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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자식 잃은 어미에게도 세상은 잔인했다.

by 엄마쌤강민주

2006년, 외동아들 ‘사랑이’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막내 이모는 모든 현실과의 끈을 스스로 끊어냈다. 누군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말할 때마다 이모는 입꼬리를 어색하게 일그러뜨리며 냉소적인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차디찼다. 마치 사람을 통째로 얼어붙게 만드는 겨울바람처럼.


“지들은 자식 살아 있으면서…, 나는 자식 잃은 어미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나라가 나를 보호해 줄 거야.”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 달리 세상은 그저 잔인했다. 마음의 병으로 병상에 누운 이모를 향해 몰려든 것은 관리되지 못한 부동산들에서 일어난 문제들, 그에 따라 터져 나온 사람들의 비난과 저주. 심지어는 물리적인 폭력까지. 그 모든 공격이 이모를 향해 쏟아졌다.


나는 그 상황 앞에서 무력했다. 너무 화가 났고, 너무 아팠고, 너무 숨이 막혔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받은 ‘배신감’이 가장 참기 힘들었다.


그들은 이모가 건넨 금목걸이와 금팔찌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사람들이다. 이모가 건넸던 돈으로 많은 것을 누렸던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사랑이가 떠나고 이모가 무너진 모습이 되자 하나둘씩 조용히 사라졌다. 이모를 피하고, 외면하고, 마치 그녀를 전염병이 도는 ‘폐허’ 속 거지처럼 대했다.


내가 그런 사람들 속에 있다는 사실이, 같은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들과 엮여 있다는 사실이, 속을 뜯어내듯 나를 아프게 했다.


그들은 다들 아직 자식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식이 웃으며 집에 들어오고, 별다른 걱정 없이 잠들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하나뿐인 자식을 잃고 세상과 단절된 막내 이모에게, 그녀가 부동산을 관리하지 않아서 입은 재산상의 피해에 대해 끊임없이 변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모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상황을 바로잡지 않는다고, 정상이 아니라고 손가락질했다.


‘정상? 과연 누가 그런 슬픔 앞에서 정상이 될 수 있을까? 자식을 잃고도 멀쩡하다면 그게 비정상이 아닐까?’


사랑이가 떠난 후, 막내 이모는 천천히 모든 것을 잃어갔다. 그 많던 재산도, 살던 아파트도, 세상에 대한 신뢰도. 그녀는 결국 작은 빌라로 이사했다. 그곳에 사랑이가 병상에 있을 때부터 함께했던 구미 이모도 따라갔다.

그러나 구미 이모가, 사랑이가 곧 죽을 거라는 말을 저주처럼 내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이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갔다.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늘 미세하게 어긋나 있었다.


어느 날, 전화벨이 다급하게 울렸다. 막내 이모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와. 언니가 미쳐서 날뛰고 있어. 병원 사람들 불렀으니까 네가 와서 도와줘.”

숨이 멎을 듯 달려갔다. 현관문을 열자, 막내 이모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나한테 자식 보고 싶다고 한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어?

자식이 마트에서 사는 물건이야?

마트에서 판다면, 아무리 비싸도 내가 사다 줄 수 있지!

근데 나보고 어쩌라고?

자식 보고 싶다고 울고 지랄이야!”


그녀의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고, 목소리는 갈라지고 있었다. 부엌 식탁엔 엎질러진 물컵이 하나 놓여 있었고, 집 안은 아픔이 튄 잔해들로 가득했다. 구미 이모는 집 안 어딘가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그날, 집 안으로 들어선 낯선 사람들의 발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그들은 막내 이모가 부른 정신병원 관계자들이었다. 그들은 내게 입원 동의서를 건넸다. 펜을 든 손이 떨렸다. 이름을 적는 동안,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 듯 내 죄도 천천히 마음에 스며들었다.


서명을 마쳤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피를 토했다. 입원 동의서에 쓰인 내 이름 한 줄이 내 안의 어떤 순결한 것을 산산이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단순한 무너짐이 아니라, 순수가 뿌리째 뽑히는 감각이었다. 나의 순결이 나의 순수가 뿌리째 뽑히는 고통은 무감각하게 찾아왔지만 이내 나를 잠식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내가 나쁘다고 생각했던 가족들과 ‘공범’이 되었다는 걸, 너무도 선명하게 자각했다.


우리는 가족이었다. 그 이름만으로 서로를 지켜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신념을 비웃듯 무너졌다. 평소엔 웃으며 서로를 위하던 이들이, 막내 이모가 자식을 잃고 삶의 끝자락에 매달린 순간부터 차갑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제, 그들로부터 버려진 막내 이모는 자신보다 더 부서진 언니를 정신병원에 보내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일에, 나를 끌어들였다. 나는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두려웠다. 나 또한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말을 듣는 구미 이모를 혼자 감당할 용기가 없었다. 결국 나는 막내 이모와 손을 잡고, 구미 이모를 병원에 보냈다.


그 서명은 단순한 동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심판이었다. 구미 이모를 향한,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한. 나는 그날 이후로 막내 이모를 피했다. 그녀가 미웠다. 아니, 미워해야만 했다. 그래야 내가 덜 미워질 것 같았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 순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너무 분명했다. 그 서명은 내 손으로 했다.


훗날, 나는 구미 이모를 병원으로 보내던 막내 이모 얼굴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입술을 앙다문 채, 눈빛만으로도 많은 말을 삼키고 있던 그녀를. 그녀는 말없이 메마른 눈빛으로 언니를 바라보았다.


구미 이모는 둘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 그 후 아이들을 본 건 단 한 번 뿐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그것은 자식을 못 보는 어미로서 당연하게 느끼는 그리움이자 안타까움이고 슬픔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동안 언니의 아픔에 누구보다 공감하고 언니를 연민했던 막내 이모였다. 그러나 정신병원 관계자를 부른 그날의 막내 이모는 평소와 달랐다.


나는 조용히 그날의 진실을 깨닫는다.

‘막내 이모는 구미 이모의 그런 말에, 그런 눈물에, 견딜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던 거구나!’


구미 이모의 아이들은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었다. 숨을 쉬고 있었고, 자라고 있었고, 어쩌면 마음만 먹으면 볼 수도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막내 이모의 사랑이는, 더는 이 세상에 없었다. 그 아이는 죽었다. 땅속에 묻혔다. 다시는, 어떤 방식으로도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죽은 아이의 상실을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 무게가, 그 텅 빈자리가, 그녀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밤에 눈을 감을 때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온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찢긴 자리는 아물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언니가 “애들이 보고 싶어…” 하며 흐느낄 때, 막내 이모는 숨이 막혔을 것이다. 그 말 한마디가, 그 눈물이, 자신이 애써 눌러왔던 분노를 끌어올렸다. 언니의 슬픔은, 도리어 막내 이모에게는 일종의 사치처럼 느껴졌다. 볼 수 있는 아이, 살아 있는 아이를 그리워하며 흘리는 눈물은, 그녀의 절망 앞에서 너무도 가벼웠다.


그녀는 언니를 안타깝게 여겼던 지난 시간들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자신은 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인데, 왜 늘 도와주는 입장이었을까? 죽은 아이를 가슴에 묻은 사람은 자기인데, 왜 언니의 눈물에 언제나 조심해야 했을까? 왜 내가 다른 사람들을 돌보았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나의 상처를 돌보지 않는 것일까?


그녀는 화가 났다. 언니에게, 자신에게, 그리고 세상에. 살아 있는 아이가 있는 사람이, 죽은 아이를 가슴에 묻은 사람 앞에서 그렇게 울 수 있다는 현실에.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툭 하고 끊어졌을 것이다.


그 비극적인 사건으로부터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시간은 많은 것을 무디게 만들지만, 때때로 더 또렷하게 만든다.


막내 이모는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한 번도 남을 원망하는 법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조차,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는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원망과 저주의 말로 마음을 쏟아냈고, 따뜻하던 눈빛은 차가운 절망으로 변해갔다. 사람은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잃으면 무너진다.


지금의 나는 안다. 그때 막내 이모를 향한 내 분노가 얼마나 비겁한 것이었는지를. 그녀는 폐허가 아니었다. 무너진 사람이 아니라, 그저 누구보다 깊은 상처를 품은 채 그 상처 속에서도 살아내고 있었던 사람일 뿐이다.


나도 언젠가 꿈에서 내 아이를 잃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꿈에서 나는 무너졌고, 오열했다. 아이의 작고 따뜻한 몸을 품에 안고 울부짖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 슬픔은 현실 같았고, 그래서 더욱 절망적이었다.


그래서 막내 이모가 더 아프다. 그리고 너무나 미안하다. 그녀는 아직도 가족들과 거리를 두며 살아간다. 그녀에게 다시 가족들과 의지하고 살라고 조심스레 권한 적이 있다. 이모는 가족들이 무섭다며 거절했다. 이모는 지금껏 가족과 거리를 두고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만 붙든 채 조심스레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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