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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예언의 은사

미래를 보는 구미 이모

by 엄마쌤강민주

-반야심경 독송 영험담 네 번째 이야기-

‘반야심경’ 독송 중 갑자기 책을 펼치면 문자가 흐릿하게 보였고,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반야심경을 읽지 못하게 내 눈을 가리는 존재가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어느 날, 친정집에서 잠시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작은 여자아이를 보았다. 산발한 긴 머리카락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렸다. 그 순간 알았다. ‘너구나! 내 눈을 가리는 귀신이!’

눈을 뜨자, 나는 곧바로 어머니와 구미 이모에게 꿈에서 본 이야기를 전했다. 어머니는 내가 꿈에 보았다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제사상을 차렸다. 구미 이모는 제사상이 차려진 중앙에 앉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 나는 늘 구미 이모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2025년 현재, 이모는 예순일곱의 나이로 일흔을 코앞에 두고 있다. 여자들이 대학에 가는 일이 드물던 시절, 이모는 혼신의 힘을 다해 캠퍼스의 문을 통과했고, 당당히 졸업장을 손에 넣었다.


이모의 키는 170cm, 젊은 시절엔 “모델 같아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또렷했고, 손에 잡히는 책마다 정성을 다해 읽어 내렸다. 빈틈 없이 자신을 가꾸는 태도는, 마치 매일을 특별한 날로 만드는 의식 같았다.


결혼 또한 이모의 선택은 현명했다. 좋은 대학, 탄탄한 커리어, 그리고 따뜻한 마음씨까지 갖춘 이모부는 가족 모두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이모부는 조카인 나에게조차 언제나 다정했고, 그 모습은 어린 내게 ‘든든함’ 그 자체로 다가왔다.


이모가 신혼을 시작한 도시는 구미. 그때부터 나의 입에서는 자연스레 ‘구미 이모’라는 호칭이 흘러나왔다.


어느 날, 이모가 중학생이던 나에게 성경책을 선물해 주었다. 단단한 검정색 표지에 금박으로 박힌 “성경”이라는 글자가 어린 내 눈에는 근엄해 보였다. 이모는 “성경은 베스트셀러야, 종교를 떠나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봐야 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어쩐지 멋져 보여서, 나는 그 무거운 책을 덥석 받아 들고, 구약에서 신약까지 다 읽었다.

아들까지 둘이나 낳은 이모는 모두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모의 시어머니가 특히 이모를 아꼈는데, 그녀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너는 전생에 내 딸이었어.”

시어머니는 이모부에게도 늘 당부했다고 한다.

“내가 죽고 나서도 저 아이한테 잘해줘야 해. 절대 내 말 허투루 듣지 말고.”

그만큼 이모는 사랑을 받았다. 너무도 깊고 따뜻한 방식으로.


하지만 그 사랑은 이모의 삶을 지켜주지 못했다. 1994년, 내가 다리 골절로 수술대에 올랐던 해였다. 어느 날, 가족들 사이에서 이상한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동아 어미(구미 이모)가 좀… 이상해졌대.”

누군가는 말했다. “미쳤다더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어느새 이모는,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살던 집을 홀로 떠나야 했다. 그렇게 이모의 결혼 생활은 이혼으로 마무리되었다. 한때 이모는 가족 중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행복의 중심에 서 있었다. 키 170cm의 늘씬한 외모, 뛰어난 학벌과 지성 그리고 넓은 평수의 집과 이모만 바라보던 든든한 남편. 이 모든 것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이모의 몸은 예전의 날씬함을 잃고 살이 많이 찌기 시작했다. 총기(聰慧)로 반짝이던 눈빛은 점차 흐려졌고, 말투에는 예전의 자신감이 사라졌다.


친정어머니는 이모의 불행에 대해 조용히 말끝을 누르듯 이야기했다.

“그게… 둘째 아들 낳은 기념으로 네 이모부가 차를 사줬거든. 이모가 참 좋아했어. 손수 차를 닦고, 운전석에 앉아서는 싱글벙글하더라. 근데 그 차를 몰고 나갔다가… 큰 사고가 났대.”

어머니의 눈빛이 멀어졌다. 기억 속 먼 풍경을 더듬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머리를 크게 다쳤어. 병원에 실려 가서 며칠이나 의식이 없었는데, 겨우 눈을 떴을 땐… 그전의 이모가 아니더라.”

나는 숨을 삼켰다.


“말이 어눌해졌고, 생각도 자꾸 겉돌았어. 예전엔 얼마나 또박또박, 또렷하게 말하던 사람이었는데… 말하다가 길을 잃듯 멈추곤 했지. 그러다 엉뚱한 말을 툭툭 던졌는데, 그게 또 이상하게 마음을 저리게 했어. 그때는 헛소리 같았지만, 지나고 나면 다 맞는 말이었어.”

어머니는 한참 말이 없다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고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어. 이모 인생이… 거기서 꺾였지.”

말은 간단했지만, 그 안에 스며든 시간은 묵직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산후우울증이었을 거야,” 어떤 이는 안타까움 섞인 목소리로 말했고, “둘째만 낳지 않았어도…” 또 다른 이는 아쉬움에 고개를 저었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와는 달리 둘째를 품에 안은 이후로 이모의 몸과 마음 어딘가가 묘하게 가라앉았다고 했다. 말은 점점 줄어들고, 미소는 어느새 기억 속 작은 조각이 되었다. 산후우울증이라는 이름이 이모의 변화를 설명해 주는 듯했지만, 그 말이이모의 상태에 대해 모든 답을 주지는 못했다.


“신이 벌을 내렸대.” 동네 어귀 낮은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퍼졌다. 어릴 적, 이모는 외할머니가 모셔둔 불상과 향내를 참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교회로 달아났고, 그 선택은 외할머니와 잦은 다툼을 불러왔다.

“신이 자기를 싫어하던 동아 어미를 일부러 골랐대.”

어떤 이는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그보다 더 기이한 소문도 있었다. 이모부 집안에 ‘신’이 깃들어 있었다고 했다. 이모의 시어머니에게 먼저 신이 왔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신이 이모부에게 갔다고 했다. 이모는 집안의 기둥인 남편을 살리기 위해 이모부의 신을 대신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모부 대신 이모가 미쳐버린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이모가 미친 것은 신의 탓이라는 이야기가 어느새 정답인 양 퍼져나갔다. 이모는 그 모든 소문 속에서도 조용히 하루를 견뎌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조금 달랐다. 이모에게 아무에게도 말 못 할 충격적인 사고(어쩌면 나에게만 털어놓은)가 생겼고 이 때문에 이모의 마음 안에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그 틈으로 어둠이 스며들었고, 이모는 끝내 자신만의 세계로 떠나버린 것 같았다.


구미 이모는 그 후로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헛소리와 과격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 면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너에게 귀신이 붙어있어.”라고 말했다. 귀신을 쫓는다며 그 사람을 때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모는 몇 번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그 사이사이에 여러 무속인에게 해결책을 구했다.

그중 한 무속인이 책임지고 이모를 낫게 해주겠다며, 외가 식구들에게 큰소리를 쳤다. 이모는 몇 달 동안 그 무속인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이모를 구원하겠다던 그 무속인은 이모를 굶기고 방 안에 가둬버렸다. 나의 아버지가 우연히 그곳에 들른 날, 창백한 얼굴로 웅크린 이모를 발견했다. 그날부터 이모는 한동안 우리 집에 머물렀다. 내가 다리 수술로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시골집에 내려와 있을 때였다.

이모는 그 시절 자신이 본 것들에 대해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진짜 다 있더라고. 용도 있고, 날개 달린 뱀도 있고… 신도 있고, 사람이 아닌 것들이 정말 다 있어.”

나는 이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모가 어쩌다 이렇게 미쳤는가? 라는 생각으로 슬퍼졌다. 그렇게 구미 이모는 나의 우상에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자가 되었다.


그 후 이모는 어릴 때부터 다니던 교회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조금씩, 아주 천천히, 이모는 예전으로 돌아왔다. 말끝마다 떨림이 있었지만, 눈동자에서 가끔 웃음이 보였다. 마치, 그 긴 어둠 속에서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작은 빛을 찾은 사람처럼. 그렇게 이모는 일상을 찾았다.


이모는 이혼 후 이모부에게 받은 위자료로 고향에 집을 구매했다. 이모 집 바로 옆에는 큰 외삼촌의 집이 있었다. 이모는 버스도 안 들어오는 시골집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조용히 살아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바람처럼 흘렀고, 겉보기엔 모든 것이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그 평온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 날, 이모는 외할머니에게 낯선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집을 팔기로 했어.” 이모의 말에 외할머니는 입술을 다물었다. 그날 이후 외할머니는 점점 기운을 잃어갔다. 그리고 집의 매매계약서가 체결된 다음 날 새벽, 외할머니는 아주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때부터 우리 집은 물론 외가 쪽이 서서히 우환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마치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집안에 깃든 듯, 서서히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구미 이모 역시 겨우 찾은 일상의 평온함이 무너졌다. 그럴수록 그녀는 하느님께 더 매달렸다. 매일같이 기도하며,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모는 기도 중에 갑자기 눈을 뜨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래가 보여… .”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결국 함께 무속인을 찾아갔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모가 기도 중 본 광경이 무속인의 입에서 하나하나 정확히 되짚어졌다. 단순한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정밀하고 생생한 일치였다. 그 일이 한 번이 아니었다. 이모가 기도 중 본 장면들, 그것들이 무속인의 말과 거듭 겹쳤다. 기이한 일의 반복은 우리 모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믿고 싶지 않은 것을 믿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나는 그 모든 혼란 속에서 침묵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당시 신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 곁에, 삶의 틈을 따라 고요히 스쳐 지나가는 어떤 기척.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 바람도 아니고,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정교하고 낯익은 결이었다.

그래서 참회문과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있었는데 내가 꿈에서 본 사건을 이틀 혹은 사흘 뒤, 이모가 기도 중 보았다며 그 장면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꿈에 보이는 일들은 안 좋은 일이 대부분이어서 나는 두렵고 불안했다.


마치 오래전, 누군가에 의해 쓰인 각본을 우리가 지금 살아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 집안에 반복되던 그 슬픔의 궤적들조차, 정해진 길을 따라 흘러온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런 일들을 겪은 뒤, 나는 더 이상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이루어졌다고 쉽게 말하지 않게 되었다. 신이 없다고 단정하지 않았고, 이상하다고만 여겼던 구미 이모의 말과 행동 또한 어느 순간, 또 다른 진실의 흔적처럼 다가왔다.


만약 전생이라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그토록 집요한 비극이 외가에만 머물 수 있었을까? 그래서 이제는 보이지 않는 인연도, 스쳐 가는 운명의 숨결도, 삶을 이끄는 조용한 손길도 모두 믿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늘 조심스레 당부합니다.

“하늘은 다 알고 있습니다. 약자에게 함부로 하지 마세요. 10선(善)을 지키며 사세요. 그 선함이, 언젠가 당신을 지켜줄 테니까요.”


화분에 키우는 할미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이름은 가명입니다.


#반야심경 #예언 #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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