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재에 나타난 시할머니
시댁 조상들의 천도재를 지내기로 했다. 천도재 전날 큰 이모의 절로 향하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외할머니의 천도재를 지낸 지 겨우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연이어 천도재를 지내야 한다니…’ 마음속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 생각이 한층 더 깊어지자, 떠오르는 사건들이 나를 뒤흔들었다. 다태아 유산 후에 기도한 일, 무럭이 임신 중에 기도했던 일, 그리고 아파트 배수관이 터졌을 때 남편이 수리를 하지 말라고 억지를 부려서 그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부처님께 기도했던 일까지. 기도비가 수리비보다 더 들었다는 것이 떠오르자 짜증이 확 일었다.
언제부터인지 정신없이 부처님께 돈을 바치고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다가왔다. 매번 이유가 있었고 구원의 손길이 간절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암에 걸린 이후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문제가 생길 거라는 말만 들어도 어머니는 스님인 큰 이모나 교회 다니는 둘째 이모에게 당장 기도를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며 내가 그들에게 돈을 보낼 때까지 닦달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착한 딸로 살아왔기에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내 의지가 아닌 기도를 억지로 하게 될수록 나는 편안을 얻기는커녕 신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얽매는 감옥처럼 느껴져서 숨쉬기도 어려웠다.
생각해 보니 아파트 빨리 팔아달라는 고사까지 지냈다.
이모가 운영하는 절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나는 여전히 그 무겁고 복잡한 감정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공포, ‘미쳐버릴까 봐’ 하는 두려움, ‘이 상황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고립감…. 모든 감정들이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길을 잃게 만든 지금 나는 부처님 밖에 의지할 곳이 없었다.
인과응보 법문에 의하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은 단순히 신체적인 질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신적인 고통이었고, 내 마음속의 상처가 너무 커서 내 영혼이 병 들은 것이었다. 이 고통을 이겨내려면 법문은 참회하라 했는데 남편과 시댁에 참회할 수 없었던 나는 참회 대신 시댁 조상들의 천도재를 지내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모의 절에 도착하자마자 불편한 기분을 느꼈다. 이모는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나와 무럭이를 위해 치킨을 주문하려고 했다.
“이모, 내일 천도재인데, 오늘 절에서 치킨을 먹으면 어떻게 해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그 질문 속에 나의 혼란스러움과 마음속 깊은 불편함이 녹아 있었다. 스님인 이모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는 이미 고승 법문곡에서 큰 스님들이 재를 지낼 때 남의 생명을 해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깊이 새기고 있었다. 그런데 치킨을 주문하며 웃고 떠드는 이모의 모습은 내게 천도재의 신성한 의미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치킨에 손대지 않았다.
‘과연 이모가 이 천도재를 제대로 지낼 수 있을까?’
이번 천도재는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이모에게 이번 천도재를 부탁하면서, 지난번 외할머니의 천도재 때 오셨던 미정 스님을 꼭 모시고 싶다고 했다. 그 스님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보였고,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게는 신비로운 진실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이번 천도재 역시 미정 스님이 먼저 권해서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미정 스님은 오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내 마음속에 불쑥 차오른 실망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이모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님이 이번에는 일이 있어서 못 오신대.”
하지만 그 말은 내게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시댁 조상을 위한 천도재, 나는 남편에게 꼭 참여하라고 말했다. 그는 의외로 이런 제사를 좋아하는 편이다. 대학 시절,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 "라는 질문을 하는 이들에게 잡힌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말에 끌렸다고 했다. 심지어 아르바이트로 번 몇백만 원을 들여 조상들의 천도를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래 놓고 나에겐 불경을 읽는다며 불경을 집어던져?’ 나는 남편의 모든 행동이 괘씸하기만 했다. 남편은 내 마음도 모르고 부처님 앞에서 정성스럽게 절을 하며 자신의 조상들을 위해 기도했다.
천도재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처음에는 한껏 집중하며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어차피 내 조상 아니고 시댁 조상들을 위한 일이라 생각해서인지 외할머니 천도재만큼 간절한 기도가 되지 않았다. 그저 돈을 냈으니 지켜본다는 정도였다. 나는 그저 의례적인 절차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향 냄새, 제를 지내는 큰 이모의 경건한 목소리, 조용히 퍼지는 법문의 단어들, 그 모든 것이 나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했다.
내 안에서 시댁 조상들의 천도를 위한 기도 대신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왜 미정 스님은 오지 않았을까? 혹시 이모가 처음부터 청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미정 스님은 단순한 스님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열어주는 열쇠 같았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 열쇠를 찾을 수 없었다.
이모는 계속해서 의례적인 절차를 이어갔지만, 나는 그와 함께하지 못했다. 내 마음속에서는 미정 스님의 부재로 인해 공허한 느낌이 짙어졌다. 천도재는 그렇게 진행되어 갔고, 나는 그저 한숨을 쉬며 이모의 말에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도재 끝자락에 이르러서 이모는 시할머니가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시할머니는 그 자리에 나타나자마자, 일단 목이 마르다며 술 한 잔을 달라고 했다. 술 한 잔을 마신 후, 시할머니는 또 한 잔을 청하셨다. 시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항상 술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생전에 술을 좋아하시던 분은 돌아가신 후에도 술을 찾는다는 것이, 다소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그 후, 스님이신 이모의 입을 통해 시할머니는 내 남편, 즉 자신의 손자를 보며 천도재를 지내주어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일이 잘될 거다. 나만 믿으라”라고 하셨다. “노잣돈을 달라”고도 말했다. 지금껏 이모에게 노잣돈에 대해 들은 적이 없어서 당황했다. 이모는 시할머니가 욕심이 많아 노잣돈까지 챙기고 싶어 한다며 주라고 했다. 나는 또 그렇게 지갑이 털리며 기분이 나빠졌다.
시할머니는 그렇게, 자신이 필요로 한 모든 것을 얻고 떠났다. 그렇게 그 자리는 끝이 났다. 남편은 천도재 내내 진지하게 정성을 다했고 시할머니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시할머니가 나온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시할머니는 내 조상이 아니라, 남편의 조상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천도재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남편이 점집만 가도 늘 나오신다던 내 외할머니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내 돈을 들여 지낸 천도재에서 시할머니가 나와서 자기 손자만 챙기고, 술만 마시고 떠났다. 나는 내가 지낸 것이 시댁 조상들을 위한 천도재였다는 것도 잊고 그저 이 상황이 못마땅했다.
나는 시할머니가 다 잘되게 해 준다는 그 ‘힘’도 의심스러웠다. 생전에 술만 마시던 분이, 돌아가셔서도 술만 찾으면서 어떻게 자손들을 챙기겠다는 걸까? 마음속에서 시할머니에 대해 느끼는 그 불편한 기분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얼음물에 푹 빠진 듯한 큰 충격을 받았다. 마치 세상이 한순간에 멈추고 내 마음이 텅 비는 기분이었다. 나는 시댁 조상의 천도재를 지내면서도 남편에게도 나처럼 조상이 있다는 것에 대해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그의 조상들, 그의 뿌리에 대한 생각은 나의 삶에서 언제나 그저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 남편에게도 조상이 있다는 그 사실이 머리가 아니라 내 마음 깊숙이 박혔다.
처음에는 천도재를 지내며 시할머니가 나오고 그가 말을 하는 그 모든 순간을 그저 의례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관심이 없어서 시할머니가 한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번 천도재로 인하며 그때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돌아가신 시할머니도 나의 외할머니처럼 자신의 손주인 내 남편을 지키고 있었다.
내 외할머니는 언제나 자손을 위하는 분이었다. 살아 있을 때도, 돌아가신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신통력에 대한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전설처럼 들어왔다. 돌아가신 후에도 남편이 가는 점집마다 외할머니가 나타났다. 나는 용인에서 외할머니가 무속인을 몸을 차지하고 말하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내 기억 속 시할머니는 늙고 병든 노인이었지만, 그녀도 자손을 위해 돌아가신 후에도 여전히 남편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외할머니만 신령한 존재로만 생각했는데 남편에게는 시할머니가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또 깨달았다. 외할머니와 시할머니, 그들은 옳고 그름을 넘어서 그저 자손을 귀하게 여기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그들의 자손에 대한 사랑은 그 무엇보다 깊고, 그 무엇보다 강하게 자손을 감싸고 있었다. 그 사실은 시할머니도 옳고 그름이 아니라 무조건 남편의 편을 든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나의 마음속에서 이 천도재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왜 내 돈 들여 적을 불러들인 걸까?’
그러나 원수인 남편에게도 그를 지키는 시할머니가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그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만약 남편이 잘못되면 분명 시할머니 귀신이 나를 괴롭힐 텐데…. 나는 이미 지금 신에게 시달리는 것만으로도 죽을 만큼 힘들었다. 나는 시할머니가 무서워서 원수인 남편의 안위까지 챙겨야 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어렵냐?’
#조상 #신병 #정신암 #천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