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3화 내 안의 아이(내면 아이) 두 번째 이야기

by 엄마쌤강민주

-반야심경 독송 영험담 세 번째 이야기-

꿈속에서 마주한 귀신은 너무도 선명했다.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또렷한 존재감이었다. 그 아이가 반야심경을 외우려는 내 두 눈을 가렸다. 마음 깊숙이 무서웠다.

꿈에서 본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기도 중, 구미 이모로부터 내 안에 있는 아이에 대해 들었다.

“네 남편 몸에는 다섯 살 아이가 있고, 너한텐 열여덟 살 소녀가 있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았다. 서른여덟 남편의 몸에 다섯 살 아이가 있고 서른다섯의 내 몸에 열여덟의 아이가 있다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뇌리에 박혔다. 그리고 문득 겁이 났다. 혹시 그 열여덟 살의 소녀가, 꿈에 나타난 그 귀신이라면?


하지만 다행히도 기도 후 그 여자아이 귀신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모가 말한 내 안의 아이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진짜 이야기는 그로부터 며칠 뒤에 시작되었다.


유난히 바람 한 점 없는 날이었다. 창밖의 나뭇가지는 조용했고, 집 안은 숨죽인 듯 고요했다. 나는 평소처럼 참회문을 읊조리고 있었다. 매일같이 반복한 독송, 이미 습관처럼 몸에 밴 의식.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처음 참회문을 접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울림이었다. 훨씬 더 깊고 아프고, 생생하게 나를 찔렀다.


참회문의 구절을 한 줄 한 줄 되뇌는 사이, 가슴 한복판이 무너져 내렸다. 숨이 턱 막혔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몇 생을 돌아 쌓인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한 감정.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오래도록 닫혀 있던 무언가가, 마침내 열렸다는 듯이.

그동안 나는 내가 저지른 죄가 세상과 타인을 향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상처를 준 인연들에게,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조차 용서를 구해왔다. 그런데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가장 큰 죄는 내가 나에게 지은 죄였다는 것을.


늘 내 곁에 있어 준 존재. 보고 듣고 말하며 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나의 몸과 마음. 나는 그것에게 단 한 번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었다. ‘고맙다’ 말하기는커녕, 원수보다 더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조금만 실수해도 몰아세우고, 아프다고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


‘이토록 소중한 나에게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해왔던 거지?’


그 순간, 수많은 기억이 스쳐갔다. 자신을 존중하지 못했던 날들. 죄가 많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미워하고, 모른 척했던 모든 순간들. 나는 내 삶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내게 지은 죄를 참회했다.

“정말 미안해. 그동안 너무 잘못했어. 다시는, 다시는 죄를 지어 나를 그런 지옥 속에 빠뜨리지 않을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한 존재인 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진심 어린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녹아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오래전부터 묶여 있던 사슬 하나가 풀려나가는 듯한 기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날 이후, 나는 알았다. 진짜 용서는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내 죄를 참회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용서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을. 나부터 나에게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을.


2017년 윤 6월, 나는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래된 상처에서 피어오르는 이야기들을 글로 엮어 불교 밴드에 올렸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과거의 나처럼 아파할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고 싶어서. 그런데 그 글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세상에 번져갔다.


“당신의 업을 녹이기 위해 부처님 앞에서 삼천배를 할 거예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잠시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얼굴 한 본 적 없는 나를 위해 그분은 속리산 법주사에서 정성을 다해 삼천배를 했다.


“아들을 위해 백일기도를 하면서, 당신도 매일 함께 축원했어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들의 축원과 함께 내 아픔을 위로하며 기도해 준 사람. 제주도에 산다는 이분의 말에선 어떤 깊은 연대의 향기가 느껴졌다.


어느 날은 어떤 독자가 조심스레 말했다.

“당신의 글을 읽고 처음 절에 가봤어요. 부처님 앞에서 당신을 위해 기도했어요.”


그리고 또 누군가는, 내 글을 통해 오랜 원수를 용서했다고 감사하다고 했다. 심지어 손글씨로 꾹꾹 눌러쓴 편지까지 내게 도착했다. 내 글을 읽고 살아갈 희망이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내게 봄을 데려왔다. 10년에 가까운 수행은 나에게 찬란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심장을 가지게 했다. 내 심장에 봄이 노크하기 전까지 나는 다이아몬드 심장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봄을 맛본 나는 다이아몬드 심장이 결국은 꽁꽁 얼어붙은 심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긴 시간 나는 차갑고 어두운 겨울 속에서, 죄인인 나 자신을 벌주며 살아왔다. 나는 춥고 외로운 겨울이 너무 익숙해서 내가 겨울을 살고 있었다는 것도 내가 스스로를 벌주고 있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따스한 말들이, 기도가, 편지들이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고 차갑게 빛나는 내 심장을 서서히 녹여갔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세상을,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사실은 나 자신을 용서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오랫동안 가족들의 날 선 비난으로 인해 상처 입으며 나는 내가 잘못된 사람이라 믿었다. 세상을 살아갈 자격조차 없는, 나쁜 죄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내가 정말로 나쁜 사람일까? 나는 세상이 전해준 사랑 속에서 내가 나쁜 사람일 리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단순하지만 깊은 진실을 깨달은 그 순간, 나는 참을 수 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조용히, 그러나 깊게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죄인이 아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세상이 보여준 따뜻한 사랑 덕분에, 나는 내 안의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손을 맞잡는 그 순간, 내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용서와 사랑은 결국 나 자신을 되찾는 여정이었다.


2018년, 나는 상담심리학과에 편입했고 거기서 ‘내 안의 아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 안의 아이”라는 표현은 심리학에서 “내면 아이(Inner Child)”라는 개념을 말한다. 내면 아이는 마음속에 아직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나로, 이 아이는 우리가 어릴 때 받았던 사랑, 상처, 무시, 칭찬, 외로움 같은 감정들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 내가 겪는 감정적인 반응이나 행동들 중 일부는 내면 아이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심리 치료에서는 내면 아이와 만나고, 그 아이의 상처를 돌보고 치유하는 작업을 한다. 나는 지난번 가계도와 마찬가지로 내면 아이에 대해서 심리학과에 들어오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2020년 나는 대학원 수업의 일환으로 LMT 그림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청소년들이 주로 이런 그림을 그리곤 해요.”

교수님의 그 말 한마디가 잊고 있던 기억의 조각을 불러왔다.


“네 안의 아이는 열여덟 살 소녀야.” 이모가 기도 중 했던 말이다.

열여덟의 나는 유난히도 생각이 많았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시간보다, 오래된 단편소설 한 편을 꺼내어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 더 익숙했다.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매일 밤 머릿속에 품고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만 ‘나는 아마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예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1920~30년대, 한국의 단편 문학에 매료되었다. 그 시대의 작가들은 현실의 고통을 꿰뚫어 보았고, 그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아름다움과 유머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글에 빨려들 듯 매료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알지만 나는 아직 이 세상을 모른다.

‘아직은 떠날 수 없어. 나는 아직, 이 세상을 몰라.’


그날 나는 결심했다. 80살까지 이곳에서 살아보자고. 그때쯤이면, 나도 이 세계를 알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누구에게도 이런 사실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모는 기도 중 이런 말을 했었다.

“너는 원래 잠깐 이 세상에 놀러 나왔어. 아주 오랜만에 온 거라 이 세상이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잠깐 둘러보고 곧 갈 생각으로 이곳에 왔어. 그런데 내가 갑자기 더 머물겠다고 해서 계속 문제가 생기는 거야.”


열여덟 살은 아직 ‘전생의 업’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그 이듬해, 열아홉 살에 나는 어머니와 친구로부터 “몸에 커다란 칼자국이 있을 팔자”란 말을 들었고 얼마 후, 다리뼈가 세 동강이 났다. 저승사자도 보았고 늘 가위눌림에 시달리기도 했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상처에서 회복되어 일어섰다. 그러나 세상은 나에게 더 큰 상처를 주었다. 나는 매번 아파 울부짖었고, 끝없이 무너졌다. 겨우겨우 회복했지만 어느새 나는 보기 흉한 흉터가 가득한 사람이 되었고 스스로를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쳐다보지 않았다. 결국에 내가 누군지, 내가 왜 이 땅에 머물기를 원했는지 조차 잊고 말았다.


그러나, 긴 치유의 여정이 끝나갈 무렵. 마치 어둠 속에서 작은 불씨 하나가 피어오르듯, 내 안에서 무언가가 다시 깨어났다. 그건 바로 대학 시절의 나였다. 세상을 신뢰하고 사랑했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던, 그 아이가 다시 내 안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 흐릿했던 얼굴이 다시 또렷해졌다. 잊고 있었던 나의 눈빛, 나의 숨결, 나의 온기. 나의 빛이 다시 내 안에 깃들었고, 나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다시 나답게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나에게 남편 껍데기를 쓴 다섯 살 남자아이를 아들 삼아 돌보라 한다. 남편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많아서 나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 후 나는 남편이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자고 마음먹었다. 배우는 속도가 무럭이 보다 더디다. 무럭이는 사랑으로 가르치고 남편에게는 화를 내며 비난하며 가르쳐왔음을 깨닫는다.

나는 요즘 남편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지난날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모두 참회하여 용서받고, 업연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부인과 아들에게 존경받는 화목한 가정의 건강한 가장으로 거듭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면아이 #LMT심리검사

keyword
작가의 이전글4-2화. 내 안의 아이 첫 번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