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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자식을 잃는다는 건

by 엄마쌤강민주

2006년 즈음이었다. 아마도 봄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아직은 서늘했지만, 어느새 햇살이 피부 위에 살며시 내려앉기 시작하던, 모든 것이 조금씩 따뜻해지려던 그 무렵.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유독 싸늘하게 얼어붙었던 시절. 막내 이모의 외동아들, 사랑이가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떠났다.


나는 2002년부터 이모들과 한동네에 살았다. 큰일이 없어도 매일 얼굴을 봤고, 대부분 함께 밥을 먹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식탁에 찬이 오르고, 숟가락 소리와 자잘한 웃음소리가 섞이던 풍경.

그 평범한 일상은 구미 이모가 입을 열자 균열이 생겼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실린 말의 무게 때문에 오히려 더 크게 울렸다.

“사랑이는 곧 죽을 거야. 그 애한테 이제 정 떼. 그 정성… 보고에게 쏟아.”


순간, 식당 안의 모든 기운이 멎었다. 숟가락이 멈추고, 숨소리마저 가라앉았다. 막내 이모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었다. 입술을 꾹 다문 얼굴엔 수많은 말이 맴돌았지만, 그녀가 꺼낸 말은 아주 짧고도 조용했다.

“언니가… 얼마나 자식이 그리우면 그런 말을 하겠어.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내 자식한테는…”


사랑이는 막내 이모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그 시절, 사랑이의 삶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병원과 집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이어졌고, 매일의 숨결은 기적처럼 소중했다. 막내 이모는 그 하루하루를 손끝으로 붙잡고 살았다. 침대 머리맡에서 아이의 미세한 숨을 세며, 잠들기 전엔 기도를 올렸다.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그리고… 보고는 구미 이모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녀는 이혼 후 아이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몇 해를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날들이 이어졌고, 그 그리움은 그녀를 사무치게 했다.


우리는 구미 이모의 잔인한 말이 자식을 보고 싶어 하는 어미의 마음이라 생각하며 그 말이 주는 불길함을 애써 떨치려 했다. 그러나… 그 말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그로부터 멀지 않은 어느 날, 사랑이가 입원한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사랑이가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사랑이는 예쁘고 키가 큰 막내 이모를 닮아 눈이 또렷하게 잘생긴 데다가 또래보다 키가 큰 아이였다. 머리도 좋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이모부를 빼닮아, 뭐든 빨리 알아채고 말귀도 기가 막히게 알아듣던 아이. 이모는 그 아이를 이름 대신 사랑이라 불렀다. 그는 외동아들로 부모의 온 마음을 받아, 귀하게, 따뜻하게 자랐다.


그런 사랑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앞 건널목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어린아이 몸이 차에 부딪혀 하늘로 붕 뜨는 모습을 목격자들은 또렷이 기억했다.

“하늘을 날듯 떠올랐다가, 퍽 하고 떨어졌어요.”

그 순간을 본 사람들은 기적이라도 본 듯 말했다. 겉으론 큰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기 때문이다. 다들 “하늘이 도왔다”라고 했고, 이모도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조짐이 찾아왔다. 사랑이의 기억은 흐릿해지고, 말투는 어딘가 어긋났으며, 손짓과 걸음걸이조차 낯설어졌다. 여러 병원을 거친 끝에 의사들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뇌 손상이라는, 듣는 이를 얼어붙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날 이후, 이모는 자신이 가진 것들을 세상에 아낌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반지, 팔찌, 목걸이… 그 모든 것들을 조용히, 아무렇지 않게 건넸다. 예전에 어머니는 막내 이모에게 다녀온 날이면 명품 옷과 금붙이를 휘감고 오셨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어느 동생이 언니한테 그렇게 퍼주냐?” 하지만 결혼 후, 가까이에서 막내 이모를 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정말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것을, 가장 아끼는 것을 망설임 없이 내어주는 사람. 어떤 계산도 없이, 그냥 다 주는 사람이었다.

나물을 파는 할머니를 보면 이모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먹지도 않는 나물을 죄다 사서, 구미 이모에게 건넸다. 나는 어느 날 참지 못하고 따져 물었다.

“이모는 요리도 안 하면서, 그걸 왜 사요?”


이모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엄마 생각나서. 우리 엄마도 예전에 중랑교 다리 위에서 나물 팔았거든. 그리고… 내가 저런 분들한테 잘해야 하늘이 우리 사랑이도 잘 봐줄 것 아냐.”


그 말엔, 이모의 깊은 바람이 담겨 있었다. 나물을 사는 그 손길, 금붙이를 풀어내는 그 마음속엔 단 하나의 기도가 숨겨져 있었다.

“내가 복을 지을 테니, 제발 우리 사랑이만은 살려주세요.”


그 절박한 기도가 온갖 형태의 ‘내어줌’이 되어 세상으로 뻗어나갔다. 막내 이모는 구미 이모의 권유로 교회도 다녔다. 그녀는 신을 향해 두 손을 모으며,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막내 이모는 뒤늦게 가해 차량을 고소했다. 몇 년을 재판에 매달렸고, 결국 승소했다. 하지만 그 승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사랑이는 오랫동안 병원과 집을 오가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사랑이가 세상을 떠난 건 오래전 일이지만, 그 시절의 기억은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에 오래된 사진처럼 또렷하게 남아 있다. 이모는 장례식 내내 멀쩡해 보였다. 얼굴에 감정이라곤 없는 듯, 또박또박 필요한 일을 해냈다. 사람들은 ‘참 강한 사람’이라며 조용히 감탄했지만, 나는 알았다. 이미 그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아마도 아이의 뇌 손상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모의 마음은 천천히 금이 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마음은 완전히 부서졌다.


사랑이의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모가 병원에 있다는 말에 문병 갔을 때였다. 병실에서 조용히 흐느끼던 막내 이모의 어깨가 얼마나 작아 보였는지, 나는 지금도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목 놓아 울지도 못하고, 꼭 참고 있던 그 울음은 오히려 더 깊은 슬픔으로 병실 안을 메웠다.


막내 이모는 부자였다. 성인이 된 내가 세상의 부를 가늠하던 기준은 언제나 막내 이모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녀가 가진 부동산만 스무 채에 가까웠다. 몇몇은 친정 식구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인 관리는 모두 이모의 몫이었다.


이사철만 되면 이모의 통장엔 전세보증금이 몇천만 원씩 들어왔고, 숫자놀음 같던 그 흐름 속에서 이모는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돈을 다뤘다. 그녀가 들고 다니던 가방은 늘 무거워 보였다. 겉보기엔 평범한 가죽 가방이었지만, 그 안엔 이모의 세계가 있었다. 빼곡한 숫자가 가득 적힌 수첩, 오래된 계약서들, 은행 통장 여러 개, 도장이 촘촘히 꽂힌 파우치. 그 하나하나가 돈의 흐름을 증명했고, 이모의 권력을 보여주는 증표 같았다.

이모의 집 안방 한쪽 벽엔 묵직한 금고가 자리하고 있었다. 비밀번호를 누를 때면 삐 소리가 세 번 나고, 덜컥 열렸다, 그 안에서 황금빛 팔찌와 목걸이, 반짝이는 반지와 귀걸이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보물섬이라도 된 듯, 나는 그 앞에서 숨을 죽이곤 했다. 모든 것은 이모의 손에 있었고, 그녀는 그것들을 흐트러짐 없이, 놀라울 만큼 효율적으로 관리해 왔다.


그리고 이모는 나에게, 언제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존재였다. 내 가정을 꾸리고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나에게 이모는 단지 ‘부자’ 이상의 의미였다. 그녀는 나에게 부동산 투자하는 법을 가르쳤고 자신이 이룬 부를 나도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금팔찌를 풀어 내게 건네면서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귀한 존재인지를 남편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하지만 사랑이가 떠난 이후, 이모는 모든 ‘현실’과의 끈을 잘라냈다. 사람들은 조심스레, 또 걱정스럽게 말했다.

“정리를 좀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관리도 해야 하고, 처리할 일도 많아요.”


그럴 때마다 이모는 입꼬리를 어색하게 비틀며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을 볼 때마다 내 등줄기는 싸늘해졌다. 이모는 어김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지들은 자식 살아 있으면서 자식 잃은 어미한테 뭘 그렇게 바라는 게 많아? 그런 놈들은 나라가 다 잡아갈 거야. 나는 자식 잃은 어미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나라가 나를 보호해 줄 거야.”


더 이상 현실이 그녀의 삶에 의미가 없다는 듯, 이모는 삶에서 등을 돌렸다. 그녀는 세상과의 문을 닫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조용한 방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 방 안에는 금붙이도, 부동산도, 전화벨 소리도 없었다. 오직 하나, 사랑이만 존재했다.


세상은, 자식 잃은 사람에게도 잔인했다. 이모가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관리되지 못한 부동산들은 하나둘씩 문제를 일으켰고, 그에 얽힌 사람들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다. 이모부는 그동안 회사에서 일만 했지 이모의 부동산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무엇보다 이모부도 외동아들을 잃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은 누군가가 이모의 집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이렇게 방치해서 어떻게 하라고! 당장 나와”

어떤 날은 친척이 찾아와 울면서 말했다.

“너만 믿었는데, 내 아파트, 내 돈 어떻게 할 거야?”


열리지 않는 현관문 대신 창을 깨고 집 안으로 들어가 이모를 만나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깨진 유리창에 찔려 피를 많이 흘렸고 그럼에도 문밖으로 나와보지 않는 이모를 저주했다. 이모의 집 앞은 피바다가 되었다. 그럴수록 이모는 더욱 집안에 꽁꽁 숨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죽는다는 건 단지 육신이 멈추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는, 남은 생을 ‘살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해마다 영가등을 다는데 마음공부가 깊어질수록 구해주고 싶은 인연 영가들이 많습니다. "제자 강민주 인연있는 유주무주 고혼되신 영가들의 업장 소멸과 극락왕생 발원." 남편과 아들 앞으로도 이렇게 등을 답니다. 가끔 살면서 인연있던 가족아닌 안타까운 이들을 위해서도 등을 다는데, 올해는 제가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인연맺었던 한 선생님 영가를 위해 등을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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