차 스스로를 변화시켜 갔다. 스님의 옷을 입고, 깨달음의 길을 걸어가는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았다. 스님이 되자, 그녀가 본 새로운 세계는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2025년의 나는 외부 세계의 신과 내 안의 탐진치가 만들어 내는 내 안의 신이 있다고 믿는다. 업구렁이 역시 외부 세계의 업구렁이가 있고 내 무의식이 가지고 있는 업들이 만들어 낸 업구렁이가 따로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당시 나에게 극심한 허리 통증을 안긴 업구렁이에 대해서는 지금은 시할머니였다고 생각한다. 시할머니는 허리가 90도 가까이 구부러지신 분이었다.
그러나 2011년 즈음의 나는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정 스님이 말한 업구렁이를 믿은 또 다른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나뿐 아니라 엄마의 꿈에도 늘 구렁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친정집 터가 구렁이 터라는 말을 듣고 자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신혼집으로 장만했던 친정집에는 아픈 사연이 있었다. 예전에 그 집에 살던 여자가 집 앞 대추나무에서 목을 매달아 세상을 떴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대추나무를 잘랐다고 했는데 대추나무가 있었다던 자리에 늘 구렁이가 나타나서 어머니도 나도 기함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내가 업구렁이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부처님 가르침을 만났기 때문이다. 참회문을 시작으로 나는 닥치는 대로 불경과 불서를 읽기 시작했다. 내가 읽은 책들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허리 통증이 업구렁이에 의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 또한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악신이나 업구렁이는 물론 괴롭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이를 믿었다.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 인과와 윤회를 알게 된 후, 업구렁이를 포함하여 나를 괴롭히는 모든 존재에게 내가 먼저 잘못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를 아프게 하는 세상 모든 존재에게 내가 먼저 눈물로 간절히 참회했고, 그들을 업연에서 구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꿈에 보이는 큰 구렁이를 위해 부처님 오신 날, 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영가 등을 달았다. 얼마 후 꿈에서 그 구렁이가 죽은 모습이 보였다. 불교에서는 여기서 죽었다는 건 다른 곳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나는 구렁이가 이곳에서 죽어 다른 곳에서 좋은 몸을 받아 태어났을 거라 믿는다.
나는 이런 경험이 있기에 그 후, 이 세상 모든 인연들의 전생, 현생, 그리고 내생의 모든 인연들과 그들의 전생, 현생, 내생의 모든 인연들까지 천도되라고 세상 전체를 위한 천도재를 지낸 적이 있다. 내가 생명존중(자살예방) 강사로 활동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모든 폭력사태에 있어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내가 가해자는 아닌지? 돌아보는 일이 많아졌다. 이는 나에게 학교폭력 예방 지도사와 성폭력 예방 교육 강사로 활동하게 했다.
허리는 과거의 고통이 무색하게 지금은 아주 좋아졌다. 그래도 살다가 가끔 허리에 통증이 느껴지면 나는 내 잘못을 돌아보고 참회한다. 물론 병원도 가고 약도 먹는다. 나는 이 세상에 의사도 있고 약사도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한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그토록 극심한 허리 통증 속에서 어떻게 부처님께 잘못했다며 참회의 절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지은 죄가 많아서 절할 일도 많았는데, 그저 신기할 뿐이다.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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