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기다림
죽고 싶었던 시간이 있었다. 숨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이던 날들이었다. 마음은 바스러졌고, 정신은 병들어갔다. 누구는 그걸 우울이라 부를 테고 어떤 이는 신병이라 할 것이다. 누군가는 미쳤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꿈에 나타난 선녀는 그것을 ‘정신암’이라 속삭였다.
나는 내 증상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삭였다. 남들이 내 증상을 뭐라 부르던 그 시절의 나는 하루하루가 살아있는 지옥이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들었다.
어둠은 나의 적이었다. 밤이 되면, 꿈은 나를 낯선 세계로 끌고 갔다. 현실과 닮았지만, 분명 현실이 아닌 곳. 그곳에 오래 머무르면 내 정신이 현실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항상 따라붙었다. 그럴 때마다 집에서 키우는 물고기를 보았다. 작은 컵에 담긴 파란 베타 한 마리. 나는 꿈속에서 그 물고기가 보이면 무조건 그를 향해 몸을 날렸고 그러면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작은 베타 한 마리가 나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나는 눈에 띄는 연못에 몸을 던졌다. 도착한 곳은 흰옷을 입은 이들이 하늘을 우러르며 기도하는 마을이었다. 그곳은 평화로웠지만, 나는 그들의 선함보다, 무럭이가 있는 현실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더 컸다.
그런 나날들이었다. 악몽으로 잠에서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는 일들이 빈번했다. 날이 밝아도 몸은 지쳤고, 마음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죽음. 그 단어는 내 입속에서 되뇌지 않아도 이미 숨결처럼 내 곁에 있었다. 언제든 다가올 것처럼.
그러던 어느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시내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보는, 낯익은 번호의 버스가 천천히 내 앞에 멈춰 섰다. 어린 시절 고향 동네에 오가던 버스였다. 어릴 적 고향에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밖에 다니지 않았다. 한번 놓치면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가끔, 아주 드물게, 기다림 없이 버스를 바로 탈 수 있는 날이 있었다. 그럴 땐 왠지 모르게 ‘오늘 하루는 괜찮을 것 같다’라는 믿음이 생기곤 했다. 그날 꿈속에서의 나는 그런 기분이었다. 아무런 의심도 망설임도 없이 반가운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몇몇 사람들이 나처럼 무표정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고, 유리창 너머로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흘러갔다. 그런데 잠시 후 나는 고향 동네에는 없는 오래된 철물점과 이름 모를 언덕과 낯선 건물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점점 뚜렷해졌다. 나는 애써 내가 버스를 타던 상황과 그때 본 버스의 번호를 떠올렸다. 분명히 ‘ㅇㅇ번’이었다. 내가 기억하던, 익숙한 그 숫자였다.
‘… 내가 잘못 본 걸까?’
나는 버스 안을 둘러봤다. 하지만 차량번호는 어디에도 없었다. 시트 위에도, 천장에도, 창문에도. 아무리 찾아봐도 버스 번호를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 길을 잃는 사람이었다. 지도 위의 선들이 아무리 친절하게 말을 걸어도, 내 눈엔 그저 복잡한 미로처럼만 보였다. 익숙하다고 믿었던 거리에서도, 나는 늘 길을 잃었다.
그래서였을까. 이 버스를 타고도 마음 한구석엔 조심스러운 불안이 밀려왔다. 혹시, 또 이 버스가 나를 낯선 곳으로 데려가는 건 아닐까? 길치인 나는 마치 기억의 지도조차 미로로 엉켜버린 세계를 살아간다. 수없이 오가던 골목도, 어느 날은 낯선 얼굴을 하고 나를 기다린다. 늘 그 자리에 있던 나무도, 건물도 어떤 날은 전혀 생소하게 느껴진다. 길은 나에게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언제나 조심스러운 감정의 굴곡, 예상치 못한 전환점이었다.
늘 같은 길을 걷고서도 매번 다른 세계를 처음 마주하는 것처럼 나는 당황하고, 주춤거리고, 길을 헤맸다. 그 시간들은 겉으로는 어설프고 우스워 보였겠지만, 이로 인해 내 안에는 언제나 깊은 불안과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때, 버스의 거울 너머로 기사의 눈빛이 나를 스쳤다. 무표정하고 냉정한 눈. 아무 말 없이, 그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이 버스에 나는 더 이상 머물러선 안 된다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버스에서는 누구도 내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타기만 했다. 나는 겁이 났다. 낯선 거리에서, 홀로 버스에서 내린다는 것은 길을 잃는 나에게는 죽음처럼 아득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았다. 기사의 눈치를 보며, 내 안에 이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그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괜찮아, 아마 집으로 가는 방향이 맞을 거야. 아니면 반대 방향에서 탔거나. 탈 때 분명히 번호 확인했잖아.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거라면 종점에서 다시 돌아 나오자’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버스는 조용히 종점에 멈췄다. 승객들은 하나둘씩 일어나 말없이 차례를 따라 내렸다. 그들의 흐름을 좇아 나 역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문이 무심히 ‘퍽’ 소리를 내며 닫혔다.
잠시 멈췄던 버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처음 본 것과 비슷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똑같은 길을 돌아가는 듯했으나, 풍경 너머에 퍼지는 공기, 색감, 온도, 모든 것이 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내 눈은 경계라도 하듯 크게 열렸다. 불안과 혼란이 뒤섞여 시선을 갈 곳 없이 떠돌았다. 입술은 굳게 닫힌 채 떨렸고, 목에는 마른침조차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때였다. 앞자리에 앉은 버스 기사가, 백미러 너머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을 구하기 위해, 천 년 동안 이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그 말은 거친 바람처럼 내 귀를 스쳤다. 그 순간, 시간도 공간도 의미를 잃었다. 모든 감각이 그 한마디에 붙들렸다. 나는 얼어붙은 듯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어떤 말도, 어떤 움직임도 따라오지 못했다. 의식이 사그라들듯 천천히 꺼져갔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꿈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현실보다도 선명한 꿈. 숨결까지 기억날 만큼 생생한 꿈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자주 그를 떠올린다. 그의 이름도 모른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말만은 여전히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린다.
“천 년 동안 이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만약 그날, 내가 마지막 정류장에서 내렸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 더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죽고 싶을 때마다 그를 떠올렸다. ‘그는 왜 나를 구하기 위해 천 년을 기다렸을까? 나 하나를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을 그 자리에 머무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꿈에서는 수없이 죽어 나가면서도, 현실에서는 살아남았다. 그의 희생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그의 천 년을 내가 증명해야만 했다. 그는 나를 위해 천 년을 걸었는데 나는 100년도 안 되는 이번 생을 버티지 못한다면 나중에 그의 앞에서 뭐라 변명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만이 그의 시간을 지킬 수 있는 방법 같았다.
부처님께도 기도했다. 제정신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내 손으로 나를 해치지 않게 해달라고. 그를 위해. 그의 천 년이 헛되지 않도록. 그리고 오늘을 살아있는 나는, 그를 위해 기도했다. 혹여 저승버스를 돌려 나를 살린 그가, 그로 인해 벌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염려 때문이었다.
지금도, 인생의 시련이 몰아칠 때면 주저앉아 흐느낀다. 하지만 무너질지언정, 다시 일어난다. 그의 천 년이 허망해지지 않도록. 그것이 그가 나에게 지운 책임이었다.
이런 경험은 나에게 사람들에게 당부하게 한다.
“당신이 살아있는 오늘은 어쩌면, 누군가의 천 년 위에 놓인 기적일지 모릅니다. 그러니 부디, 죽지 말고 살아남아 그의 오랜 기다림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그 사랑이, 그 인내가, 당신 안에서 계속 살아나가게 해 주세요. 그것이 오늘을 살아있는 당신의 책임입니다.”
이 이미지는 OpenAI의 DALL·E 모델로 제작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