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나는 천도재를 통해 돌아가신 시할머니가 그동안 남편 곁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가 우리 곁에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2002년, 대한민국은 월드컵 열기로 가득했다. 거리마다 태극기와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넘쳐났고, 거리의 공기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붉은 악마”라는 응원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온 나라가 하나가 되어 경기를 응원했다. 곳곳에서 사람들은 대형 스크린 앞에 모여 함께 경기를 지켜보았고, 나라 전체가 그 어느 때보다 단합된 모습으로 응원에 열중했다. 그해 나도 붉은 악마처럼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을 꿈꾸며 남편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전, 시어머니는 나에게 이미 여러 번 같은 말씀을 하셨다.
“결혼 전에 아이를 가지면, 100% 아들이야.”
그녀의 말투에는 은근한 강요가 담겨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가슴속으로 뭔가 무겁고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돌아가시기 직전의 시할머니도 메마른 손으로 내 손을 잡고 힘겹게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내가 증손주를 못 봐서 정말 아쉽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시어머니와 시할머니의 기대와 달리 신혼을 즐기자는 생각과 경제적 이유로 아이 가지는 것을 미루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3년이 지나 아이를 갖기로 마음먹었을 때,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불안이 서서히 퍼졌고, 특히 시댁의 기대가 내게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2005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나를 불쑥 부르며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어디 좀 같이 가자” 그 말에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녀가 나와 같이 가고자 하는 곳은 다름 아닌, 점집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친정어머니로부터 점집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자주 전해 들었고 그들의 말을 나름 신뢰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아낌없는 조언을 하는 이들이 넘쳐나면서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매우 높았다. 나는 생각했다. ‘누구를 위해 아이를 가져야 하는 걸까? 정말 아이를 낳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 맞는 걸까?’ 하지만 시어머니에게 대놓고 거절하기보다는, 그냥 그를 따라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웃 마을로 차를 몰았다. 마을을 지나,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한 집에 도착했다. 집은 오래된 한옥 스타일로, 사람의 발길이 적은 듯한 고요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곳에서 만난 여인은 나이를 약 60쯤으로 추정되는 평범한 외모의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특별히 화려한 의상도, 점술을 위한 도구도 없이, 그저 차분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아주머니는 잠시 우리를 살펴보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막내가 먼저 아이를 가졌네요.”
그 말이 나오자, 시어머니는 잠시 내 눈길을 피했다. 어머니의 시선이 내게서 멀어지는 걸 보며, 내 안에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막내 동서가 임신한 사실은 전혀 몰랐다. 아무도 나에게 그들의 임신 소식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들의 결혼은 우리보다 몇 년 뒤였고, 나는 당연히 내가 그들보다 먼저 아이를 가질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게 되니, 그동안 어머니의 눈빛이 얼핏 떠올랐다. 어머니는 내게 무언가를 암시하는 눈빛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것을 이제 확실히 알았다.
시어머니는 점집 보살에게 말했다.
“형이 먼저 아이를 가져야 하는데 동생이 먼저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막내보고 형네가 임신할 때까지 임신한 사실을 비밀로 하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이런 말도 건넸다.
“아들을 먼저 낳으면 네가 이기는 거야.”
나는 우리를 보자마자 막내 동서의 임신 사실을 먼저 말하는 그 무속인을 용하다고 생각했다. 치성을 드리는데 30만 원을 달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인중개사 학원에 다닐 때, 무속인 한 분이 나와 같은 학원에 다니고 계셨는데, 그분은 내가 먼저 말한 적도 없는데 대뜸 나에게 “300만 원 가져오면 아이 낳게 해 줄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 비해 이분이 말하는 가격은 아주 착했다. 무엇보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시어머니의 바람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하자는 대로 점집 보살에게 아이를 갖는 치성을 드리기로 했다.
점집 보살은 내가 물과 연이 깊다며, 넓은 개울가로 데려갔다. 여기서 그분은 내가 알지 못하는 자신의 방법으로 삼신할머니께 치성을 드렸다. 잠시 후, 그녀는 ‘시할머니가 오셔서 우리 부부에게 아이를 주신다고 했다.’며, ‘치성이 잘 되었다.’고 덧붙였다.
점집 보살이 건네준 삼신할머니가 모셔져 있다는 상자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나는 그 상자가 그저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점집 보살의 치성과 그가 말한 시할머니의 이야기는 그저 의례적 상징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단지, 시어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그 상자를 집으로 가져왔다. 그 상자는 바로 안방 침대가 내려다보이는 장롱 위에 올려두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내 삶은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결혼 전, 나는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결혼하면 속궁합이 중요해, 그게 잘 맞아야 서로 오래 갈 수 있다.”
나는 어머니에게 남편과의 결혼을 허락받을 때, 그저 키스만 해도 행복하다고 말했고, 어머니는 웃으며 승낙했다. 결혼 후, 남편과의 싸움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속궁합이 잘 맞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삼신할머니 상자가 집에 들어온 이후,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남편과 잠자리를 갖는 순간, 나는 그를 미워하는 감정을 느꼈다. 그전에 느끼지 못했던, 뭔가 오싹하고 기분 나쁜 듯한 감정이 내 안에서 솟구쳤다. 그리고, 자꾸만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은 점점 더 강해져만 갔다.
남편과의 관계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둘 사이의 애정은 점차 흐려졌고, 나는 그 상자에 대해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편함을 느꼈다. 상자는 점점 더 나를 괴롭히는 물건이 되어갔다. 나는 그 상자와 마주할 때마다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그 상자 안에서 나를 지켜보는 존재가 있다는 불안감은 점점 깊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남편과의 잠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할머니가 그동안 남편 곁에서 남편을 지키고 있었다는 걸 안 지금, 나는 그 상자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돌아가신 시할머니가 장롱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그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치자, 나는 오싹한 기운을 느꼈다. 시할머니는 이제 세상을 떠난 지 오래였지만, 그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시할머니는 1900년대 초에 태어나 20세 전에 문경으로 시집와 평생을 이곳에서 사셨다, 문경은 아직도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 나는 그런 보수적인 동네였다. 95세에 가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시할머니는 손주들에게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고이 길러내셨다. 특히 내 남편을 볼 때면 “내 손자, 귀한 내 손자, 내 제삿밥 차려줄 내 귀한 손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시할머니가 자신의 귀한 손주에게 밥도 제대로 안 차려주고 함부로 대하는 손주 며느리를 보았다면?
시할머니는 자신의 남편인 시할아버지와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로지 손주에게 제삿밥 얻어먹겠다는 일념으로 남편과의 갈등을 꿋꿋이 견뎠다. 특히 첫 손자인 내 남편은 품에서 끼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을 대신해 자신의 품에 따스한 온기를 전해 주던 손자가 손부와 자신의 눈앞에서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면? 나는 그동안 남편과 잠자리만 하면 남편이 미워지고 다투게 되었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신에게 본격적으로 시달리기 전, 아파트를 빨리 팔아달라고 지냈던 고사에도 시할머니가 나왔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고사 때부터 시할머니와 나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졌음을 알았다.
아이를 갖고자 기도하는 이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당부하고 싶다. 그저 주변에서 시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삼신 기도를 올리는 일은 삼가시라. 먼저 부부간의 업장을 소멸하는 기도를 드리고, 그다음에야 부부와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자녀를 보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식과 부모의 인연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은혜를 갚는 보은(報恩) 인연, 둘째는, 원한을 갚는 보원(報怨) 인연, 셋째는, 빚을 갚는 상채(償債) 인연, 넷째는, 빚을 되찾는 토채(討債) 인연이다.
자녀가 아무리 똑똑하고 성공했다 하더라도, 부모를 원수처럼 대하기도 하고, 어떤 어머니는 자신의 몸으로 낳은 자식에게조차 두려움을 느끼고, 어떤 아버지는 자식을 해치는 일도 있다.
그래서 나는 ‘성공한 자식’을 기도하기보다, 부모와 조화를 이루고 화합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의 자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강조한다. 가족이 화목하면 그곳은 곧 지상낙원이지만, 가족 간에 다툼이 끊이지 않으면 그 집은 지옥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원수 같은 인연이 가족이 되어 있다면, 참회를 통해 그 업연을 녹이는 길밖에 없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면 가능한 한 그 자리에서 직접 사과하라.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직접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아이가 없는 자리에서 그를 떠올리며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진심으로 참회하는 것만으로도 업은 녹고, 원수도 더 이상 원수가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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