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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화. 이혼하자

첫날밤의 약속을 지키다

by 엄마쌤강민주

무럭이를 낳았을 때 온 세상이 내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늘 나에게 말했다.

“당신 부부는 아이 하나만 있으면 완벽할 텐데.”

사람들은 내가 삶의 고통을 토로할 때도 한결같이 말했다.

“아이가 없어서 그래. 아이만 낳으면 다 잘될 거야.”


마침내, 무럭이가 태어났다. 그 작은 생명을 내 품에 안았을 때,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찾은 것처럼 가슴이 찡해졌다. 아기의 부드러운 피부와 작은 손끝은 나의 전신에 따뜻한 감정을 퍼뜨렸다. 눈물이 흐르며, 마음속으로 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솟구쳤다.


주변 사람들의 축하와 기대가 내 어깨 위로 쏟아졌다. 그들의 얼굴을 보며 내가 마침내 행복을 찾은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하루하루 쌓여가며 나는 점점 더 행복해졌다. 양육은 피곤하지만 그만큼 값진 일이었고, 나는 그 피로조차 행복하게 느껴졌다. 아기의 작은 손을 잡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진심으로 그 모든 순간이 삶의 의미를 쌓아가는 시간임을 깨달았다.

‘이제 고생 끝, 꽃길만 걷게 되겠지!’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과거의 모든 고통이 이제는 희미해지고, 나의 앞에 펼쳐진 길은 꽃으로 만발할 거라 믿었다. 물론, 그 길이 항상 부드럽고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내게 무럭이가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견뎌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남편은 아이를 낳기 전보다 나에게 상처 주는 일이 늘었다. 그날도 남편의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왜 얘 옷이 이렇게 구질구질해? 무럭이가 우리 집에서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몰라? 명품 사서 입혀.”

명품 옷이라니, 그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들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마치 내가 무럭이를 소홀히 여기고 있다는 듯했다. 나는 무럭이의 작은 손을 잡고, 한순간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음을 기억했다. 하지만 남편이 내게 던지는 말들은 그렇게 나를 몰아붙였다.


“영어 유치원에 보내. 아이 때부터 교육에 투자해야지, 무럭이가 성공하지.”

그 말은 내 심장을 더 깊게 찌른다. 무럭이가 잘 자라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나도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남편은 그것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남편이 말한 ‘무럭이의 성공’이라는 말이 내가 가진 모든 불안과 부족함을 파고들어 내게 비수를 꽂았다. 나도 무럭이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남편은 나로 인해 무럭이가 성공 못 할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얘 먹이는 음식이 왜 이 꼴이야? 요리학원에 다녀서 제대로 배워와.”

나는 그의 말에 숨이 턱 막혔다. 그가 말하는 음식은 내가 아침마다 정성을 들여 준비한 것들이었지만, 그에게는 다 부족했다. 나도 잘하고 싶었고, 무럭이를 위해서 모든 걸 해주고 싶었지만, 그가 던지는 말들은 마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내 마음은 점점 더 상처를 입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부족해서일까? 내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일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 눈물이 떨어질까 봐, 나는 급하게 얼굴을 돌리고 눈물을 삼켰다. 남편은 또 다른 일을 떠올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내 마음속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자책감만이 내 안을 휘몰아쳤다.


하루는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내 목소리는 가늘고 힘없이 떨렸다.

“그럴 돈이 어디 있어?”

남편은 마치 내가 이상한 말이라도 한 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냉정하게 말했다.

“네가 돈을 벌어야지. 그동안 네가 일 안 해서 손해 본 게 얼마야? 어휴… 이제 일 시작해.”

그의 목소리는 차가운 쇳소리처럼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저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의 말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 말속에서 그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나는 이해하려 애썼다. 잠시 후, 나는 남편에게 아이를 양육해야 해서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는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하면 되지.”

그 한 마디가 내 마음에 다시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말속에서, 내가 아이를 키우는 수고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오로지 ‘내가 일을 해야 한다’라는 그의 고집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몇 년 전 어느 날의 대화를 내 머릿속에 되살렸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나 그때 느꼈던 상처가, 다시 한번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물지 않은 채 떠오르고 있었다.


자궁 외 임신으로 나팔관이 터져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다음, 나는 아이를 갖기 위해 부동산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었다. 내게 남편은 아무 감정 없이 이렇게 말했다.

“아기는 밖에서 낳아 올 테니, 너는 계속 돈을 벌어.”


그 말이 내 마음을 얼마나 찢었는지 그는 알까? 아들을 낳으라는 시댁의 압박이 점차 커져 가고 있었고 반복된 유산으로 내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남편이 나를 대하는 말과 행동에서도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이를 갖는 것만이 내 고통의 유일한 해결책이라 말했다. 그런데 남편이 나와 아이를 갖지 않고 다른 여자에게서 아이를 낳아온다고 말하다니...


그 순간, 나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혼을 결심했었다. 우리 사이에 사랑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고, 내가 그동안 견뎌온 모든 고통과 희생은 그의 눈에는 그저 ‘나만의 문제’로 여겨지기만 했다. 그런데, 그 결정을 실행하려던 순간, 어머니의 항암치료와 다태아 유산, 그리고 무럭이 출산이라는 큰 사건들이 차례로 나를 덮쳤다. 그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나는 그 생각을 잠시 잊고 살아갔다.


분명 그에게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나는 이미 보험 일을 하며 남편에게 상처를 받아 다시는 남편을 돕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후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할 때 남편에게 받은 상처로 다시는 남편을 위해 돈을 벌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다. 내가 돕지 않자 남편이 하는 일이 내리막을 걸었다. 나가는 돈은 점점 느는데, 들어오는 돈은 줄자 가정 경제에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출산 후에도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서 회복되지 않은 나는 절대 남편을 위해 돈을 벌지 않겠다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무엇보다 당시 내 삶의 유일한 이유는 무럭이였다. 오로지 무럭이와 함께 하는 순간만이 내가 살아있다 느껴졌다. 내가 아이와 함께 보낸 소중한 시간이 그에게는 단지 ‘일하지 않는 시간’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을지라도 나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루는 남편이 나에게 다가와 보증을 부탁했다. 나는 꼼꼼하게 서류를 보았다. 그리고 일이 잘못되면 보증을 서는 내가 3천만 원을 책임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형식적인 것이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그 요청을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내가 보증을 서는 건 좀 어려워.”

그 말이 남편에게는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던 듯,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리고 그의 눈에 불쾌감이 번졌다.

“왜? 부부끼리 그 정도도 해줄 수 없다는 거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신 사업에 내가 보증을 서는 건 위험해. 나도 무럭이와 내 삶을 지켜야 해.”


그러자 남편의 얼굴에 분노의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점점 목소리를 높이며, 내게 다가섰다.

“네가 안 맞아 봐서 그렇구나!.”

그의 말은 날카롭게 나를 파고들었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지만 차갑고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내 몸에 손대면 나도 참지 않을 거야.”

대학 시절, 나는 검도를 했었다. 여자라서 신체적으로 불리한 일이 생기는 일이 많은 세상이었다. 약하고 힘이 없어서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꾸준히 훈련에 매진했다. 나의 눈빛은 남편에 대한 전투 의지로 활활 타올랐다.


남편과의 말다툼이 수위를 넘었고 그 와중에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절대 이혼 못 하잖아!”

그 순간 차가운 공기가 내 몸속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 말 한마디에 내 머릿속은 하얗게 지워져 가는 듯했다. ‘나는 이혼 못 한다고?’ 그 한 마디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내게 강하게 쏟아졌다.

남편이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최근 친정에 닥친 여러 불행한 일들 때문이었다. 잘 살던 이모들이 갑자기 이혼을 했다. 어머니도 암에 걸리셨다. 온 집안이 난리가 난 상태였다.


“네가 이혼한다고 하면 처갓집에서 허락하겠어? 장모님이 동네 사람들 부끄러워서 절대 허락 안 할걸.”

그 말에 내 가슴이 다시 한번 쿵 하고 무너졌다. ‘처갓집에서 허락하겠냐고?’ 나는 그 순간, 마치 얼음물에 머리를 처박은 것처럼, 온몸이 얼어붙었다. 갑자기 너무 많은 감정이 내 안에서 뒤엉켜, 무엇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시작되었던 남편의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요구들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자기와 절대 이혼 못 할 줄 알았던 거구나! 나와 우리 집을 무시했구나!


“더구나 너는 무럭이 없이 못 살잖아.”

그의 목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이 말이 내게 가장 강하게 와닿았다. 그는 무럭이를 언급하면서 마치 내가 무럭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불합리한 일도 참아 낼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그는 내가 용납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이혼하자, 엄마는 어려서부터 나보고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하셨어, 남편 때문에 시댁 때문에 힘들면 언제든 집으로 돌아오라고. 그러라고 시골에서 힘들게 대학까지 보낸 거야. 이혼하자. 무럭이는 장손이니까 놓고 나갈게. 당신이 말하는 대로 명품 옷 입히고 영어 유치원 보내고 맛있는 거 해서 먹여서 키워. 그리고 꼭 성공시켜.”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랑과 약속으로 시작된 우리의 결혼이었지만, 지금은 상처와 불신으로 채워져만 가는 듯했다.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남편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혼 안 하면 내가 너를 죽일지도 몰라. 이혼하자”


나는 그렇게 첫날밤의 약속을 지켰다. 진짜 이혼할 생각이 아니라면, 절대 이혼을 입에 담지 말자. 어려운 일이 생겨도, 힘든 일이 있어도, 그 말은 절대로 하지 말자던.


이혼하자는 글을 쓰며 웨딩사진을 올리는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나 저때 정말 예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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