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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화. 남편은 남의 집 귀한 자식

인과응보

by 엄마쌤강민주

지하철의 차가운 공기가 아침의 불쾌한 기운을 한층 더했다. 나는 무럭이를 아기띠에 매어, 작은 몸을 따스히 품으며 앞을 응시했다. 남편과의 싸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애써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 싸움의 여파가 남아 있었다. 그의 목소리, 우리의 말다툼, 그리고 그 불편한 침묵까지. 그 모든 것이 여전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차가운 지하철 안은 사람들로 꽉 찼고, 나는 가끔씩 사랑스러운 무럭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 그때, 한 노인의 눈길이 나를 향해 와닿았다.


그는 더러운 옷을 입고, 취한 듯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하고, 입술은 붉게 부풀어 있었지만 그 눈빛만은 묘하게 또렷했다. 나와 남편, 그리고 무럭이를 한눈에 훑어보던 그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며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그의 눈은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때,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내 머릿속을 강하게 스쳤다.

“얘는 훌륭하게 잘 낳아놓고 엄마 아빠가 맨날 싸우네. 쯧쯧”


놀라움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한 마디가 내 마음속 깊은 곳을 후벼 팠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그저 불쾌한 말 한마디일 뿐일 터였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그 노인의 말은 나와 남편 사이의 얽힌 갈등을 명확하게 비추는 거울 같았다.


남편은 옆에서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 역시 굳어 있었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계속해서 술에 취해 흔들리며, 나와 남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이 어쩐지 진지하고, 묘하게 진심이 담겨 있는 듯 느껴졌다.


노인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술 냄새 가득한 입을 열고 기침을 하며 지하철의 흔들림에 맞춰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그의 말은 내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 후 우리는 목적지에 다다랐다. 지하철은 점점 한산해졌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내릴 준비를 했다. 무럭이는 잠든 듯, 내 품에서 고요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그 노인의 말이 여전히 귀에서 맴돌았다.

“얘는 훌륭하게 잘 낳아놓고 엄마 아빠가 맨날 싸우네.”


서른다섯, 나는 내 인생이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만 같았다. 날마다 몸이 아팠고, 머리가 무겁고, 마음은 한없이 저려왔다. 이 고통은 단지 몸이 아픈 것만이 아니었다. 내 마음도, 정신도, 내가 살아가는 세상도, 모두가 엉망이었다. 나는 무엇인가에 갇혀 있었고, 그 무엇인가를 벗어날 방법을 몰랐다. 하루하루가 버겁고, 삶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부유하는 유령처럼, 이 세상에서 내가 나를 찾는 것이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날, 시댁에서 가져온 무상 법문집을 펼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한 권의 책일 뿐이었다. 법문집을 읽어도 내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6편에 실린 ‘인과응보’ 법문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차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십 넘어서 사십까지 과거 지은 자기 업보, 사십 넘어서 육십까지 현세 지은 자기 과보…”

책 속에서 나오는 한 구절이 내 마음에 깊게 와닿았다. 내 삶을 통틀어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 단지 이번 생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때 나는 이 모든 것이 그저 우연이 아니라, 지난 생에서 내가 지은 업이 되돌아온 결과임을 깨닫게 되었다.


법문을 계속 읽었다.

“부모, 남편, 거역하고 원수 맺고 저주하면 머리병을 앓게 되고…”

이 말을 읽고 나는 그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부모와 남편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을 거역하고, 상처를 주며, 끊임없이 원망하고 저주하는 나를 떠올렸다. 그래서 내가 지금 머리병(정심암)을 앓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법문은 끝없이 이어졌고 읽을 때마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올라 가슴을 쥐어짜는 듯했다.

“내 몸이다, 내 입이다, 마음대로 하지 마소. 나의 손이 도끼 되고 나의 발이 칼이 되어 한을 맺고 원수 맺어, 죽어 다시 만난 곳이 이 세상의 부부와 자식 인과응보 이 아닌가?”


나는 소리 내어 법문을 따라 읽으며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인과응보’. 그러자 내 머릿속엔 한순간 깜짝 놀랄 만한 깨달음이 들이쳤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내 마음을 단숨에 갈가리 찢어놓았다. 남편과 나는 전생에서부터 얽히고 얽힌 원수였다. 원수가 바로 옆에, 내 남편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내게 원수로 다가왔다는 것은, 내가 전생에 그를 원수처럼 대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남편의 전생 원수겠구나!’ 평소 남편이 나를 대하는 얼굴이 얼마나 잔인했고 냉정했는지가 떠올랐고 ‘원수라서 그랬구나!’라는 답을 찾자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와 나의 현재 관계는 소위 백년해로를 해야 하는 부부였다. 이 모든 것이 나와 그가 맺은 고리, 끊어낼 수 없는 운명이었음을 직시한 순간,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왜 하늘은 원수인 우리를 부부로 엮은 것일까?’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동안 나는 남편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렇게 되기를, 그가 나를 이 땅의 수많은 고통에서 구해줄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인과응보를 읽고 나는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터무니없는지 깨달았다. 원수에게 나를 사랑해 달라고 비는 것은, 그야말로 무모한 일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삶에서 남편과의 관계를 재정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그에게 사랑을 바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전생 업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KakaoTalk_20250414_183128157.jpg 무럭이


고요한 밤, 나는 잠든 무럭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아직 어린아이로, 내 손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였다. 무럭이의 얼굴은 평온했고, 작은 가슴이 고르게 오르내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인과응보 법문에 나오는 구절을 생각했다.

“남의 자식 미워하면 내 자식이 말 안 듣네.”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 자식이 잘 자라지 않거나, 나와 사이가 좋지 않다면 그건 내가 남의 자식을 미워해서 그런 것이구나! 나는 남편을 떠올렸다. 남편은 나의 전생 원수인 동시에 시부모님의 귀한 자식이었다. 즉 남편도 남의 자식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듯한 자세로 생각에 잠겼다.

“참회하고 반성하면 내 자식이 효도하네.”

문득, 이 구절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그 말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열쇠 같았다. 무럭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결심했다. 무럭이의 평온을 지켜주자! 남편, 아니, 전생의 원수라 해도 될 그의 존재를 지금까지 미워하며 살아왔던 나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내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그를 용서해야만, 무럭이와 행복한 모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무엇인가 큰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내가 남편에게 먼저 참회할 정도로 죄가 크지는 않잖아?.’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그가 나에게 먼저 참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행동이 나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그가 반성해야 한다는 감정이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무럭이를 위해서는….” 나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럭이를 생각하면, 그 어떤 감정이든 잠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는 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나는 그 어떤 희생이라도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지난번 외할머니 천도재에서 만났던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나에게 시댁 조상들이 천도재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래, 시댁 조상을 위한 천도재를 지내자!’

그렇게 나는 남편에 대한 참회 대신 시댁 조상에 대한 천도재를 지내기로 결심했다. 결심하자, 무엇인가 나를 구속하려던 무거운 감정이 한꺼번에 내려앉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오로지 무럭이를 위해 시댁 조상의 천도재를 지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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