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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내 안의 아이 첫 번째 이야기

내면 아이

by 엄마쌤강민주

-반야심경 독송 영험담 두 번째 이야기-


‘생활 속의 반야심경’은 내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경전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알아갈수록 내 마음은 환희와 평온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글자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기고 읽어도, 무언가 마음에 남는 것이 없었다. 읽었지만 읽은 것이 아닌 듯, 눈앞의 문장이 공기처럼 스쳐갔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아니 누군가가 반야심경을 읽지 못하게 내 눈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마음 한편에서 속삭였다. ‘언젠가 눈이 아예 안 보일지도 몰라.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이 반야심경을 완전히 외워야 해.’ 나는 다짐했고, 매일매일 경전을 외우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집에서 밀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시 낮잠을 청했다. 짧고 아득한 꿈 속에서, 나는 한 여자아이를 보았다. 길게 늘어진 머리칼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산발한 긴 머리카락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렸다. 전율이 몸을 타고 흘러내리며, 숨이 턱 막혔다. 그 순간 알았다.

‘너구나! 내 눈을 가리는 귀신이!’


눈을 뜨자마자, 나는 어머니와 구미 이모에게 이 기이한 꿈을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내가 꿈에 보았다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제사상을 차렸다. 구미 이모는 제사상이 차려진 중앙에 앉았다. 이모는 그 자리에 앉아 깊은 집중에 빠졌다. 어머니는 이모 곁에서 조용히 기도했다.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시중을 들며, 두 사람의 기도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움직였다.


이모의 얼굴은 기도와 함께 서서히 변해갔다. 평온했던 표정이 점차 다른 세계로 빠져드는 듯, 어둡고도 깊은 무언가로 물들어갔다. 숨을 죽인 채, 나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미세한 떨림, 고요한 침묵.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 이모는 갑자기 눈을 떴다. 그녀의 눈빛은 내 안 깊숙이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네 안에 있는 아이가 보여.”

이모가 조용히 말했다.

“그 아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어. 들어볼래?”


숨이 멎을 듯한 순간이었다.

‘내 안에 아이가 있다고…?’

이모는 덧붙였다.

“그 아이는 열여덟 살 된 소녀야.”

순간,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마치 누군가가 내 등을 밀어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 것처럼. ‘내 안에… 아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데, 이 몸과 생각을 가진 내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내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고. 더구나 그 아이가 나에게 말을 하고 싶어 한다고… 무슨 뜻일까?


그때 꿈속에서 본 여자아이의 모습이 스쳤다.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린 채 나타난 그 아이. 혹시… 이모가 말하는 내 안의 아이가, 그 귀신이란 말인가?

너무 두려웠다. 머릿속은 아득했고, 손끝은 얼어붙은 것처럼 저려왔다. 제사를 지내는 거실 안의 공기는 숨이 막히도록 무겁고, 어딘가에 숨어 있던 차가운 공포가 서서히 피부 아래로 스며들었다. 이모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말들이 마치 물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흐릿하게만 들렸다.

잠시 후,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쥐어짜듯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모… 내 안에… 여자 귀신이 있다는 거지?”


그 순간, 거실 안의 모든 소리가 멈춘 것 같았다. 시계 초침 소리조차 사라지고, 우리 사이에 놓인 공기마저 얼어붙었다.


이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귀신이 아니라, 너야.”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35살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열여덟 살이라고?

“이모, 난 서른다섯이야. 그 아이는 열여덟이라며. 내가 아니잖아.”


이모는 잠시 날 바라보더니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넌 열여덟이라도 돼서 세상이 어떤지 조금은 알지. 근데 네 남편 안에 있는 아이는 겨우 다섯 살 짜리야.”

나는 그 말을 이해하려 애썼다. 이모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 조그만 얘가 돈 벌겠다고 아줌마들에게 재롱부리고 있어. 아줌마들이 꼬맹이 귀엽다고 용돈 줘서 겨우 살아. 그러니까, 네 남편이 아줌마들이랑 어울리는 거 너무 뭐라고 하지 마.”


이모의 말이 내 안에서 맴돌았다. 남편은 38살이다. 나보다 세 살 많고, 보험회사 지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남편의 사무실에는 여자 보험설계사가 많다. 하지만 이모는 그 남편이 사실은 ‘다섯 살짜리’라고 했다.

이모의 말이 이어졌다.

“넌 열여덟인데, 겨우 다섯 살밖에 안 된 네 남편이 너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니까, 그 말이 다 억지로 들리는 거야. 그래서 네 속이 타들어 가는 거지.”


마지막으로 이모는 아주 조용히, 마치 내 마음 한구석에 직접 말을 건네듯 말했다.

“네 남편은 얘니까, 더 큰 내가 좀 봐줘.”


나는 이모가 말하는 내 안의 아이에 대해 도무지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38세인 남편의 육체 안에 다섯 살짜리 아이가 살고 있고, 35세인 내 몸속엔 열여덟 살의 소녀가 숨 쉬고 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낯설었다.


몸은 어른인데, 마음속에는 어린아이가 존재한다고? 더구나 그 아이들이 어른인 우리 삶을 움직인다고? 황당한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엇보다도, 꿈에서 본 얼굴 없는 여자아이 귀신은 내게 너무도 강렬한 공포로 다가왔다. 긴 생머리가 춤추듯 흩날리며 얼굴을 감춘 그 아이가, 혹시 이모가 말한 내 안의 열여덟 살 아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머릿속에서 뒤얽힌 채,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만이 선명히 남았다.


기도가 끝난 후, 이모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엔 마치 큰 짐을 내려놓은 듯한 안도감이 가득했다.

“오늘 밤 안으로 그 귀신은 떠날 거야”


그날 밤, 나는 꿈속에서 기이한 경험을 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거친 욕설, 그 소리는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목소리는 비통하고 분노에 찬 듯했으며, 고통스러운 절규처럼 내 마음에 깊이 파고들었다.

다음날, 이모가 그 귀신이 떠났다고 말해주었다.


그 후, 내 눈은 멀쩡해졌다. 눈앞이 선명하게 보였고, 그동안의 어두운 흐림이 사라졌다. 다시 또렷하게, 경전의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의 기도는 단지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마음을 정화하고,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게 한 전환점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계율을 마음에 품고 닥치는 대로 불서와 불경을 읽었다. 그럴수록 더 많은 기적을 체험했고 내 영혼을 점점 치유되기 시작했다.


오늘도 남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할 이야기를 품고 불면의 밤을 보내는 분이 계시겠지요?

내가 살아있기만 하다면 그 어떤 고난도 다 지나가는 일이랍니다.

꼭 살아남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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