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탐할 수 없는 아이
-반야심경 독송 영험담 첫 번째 이야기-
2010년 가을, 시댁에서 가져온 ‘생활 속의 반야심경’은 내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글자 하나하나가 낯설고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한 구절 한 구절, 그 뜻을 알아갈수록 반야심경은 내 마음속에서 환희와 평온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책을 펼치면 문자가 흐릿하게 보였고,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았다. 시력이 1.5였던 내가 갑자기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한번 살펴보았지만, 글씨는 여전히 흐려져 있었다.
내가 깨우치는 것을 싫어하는 존재가 있어, 반야심경을 읽는 내 눈을 가리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눈은 더 흐려졌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 눈이 아예 안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이 반야심경을 완벽히 외워야 한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고, 반야심경을 외웠다.
어느 날, 친정집에서 졸음을 참지 못해서 잠시 낮잠을 잤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이 내 몸을 감싸며, 자연스럽게 꿈으로 빠져들게 했다.
그 꿈속에서, 작은 여자아이를 보았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듯 흐트러져 있었다. 산발한 긴 머리카락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 존재는 어딘지 모르게 불길했다. 그녀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손길이 내 머리카락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마치 그녀의 존재가 내 머리카락을 통해 내 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 버렸다. 전율이 몸을 타고 흘러내리며,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 순간 알았다. ‘너구나! 내 눈을 가리는 귀신이!’ 나는 꿈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귀신의 손길은 점점 더 깊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눈을 뜨자마자, 꿈속에서 본 내용을 어머니와 구미 이모에게 조심스럽게 전했다. 내 말에 둘은 잠시 말을 잃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긴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귀신, 우리가 쫓아내자”
당시 외가에는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고요했던 일상은 어느새 불안과 혼란으로 뒤덮였고, 평온한 일상은 간절한 꿈이 되었다. 스님인 큰 이모는 자신이 그토록 믿어왔던 아들과 막내 동생에 의해 절이 경매로 넘어갔다. 어머니는 암에 걸렸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기적처럼, 어머니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셨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온 가족은 깊은 두려움에 휩싸였었다. 그 후로 어머니는 부처님, 하나님, 그리고 온갖 신들에게 열심히 기도하셨다.
어머니의 다른 형제들에게도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비극적인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일련의 비극들은 그들을 신에게 의지하게 만들었다. 믿음을 갖지 않으면 도저히 이 세상을 견딜 수 없다는 듯, 각자의 신앙에 더 의지하기 시작했다.
큰 이모와 어머니 그리고 나는 부처님께 기도했다. 전주에 사는 이모와 구미 이모, 막내 이모와 막내 외삼촌은 교회에 다니며 기도했다. 큰 외삼촌은 특별히 종교를 가진 것이 없었지만, 큰 외숙모가 교회에 가서 기도를 올렸다. 그들은 기도하면서 위안을 얻고자 했고, 마음속에서 이 혼란을 잠재워 줄 기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그동안 집안의 금기였던 외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점차 입 밖으로 나왔다.
“외할머니가 자살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외할머니의 죽음은 어머니를 비롯한 외가 식구들의 죄책감을 자극했고 일련의 비극적 사건들을 겪으며 그들은 죄에 대한 두려움으로 점점 잠식되어 갔다. 그럴수록 그들은 더욱 신에게 의지해 기도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며, 각자의 믿음이 성처럼 견고해졌다.
교회에 다니는 구미 이모는 늘 나의 어머니와 깊은 유대감을 나누며 살았다.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끝낸 후, 그 둘은 거의 매일같이 만났다. 그런데 어느 날, 이모가 기도하는 중에 미래가 보인다고 말했다. 두 분은 함께 무속인에게 찾아갔다. 무속인과의 만남은 예상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이모가 기도 중 본 내용과 무속인이 말하는 내용이 정확히 일치했다. 여러 번 이모의 기도와 무속인의 말이 반복적으로 일치하면서 신비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이때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스스로는 신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놀라운 것은 내가 미리 꿈에서 본 것을 이모가 이삼일 후에 기도 중에 보았고, 그 내용을 무속인이 정확하게 맞추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이미 예전부터 불교와 신앙생활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는데 암에 걸리고 나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어머니는 나에게까지 어머니의 신앙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신앙생활은 숨 쉬는 하나하나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암에 걸리신 후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어머니의 신앙생활에 들어가는 돈은 내 차지였다.
믿음에 심취한 이모들과 어머니의 행동은 때로는 광신도처럼 보였고, 때로는 그들이 미쳤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나는 점차 지쳐갔고 어느 순간 어머니의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도 닥쳐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신에게 시달렸고 나도 이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부처님께 매달려 평온한 내일이 오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나는 어머니와 이모들을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보았기 때문에 단순히 절에 시주하고 교회에 헌금하는 방법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와 이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우리는 힘을 모아,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해 보기로 했다.
그날, 어머니는 내가 꿈에 보았다는 귀신을 쫓아 내기 위해 제사상을 차렸다. 어머니는 제사상 위에 정성껏 차린 음식들과 향을 놓았다. 이모는 제사상이 차려진 중앙에 앉았다. 평소와 달리 신경을 써서 목욕을 마친 후 깨끗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은 어설펐지만 이모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간절하고 진지했다.
이모는 그 자리에 앉아 깊은 집중에 빠졌다. 어머니도 이모 옆에서 기도했다.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시중을 들며, 두 사람의 기도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움직였다. 거실 안은 차분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이모의 얼굴이 점차 변해갔다. 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는 듯, 공허하면서도 진지했다. 갑자기, 이모의 눈을 뜨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모가 처음 한 말은 내 안에 있는 아이가 보인다며 그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데 들어 볼래? 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심장이 잠시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안에 다른 아이?’ 그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있는 이곳에,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기도하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머니가 평소 무속인을 쫓아다니고 고사 지내기를 좋아해서 내가 신에게 시달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나를 위한 재를 지내주는 지금도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원망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그때 이모가 나를 괴롭히는 귀신에게 구슬픈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바람 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울음처럼, 그 누구라도 마음을 저리게 할 만큼 아련하고 슬펐다.
“관음보살~ 관음보살~, 이 아이에게 들인 어미의 피눈물 나는 정성을 아십니까? 당신이 그것을 갚을 수 없다면 이 아이를 탐해서는 아니 됩니다. 이 아이에게서 떠나세요.”
나는 이모의 말이 끝날 때까지 숨을 죽여 그 소리에 집중했다. 그녀의 기도는 고요하고 엄숙했다.
기도가 끝난 후, 이모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엔 마치 큰 짐을 내려놓은 듯한 안도감이 가득했다. “오늘 밤 안으로 그 귀신은 떠날 거야” 이모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나에게 위안을 주었지만, 동시에 내 마음속에 불안과 궁금증을 남겼다. ‘스님도 목사도 아닌 이모의 말을 듣고 정말 그 귀신이 떠날까?’
그날 밤, 나는 꿈속에서 기이한 경험을 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거친 욕설, 그 소리는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목소리는 비통하고 분노에 찬 듯했으며, 고통스러운 절규처럼 내 마음에 깊이 파고들었다.
다음날 이모가 그 꿈에 대해서 해석해 주었다.
“그 여자아이는 술집에 있다가 네 남편을 따라서 너희 집에 온 거야. 그 아이는 네가 천도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천도 안 해주고 쫓아내서 화가 나서 너한테 욕하고 떠난 거고.”
그 후, 내 눈은 멀쩡해졌다. 눈앞이 선명하게 보였고, 그동안의 어두운 흐림이 사라졌다. 이모의 기도가 효과가 있었다. 그날의 기도는 단순히 귀신을 쫓아낸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다시 잡게 만든 사건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더욱 열심히, 간절히 반야심경을 독송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매일매일 독송을 반복하면서, 반야심경의 의미가 내 삶에 더욱 깊숙이 스며드는 듯했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나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한다.
“일단 공덕경 하나를 정해서 무조건 100번 독송해 보세요. 귀신도 물리칠 수 있고 업도 녹일 수 있습니다. 공덕경 100번 독송하면 가피가 분명히 있어요.”
불법 공부가 깊어질수록 예전, 그 어린 여자아이 귀신이 자꾸 떠올랐다. 그때 나는 겁이 나서 그녀를 천도시키지 못하고 그저 쫓아내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그 아이 역시 과거 어느 생에서든 나와 인연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결국, 그녀를 따로 천도해 주었다. 뒤늦은 미안함과 연민을 담아.
그 후로 나는 타인의 무덤 앞에서도 가끔 광명진언을 외워 준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강민주와 인연 있는 유주·무주 고혼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등을 단다. 남편과 아들을 위해서도 같은 영가등을 단다. 가끔 꿈에 보이는 존재를 위해서도 등을 달고 살면서 마음에 걸리는 이들을 위해서도 그들의 인연 영가들이 천도되라고 등을 단다.
올해는 특별히 몇 해 전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인연 맺었던 한 선생님 영가를 위해 등을 하나 더 달았다. 그리고 ‘과거 무량겁의 시간 속에서 강민주의 모든 환생의 업장소멸과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등을 함께 올렸다.
가끔 인연 있는 모든 존재들을 천도하려고 하는 내게 어떤 이는 말한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네 짐이 너무 무거워진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내가 지옥의 어둠 속에서 울고 있을 때, 지장보살님을 비롯한 누군가가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기에 내가 지금, 이생을 살아가는 거라고. 그리고 오히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향해 천도재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나는 마음의 걸림에서 벗어나 한층 더 자유로워졌다. 때때로 누군가가 나를 시비하거나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려 할 때면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뇐다.
“나는 너를 사랑해. 언제나 네가 잘되기를 기도하는 사람이 바로 나야. 나를 해친다 해도, 결국 손해 보는 건 너일 뿐이지.”
그렇게, 나는 오늘도 등을 켠다. 묵묵히, 조용히, 내가 세상으로 부터 받은 그 사랑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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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몇 년 전 불교밴드에 돌던 연등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