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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그 여자 사치 심하고 바람도 폈대

이혼하는 여자들

by 엄마쌤강민주

시댁 조상의 천도재 문제로 시작된 과거 여행은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과거를 돌아볼수록 나는 시댁 조상까지 챙겨야 할 이유를 찾기는커녕 내가 남편을 얼마나 미워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미움과 원망 그리고 분노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자아를 잃어가고 있었고, 그 안에서 자신을 되찾으려 할수록 더욱 깊은 구렁텅이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아들만 낳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말도, 이제는 나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니, 그 말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거짓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아들을 낳았지만 오히려 아들과 남편을 위한 삶을 요구받고 있었고, 그 누구도 나의 삶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으로 인해 고통받다가 이혼한 이들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들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이미 과거에 온몸으로 표현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나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2005년 보험회사 대리점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만났던 보험설계사가 있었다. 40대 중반의 그녀는 매일 아침,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세팅하고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출근했다. 외모와 태도에서 느껴지는 자신감과 단호함은 마치 어떤 세계에서라도 통할 것 같은 강한 인상을 주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신용불량자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아이 가지길 간절히 원한다는 말을 들으니까, 나도 모르게 예전이 생각났어요.”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딸 셋을 낳을 때까지, 남편도 시댁도 늘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아들을 낳지 않아서 남편이 힘이 나지 않는다, 내가 아들을 낳지 못해서 남편의 사업이 망했고 내가 아들을 낳지 않아서 남편이 백수가 된 거라고. 모든 안 좋은 일들은 다 내가 아들을 낳지 못해서라며 내 탓을 했어요.”


그녀는 짧게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깊은 아픔이 묻어 있었다.

“그렇다가 넷째로 아들이 태어났어요. 남편은 아들이 귀해서 어쩔 줄 몰라했어요. 아들을 안고 목을 가누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딸 때와는 확실히 다른 반응이었죠. 그때 나는 남편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남편이 집안을 책임지고, 가족들은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고.”


하지만, 그 기대는 결국 허망하게 무너졌다.

남편은 아들을 낳아주었어도 여전히 백수였어요. 그래서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혼 후에야 남편은 취직했고,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에게 사과했어요. ‘내가 진작에 이혼했더라면 당신도 좀 더 빨리 인간답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잘못했네.’ 그렇게 말했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신용불량자가 된 이유는 다 그때 그 시절 때문이에요. 남편과 아이 넷, 시댁까지 책임지느라 빚을 지게 되었죠. 이제 남편과 시댁은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까, 나도 숨통이 트일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씁쓸한 듯한 평온함이 묻어 있었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털어놓는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담긴 후련함과 강인함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2006년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던 당시에 있었던 일도 떠올렸다. 어느 날, 부동산 사무실 문이 쿵 하고 열리면서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한참이나 늦은 오후, 아직 남은 햇살이 사무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시간이었다. 젊고, 평범한 얼굴에 비해 얼굴과 몸이 많이 부어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무언가에 억눌린 듯, 어떤 감정이 그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남편 명의인데요, 제 명의로 이 집을 옮길 수 있는지 알고 싶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차분했다. 그런데 말끝마다 뭔가 눌려 있는 듯, 울먹일 듯한 어조가 묻어났다. 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바라봤고,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얼마 전에 넷째를 낳았어요. 그래서 친정어머니가 와서 몸조리해주고 계세요. 그동안 남편이 저를 무시했어요. 돈도 못 버는 주제에 애만 주렁주렁 낳는다고 하면서요. 그런데 어머니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저를 무시하는 거예요. 어머니 앞에서 그렇게 무시당하는 게 너무 부끄럽고 자식들이 뭘 보고 배울까 싶어 두렵기도 하고… 그래서 이혼하려고 결심했어요.”

나는 그녀는 말을 듣고 나서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제야 그녀의 몸 상태와 얼굴에 나타난 피로와 고단함을 눈치챘다. 그녀는 다소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고쳐 쥐었다. 부풀어 오른 얼굴은 숨길 수 없는 상처와 슬픔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집 명의를 바꾸고, 모든 걸 정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녀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결단이 서린 눈빛이었다. 여전히 슬픔을 품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드러났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그녀에게 필요한 절차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고, 잠시 후 사무실을 나갔다. 여전히 부풀어 오른 얼굴이었지만, 그 표정은 조금 더 담담해 보였다.


나는 남편이 상처 줄 때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을 계속 떠올렸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상처 입고 이혼하는 여자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기억은 나쁜 남편을 둔 또 다른 이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른 아침, 부동산 사무실 문을 열자 한 할머니가 들어섰다. 손에는 작은 가방 하나, 얼굴은 깊게 새겨진 세월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그녀의 눈빛은 불편하게도 강렬했다. 사무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그녀의 존재감은 마치 한여름의 햇살처럼 뜨겁고 뚜렷하게 느껴졌다.


“저기요,” 할머니가 말을 꺼내며 탁자에 손을 올렸다.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지만, 그 안에 가득한 서슬 퍼런 감정이 억제되지 않고 있었다.

“내 집을 팔아주세요.”


그녀의 말투에서 뭔가 급박함이 느껴졌다. 그저 집을 팔고 싶은 것뿐만 아니라, 그녀의 요청 속에는 무언가 더 복잡한 사연이 담겨 있는 듯했다. “무슨 일인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머니는 한참 동안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녀의 표정은 그저 평범한 할머니 같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수십 년간 묵혀온 분노와 아픔이 숨어 있었다.

“30년 전,”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놈이 바람이 나서 나와 아이들을 버리고 떠났지. 나는 그놈 없이 혼자서 내 두 손으로 지금의 모든 걸 일궜어.”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손끝으로 탁자 위를 천천히 긁었다. 할머니의 투박하고 검은 손끝이 지나간 자리에 고통이 묻어나는 듯했다. 이어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놈이, 다시 나타났어. 병들고 늙어서. 나한테 용서를 구한다는 거야. 하지만 그건 아니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하늘도 알고 땅도 알아. 그런데 그놈이 내가 키운 자식들, 내가 이루어낸 모든 것을 지금 날로 먹으려 하고 있어.”


할머니의 목소리는 점차 더 단호해졌다. 그 눈빛에는 무자비한 결단이 담겨 있었다.

“그 자식이 내게 오더니, ‘미안하다’고 하더라. 죽도록 사랑한다며 처자식 버리고 택한 그 여자는 그놈이 병들자 떠났대. 그런데,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그자에게 벌이 내린 거라고. ‘늙고 병든 놈을 누가 사랑하겠어? 그건 다 네가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거야’라고 했지.”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다시 창밖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스쳐 간 감정들은 분명히 한 여자의 인생을 모두 압축한 듯했다. 그녀는 고요히 미소를 지었다.


“이제 더 이상 그 자식과는 엮이고 싶지 않아. 그놈이 내 앞에 나타났다는 것도 기가 막힐 일이고. 내가 무슨 영광으로 보겠다고 그 자식과 살던 그 집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는지 몰라. 그냥, 내 집을 팔아주세요. ”


그 말을 끝으로 할머니는 조용히 일어섰다. 사무실 안은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할머니의 눈빛에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고독과 결단을 느꼈다. 30년 동안 그녀가 겪어온 세월이, 그 고통이, 지금 이 순간에 오롯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사무실을 나가면서 문이 닫히자, 그 뒤로 남은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무거운 여운이었다.


할머니 일까지 떠올린 나는, 나도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이혼하자. 이혼하기 위해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혼을 강하게 요구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떠나면 무럭이에게 엄마가 바람나서 너를 버리고 집 나갔다고 말할 거야. 엄마가 사치가 심해서 돈도 다 써버려서 우리가 가난하다고.”


남편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그동안 이혼한 남자들이 늘 같은 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여편네가 사치가 심했어요”, “바람을 폈어요.”


그런데 난데없이 내가 신에게 시달리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이혼을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귀신 들린 여자랑은 못 산다는 남편의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되었다.


‘인생 뭐 이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합니다. 저는 어머니로부터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살아보니 저도 주변의 어머니들도 나쁜 남편 때문에 삶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보고 상대가 아니다 싶으면 결혼 초기에 쉽게 이혼을 합니다. 이혼하고 재혼할 때, 전 배우자의 자식이 많으면 마이너스가 됩니다.


이런 세상, 누가 쉽게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아들에게 효자가 되라고 하는 대신 좋은 남편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되라고 누누이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 땅에 다시 아이들 웃음소리가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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