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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화. 집념이 강하면 죽어서도 떠나지 못한다

시할머니

by 엄마쌤강민주

2011년, 나는 시댁 조상들을 위한 천도재를 지내다 돌아가신 시할머니가 그동안 남편 곁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2005년 즈음 시어머니와 함께 무속인을 찾아가서 삼신할머니께 치성을 드렸을 때, 점집 보살이 “시할머니가 오셔서 아이를 주신다고 했다.”며, “치성이 잘 되었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점집 보살이 건네준 삼신할머니가 모셔져 있다는 상자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나는 그 상자가 그저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점집 보살의 치성과 그가 말한 시할머니의 이야기는 그저 의례적 상징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단지, 시어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그 상자를 집으로 가져왔다. 그 상자는 바로 안방 침대가 내려다보이는 장롱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나 삼신할머니 상자가 집에 들어온 이후,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남편과 잠자리를 갖는 순간, 나는 그를 미워하는 감정을 느꼈다. 그전에 느끼지 못했던, 뭔가 오싹하고 기분 나쁜 듯한 감정이 내 안에서 솟구쳤다. 그리고, 자꾸만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은 점점 더 강해져만 갔다.


남편과의 관계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둘 사이의 애정이 점차 흐려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남편과의 잠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할머니가 그동안 남편 곁에서 남편을 지키고 있었다는 걸 안 지금, 나는 그 상자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돌아가신 시할머니가 장롱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구나!’



나는 신에게 시달리기 전 남편과의 갈등이 극에 달했고 이혼하지 않으면 내가 남편을 죽여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7년 5월, 나는 투자목적으로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34평 아파트를 샀다. 처음에는 시어머니 이름으로 아파트를 계약했다. 그러나 자궁 외 임신으로 나팔관이 터져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다음, 내가 아이를 갖기 위해 부동산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었을 때,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아기는 밖에서 낳아 올 테니, 너는 계속 돈을 벌어.”


그 말이 내 마음을 얼마나 찢었는지 그는 알까? 아들을 낳으라는 시댁의 압박이 점차 커 가고 있었고 반복된 유산으로 내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남편이 나를 대하는 말과 행동에서도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이를 갖는 것만이 내 고통의 유일한 해결책이라 말했다. 그런데 남편이 나와 아이를 갖지 않고 다른 여자에게서 아이를 낳아온다고 말하다니...


나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 이혼을 결심한 나는 남편에게 아파트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시어머니 이름으로 계약했던 것을 취소했다. 그리고 아파트를 여동생 명의로 계약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항암치료와 다태아 유산, 그리고 무럭이 출산이라는 큰 사건들이 차례로 나를 덮쳤다. 그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나는 이혼하겠다는 생각을 잠시 잊고 살아갔다.



하루는 남편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업에 대해 내가 보증을 서지 않겠다고 하자 분노하며 말했다.

“네가 안 맞아 봐서 그렇구나!.”


남편과의 말다툼이 수위를 넘었고 그 와중에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절대 이혼 못 하잖아. 네가 이혼한다고 하면 처갓집에서 허락하겠어? 장모님이 동네 사람들 부끄러워서 절대 허락 안 할걸.”


그 말에 어느 순간부터 시작되었던 남편의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요구들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자기와 절대 이혼 못 할 줄 알았던 거구나! 나와 우리 집을 무시했구나!


“너는 무럭이 없이 못 살잖아.”

남편은 무럭이를 언급하면서 마치 내가 무럭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불합리한 일도 참아 낼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그는 내가 용납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이혼하자, 이혼 안 하면 내가 너를 죽일지도 몰라. 이혼하자”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남편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혼을 결심하자 가장 먼저 딴 주머니 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을 사랑했을 때는 남편에게 내가 버는 돈을 전부 오픈했다. 그러나 이혼을 결심한 후 나는 남편에게 내가 얼마를 버는지, 재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작정하고 숨기기 시작했다.


2009년 아들을 낳았다. 아들을 낳고도 남편과의 갈등이 해결되기는커녕 더 나빠지면서 이번엔 진짜로 이혼할 생각이었다. 예전에 남편 몰래 샀던 아파트를 팔아서 이혼 자금을 마련하려 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아파트는 쉽게 팔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 친정어머니가 시루에 떡을 쪄서 장독대에 놓고 기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항상 그런 의식을 통해 다 잘될 것이라고 믿으셨다. 가끔은 스님인 큰 이모나 무속인을 통해 고사를 지내기도 했었다. 어머니가 암 수술을 받으신 후, 암 병동에서의 경험을 통해 나는 영적인 존재와 힘을 믿게 되었다.


그래서 아파트를 빨리 팔기 위해 스님인 큰 이모에게 고사를 부탁했다. 이모는 나의 부탁을 받아들였고,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고사를 지내기로 했다. 남편은 출근하고 없었고, 나는 혼자 이모와 함께 고사 지낼 준비를 했다.


고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모는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차리고, 나와 함께 기도를 드렸다. 고사 중에, 이모가 갑자기 시할머니의 오셨다고 말했다. 예전에 삼신할머니께 치성드릴 때처럼 나는 이번에도 그저 의례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시할머니는 나에게 자세히 물었다.


“그 아파트가 누구 거라고?”

시할머니는 고요하게 나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남편은 그 아파트에 대해 모른다고?”


이모가 시할머니가 오셨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늘 내 편을 들어주던 큰 이모의 모습이었다. 나는 큰 이모의 몸을 빌린 시할머니에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네. 남편은 모르는 아파트예요. 이 아파트가 팔리면 이혼할 생각이에요.”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공기가 확 식는 기분이 들었다. 큰 이모의 눈빛이 차갑게 변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때부터 일이 잘못되었다고 직감했다. 그날 이후, 아파트는 여전히 팔리지 않았고, 남편과의 관계는 더욱 나빠졌다. 그리고 나는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외할머니는 평생을 불경을 틀어놓고 기도하셨고 살아생전 신통력이 있어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셨다. 그러나 생전의 시할머니는 그저 늙고 병든 평범한 노인이었다. 그래서 천도재도 외할머니를 위해서 지낼 생각만 했지 시댁 조상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미정 스님이 시댁 조상들이 천도재를 원한다고 말했다. 나 또한 인과응보 법문을 보고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이해 못 할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댁 조상들의 천도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도재 시작 전부터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언제부터인지 정신없이 부처님께 돈을 바치고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다가왔다. 천도재를 지내는 내내 간절히 자신의 조상들에게 소원을 비는 남편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천도재가 끝날 무렵 시할머니가 나와서 남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서도 왜 내 돈 들여 지낸 천도재에 시할머니가 주인인 척하지? 라며 불편하게 느꼈다. 남편이 자신의 조상에게 보호받는다는 걸 깨달은 후, 나는 내 돈 들여 적을 불러드렸다며 천도재를 후회하고 후회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시할머니가 마음에 안 드는 나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남편을 이어주려 하는구나! ’


신혼 초에는 남편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꿀처럼 달콤했다. 가벼운 장난에도 얼굴을 붉히며 환하게 웃어 주던 남편. 지갑 사정은 넉넉지 않았지만, 그가 내게 쏟아붓는 사랑은 어느 부자보다 풍족했다. 남편과 내가 함께 있으면 사람들은 “남편이 부인 예뻐 죽네, 죽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 말이 들리면 나는 그 어떤 힘든 일도 다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남편은 밤새 여자들과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눌 정도가 되어서 집에 들어오는 일이 늘었다. 어쩌다 밖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집에 일찍 들어오면 집에서 술을 마셨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빈 술병만큼 우리의 대화도, 웃음도 사라져 갔다.


그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호주 유학까지 다녀온 교양 있는 남자였건만, 술잔이 돌고 여인의 속삭임이 더해질수록 점점 옛 전설 속 가부장의 망령처럼 변모했다. “집안 꼴이 왜 이 모양이야!.” 그는 늘 나를 핀잔하고 면박을 주었다. 술자리를 함께 하는 여자들에게 내가 살림을 못한다고 흉을 보았다.


내 안에 부글거리는 분노는 이제 시할머니에게로 향했다. 시할머니는 1900년대 초에 태어나 2003년 95세에 돌아가셨다. 근 100년을 문경에서 사셨는데 그곳은 지금도 가부장적인 곳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한 곳이다. 시할머니의 생전 유일한 낙은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시할머니 귀신이 남편에게 붙어서 남편이 시할머니처럼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남편에게 상처가 깊은 나는 시할머니를 진심으로 천도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그저 이 상황에 시댁과 그 조상들은 물론 남편에게 분노하기만 했다.


생각할수록 분노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자기 인생도 제대로 못 살아놓고, 왜 우리 일까지 간섭이야!” 그동안 시할머니와 시댁에게 잘한 것이 억울했다. ‘시댁 조상들을 위해서는 천도재 따위 지내는 게 아니었어. 다시는 시댁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거야.’ 단단히 다짐했다.


이제 우리 부부의 거리는 바늘 끝보다 더 가늘어졌다. 시댁과 나, 그리고 남편, 우리의 얽힌 실타래는 점점 더 꼬여만 간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마음공부가 깊어지자 나는 비로소 시할머니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녀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식 둘을 잃고 남편과의 사이도 나빴다. 오로지 제삿밥 차려줄 손자만을 바라보며 외롭고 고단한 날들을 살아 내었을 그녀. 그 세월이 고스란히 품고 있을 쓰라림과 서러움에 내 마음이 저며 왔다.

나는 눈물로 그녀를 위한 천도재를 올렸다. 요령 소리가 울리고, 향이 타오르는 동안 온몸의 응어리가 사라지는 듯했다. 제를 마친 뒤, 오래 눌러왔던 무거운 기운이 사라지고 나의 삶은 한층 가벼워졌다.


이런 경험은 나도 시할머니처럼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집념을 죽어서까지 놓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을 안겨주었다. 너무나 사랑하는 무럭이, 내가 만약 죽어서도 시할머니처럼 무럭이를 염려하여 무럭이를 돌본다는 명목으로 무럭이와 함께 하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존의 테두리가 다른 영가가 산 사람에게 붙게 되면, 산 사람은 그 순간부터 병에 시달리거나 정신적인 장애에 시달리게 된다. 곧 산 사람이 그렇게 힘들어지는 것이다. (영가천도, 우룡 큰 스님 지음, 효림 p43)


이제 나는 시할머니의 삶을 이해한다. 그러나 시할머니의 그릇된 생각이 자손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지도 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내가 그 시절을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를 돌아보며 나와 같은 고통에 빠진 이들에 게 나의 경험으로 빛이 되어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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