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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화. 황금 물고기

돈의 노예가 된 남편

by 엄마쌤강민주

저녁이 내려앉은 어둑한 침실에서 나는 무거운 생각에 짓눌린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분노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왜? 왜 시댁 조상들까지 내가 천도재를 지내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결혼한 후 수많은 갈등 속에서, 시댁에 대한 감정은 점점 냉랭해졌고, 그 감정은 남편을 통해 더욱 깊어져 갔다. ‘그들의 자손인 남편 때문에 내 마음에 깊은 상처가 생겼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시댁과 그 조상들은 그저 무거운 짐처럼 나를 억압하는 존재였다.


그러던 중, 고승의 법문곡에 실린 ‘청매조사 열 가지 이익 없는 일’ 읽으면서 문득 한 구절에 눈길이 갔다.

“마음을 돌이켜 비우지 못하면 경을 배워도 이익이 없음이요.”

그러나 아무리 마음을 비우려 해도, 남편의 부모도, 그 부모의 부모도, 나에게는 그저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깊은숨을 내쉬며 고승 법문곡을 다시 떠올렸다. 그러나 마음은 비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속에서 남편으로 인해 받은 상처가 끊임없이 떠올라 나를 지배했다.


어느 날, 여동생과 여동생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여동생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로 붐비는 휴게소에서 일하며,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일에 대해 피곤함을 토로했지만 동시에 월급에 대해서는 만족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의 월급이 얼마인지 들은 남편이 나에게 “너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하면 어때?”라고 말했다.


그 순간,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방 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무겁게 변한 듯했다. 휴게소에서 일하면 일주일에 한 번만 집에 올 수 있었다. 주말부부로 살다가 합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신혼인 그가 내게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그저 지나가는 말일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은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린 것 같았다.


2003년, 결혼한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남편이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보험 일을 시작했다. 나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그를 지원했다. 부모님, 친구들, 친척들은 물론 학교 선후배까지 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늘 전화기를 들고 살았고 남편과 함께 매일 전국을 누볐다. 처음 몇 달 동안 남편이 한 보험 계약은 고객 한 명 한 명이 다 나의 인연이었다. 이런 나의 노력으로 인해, 남편은 1년 후 연봉 1억을 손에 쥐었다. 결혼 초보다 10배 정도 더 많은 돈을 번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유산을 했다. 남편의 일이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함께 지방에 다니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런데 그가 돈을 많이 벌수록 나는 점점 그의 그림자처럼 되었다. 그는 모든 성공을 자신의 노력이라 자랑했다. 한때 함께 나눈 꿈은 이제 그만의 것이 되었다.


평일의 그는 대부분 술에 취해 늦게 귀가했다. 집에 들어온 그는 소파에 쓰러지듯 앉아 술에 취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흐릿하고, 입술은 퉁퉁 부어 있었는데 한 말을 하고 또 했다.

주말이면 그는 언제나처럼 치킨을 시켜 놓고, 소파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나는 그가 상 위에 놓인 치킨과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없이 여유롭고, 나른하게 치킨을 뜯어먹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에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말했다.

“너는 언제 돈 벌어올 거야? 나보면 부럽지도 않니?”


술에 취해 던지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에서 그의 진심을 느꼈다. 술에 취해 더 이상 아무런 기운도 남지 않은 그가, 소파에 앉아, 마치 포주처럼 내게 일을 하라고, 돈을 벌어오라고 요구하는 모습이 반복되었고 나는 어느 순간 치킨과 맥주만 봐도 경기를 일으켰다.

“당신이 그 돈을 벌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누구야?”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물었지만 남편은 나의 수고를 진작에 잊었다. 그는 자신의 성공에 취해 나를 차갑게 대했다. 그의 성공 뒤에는 나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그저 그의 돈을 축내는 사람, 그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로 변해 있었다.


한때는 평범한 가정에서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에게 사랑받는 그런 아내로, 하루하루를 그저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남편의 일을 내일보다 더 열심히 도왔던 것도 남편이 원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들어준 이유도 그것이 우리의 사랑을 지키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003년 처음 대전에서 인천으로 올라와서는 아이들 과외를 했다. 대전보다 아는 인맥이 적어서 처음에는 수입이 90만 원 정도였는데 남편이 매우 기뻐했다. 이때 남편의 통장에 찍힌 월급이 80만 원이었다.(원래는 160만 원인데 신입은 최소 1년은 월급에서 절반 정도를 회사 주식을 매입하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보험을 하면서 수입이 많아진 남편은 나에게 더 많은 돈을 벌어오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최소 100만 원은 벌어야지”

그래서 100만 원 월급을 주는 보험회사 대리점에 직원으로 취직했다. 그러나 워낙 보험을 좋아했고 남편을 도우며 노하우가 쌓여있어서 나는 취직한 지 두 번째 달에 월급과 보험 판매한 수당을 합해 400만 원을 벌었다.

그러나 대리점 점장이 못 말리는 바람둥이였다. 점장이 치근댄다고 남편에게 말하고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는데 남편이 말리며 이렇게 말했다.

“참고 일해. 500만 원은 벌어야지.”

남편에 대한 실망 속에 보험회사 대리점을 그만두었다.


나는 이 와중에도 부동산 투자를 했고 27평 아파트에서 34평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리고 얼마 후 부동산 실장으로 취직했다. 내가 취직한 날은 남편이 치맥을 즐기며 예전과 똑같은 레퍼토리를 늘어놓는 모습에 상처를 입고 집을 무작정 나섰던 날이었다. 마침 부동산 사무실에 실장을 뽑는다는 전단지가 붙어있었고 그 자리에서 면접을 보고 취직을 했다.

얼마 후 실장을 그만두고 내 부동산 사무실을 열었다. 2006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는 지역이라서 그런지 처음부터 돈을 많이 벌기 시작했다. 얼마 안 있어 혼자 운영하는 사무실에서 매출이 1000만 원을 넘었다. 내 나이 아직 서른이 되기 전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어느 날, 남편은 나도 만난 적 있는 여자 보험설계사를 언급하며 말했다.

“그녀는 한 달에 3200만 원을 벌어. 너도 그 정도는 벌어야지.”

그의 눈은 마치 내가 3천만 원을 벌어올 수 있다고 확신하는 듯한 눈이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기대는 끝없이 커져만 갔다.


남편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더 이상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사이에 아이를 계속 유산했다. 그러다 자궁 외 임신으로 나팔관이 터져 죽음의 문턱을 넘는 일이 생겼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쉬면서 아이를 갖고 싶어.”

그런데 남편이 너무나도 이해되지 않는 말을 했다.

“아기는 밖에서 낳아 올 테니, 너는 계속 돈을 벌어.”


남편의 입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 말이 마음속 깊이 박히며 이해된 순간, 분노가 솟구쳤다. 그리고 내가 돈을 버는 것이 우리의 사랑을 지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는 남편을 위해 돈을 벌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홀로 서서 그가 만든 세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이때 동화 “황금 물고기”가 떠올랐다. 어느 날, 가난한 어부가 바다에서 황금 물고기를 잡게 된다. 물고기는 자기를 놓아주면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어부는 물고기를 놓아주고, 아내와 함께 소원을 빌었다. 처음에는 겸손하게 작은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아내의 욕심이 커지면서 점점 더 큰 소원을 빌게 되고, 결국 그녀는 왕이 되고 싶다고 소원했다. 황금 물고기는 더 이상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고 어부와 아내는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며, 처음의 가난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황금 물고기였다. 더 이상 남편과의 관계에서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동산 사무실을 접고 나의 바다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은 황금 물고기였다.


사진 속 물고기는 안시라는 물고기 입니다. 부성애가 지극해서 제가 좋아하는 물고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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