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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내 손으로 이모를 정신 병원에

by 엄마쌤강민주

결혼을 준비하며 나는 여러 문제들을 고려한 끝에 인천에 둥지를 틀기로 했다.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남편을 배려하고, 경제적으로 서울보다 부담되지 않는 곳. 그렇게 선택한 우리 부부의 첫 보금자리는 작전역 근처, 이모들이 살던 동네였다.


내가 처음 인천에 갔을 때, 구미 이모와 막내 이모는 각자의 집에서 따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소상의 구분일 뿐, 둘은 아침부터 밤까지 붙어 다니며 하루를 공유했다. 늘 함께였기에, 따로 살고 있다는 사실은 무색했다.


그러다 어느 날, 구미 이모는 아예 짐을 싸서 막내 이모 집으로 들어갔다. 막내 이모의 외동아들 사랑이는 교통사고 이후로 몸이 많이 상해 있었다. 성장할수록 사랑이를 혼자 돌보기 힘들었던 막내 이모는 곁에 구미 이모가 있어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위안이었다.

하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구미 이모가, 사랑이가 곧 죽을 거라는 말을 내뱉었다. 마치 저주처럼. 그리고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이는 세상을 떠났다.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갔다.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늘 미세하게 어긋나 있었다.


2006년의 어느 날, 전화벨이 급히 울렸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막내 이모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떨리고, 거칠고, 절박했다.

“빨리 와. 언니가… 미쳐서 날뛰고 있어. 병원 사람들 불렀으니까, 네가 와서 좀 도와줘.”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뛰어 도착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막내 이모가 헝클어진 머리칼과 거칠게 몰아쉬는 숨을 안고 소리쳤다.

“나보고 어쩌라고? 자식 보고 싶다고 한다고 해서 내가 뭘 어쩌라고! 자식이 마트에서 사는 물건이야? 마트에 있으면, 아무리 비싸도 내가 사다 줬겠지! 근데 자식이 없는데, 내가 뭘 어째야 되냐고! 왜 나한테 울고불고 난리야!”


그녀의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고, 목소리는 가늘게 갈라졌다. 부엌 식탁 위엔 물이 엎질러진 컵 하나가 무력하게 놓여 있었고, 집 안은 전쟁터처럼 엉망이었다. 구미 이모는 집 안 어딘가에서 짐승처럼 날카로운 울음을 토하고 있었다.


잠시 후 도착한 병원 직원들은 구미 이모를 강제 입원시키려면 가족 두 사람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바로 그 가족이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의 온몸은 도망치고 싶다는 본능에 휩싸였다. 이 모든 상황에서 멀어지고만 싶었다.

내가 망설이자, 막내 이모가 똑바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럼 네가 언니 데려가. 네가 데려가서 돌봐.”


나는 결혼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나는 그 순간 막내 이모의 단호한 눈빛에 압도당했다. 주저함은 무기력으로 변했고, 결국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쉰 뒤 사인란에 펜을 댔다. 내 이름 석 자가 또렷이 종이에 새겨졌고, 그 글씨가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병원 사람들은 구미 이모를 제압했다. 그녀는 발버둥 치며 울부짖었다. 마치 목줄이 채워진 짐승처럼,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우리를 향해 악을 썼다.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우리는 함께 공주로 향했다.

구미 이모는 차 안에서도 쉬지 않고 우리를 저주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막내 이모의 눈은 말라붙어 있었다. 나는 죄책감과 연민,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허함 속에 차창 너머로 흐르는 풍경만 뚫어져라 보았다.


공주 정신병원. 과거에도 입원 전력이 있던 구미 이모였기에 입원 절차는 놀랍도록 간단하게 끝났다.

돌아오는 길, 차 안은 무서울 만큼 조용했다. 막내 이모는 창문에 맺힌 작은 물방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 곁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붉은 저녁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 아래, 내 마음도 핏물처럼 물들어갔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막내 이모를 피했다.


며칠 뒤, 햇살이 느긋하게 퍼지던 어느 오후.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아버지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분노와 불안이 뒤엉켜 거칠게 치솟았다.

“네 이모는 미친 게 아니야. 신병(神病)인데, 너는 왜 정신병원에 집어넣은 거냐!”

그 한마디가 뇌리 깊숙이 박혔다. 내 가슴속에 고요히 스며들었던 죄책감은 그 순간, 다시 거센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곧장 공주로 달려갔다. 그리고 구미 이모를 정신병원에서 데려와 고향 시골집에 머물게 했다.


그 후로 한동안,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용한 밤이면 어김없이 과거의 잔영이 어둠 속을 맴돌았다. 이불을 덮고 눈을 감으면, 구미 이모의 울부짖음이 벽 너머로 스며들 듯 들려왔다. 내가 사인한 그 종이 한 장이, 마치 칼처럼 내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기억은 더 깊은 곳으로 흐르고 있었다. 1995년, 대학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친구가 점집에 가고 싶다며 나를 불렀다. 그곳에서 친구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와 내가 숲길을 걷고 있었는데, 허공에서 무당 옷이 날아와서 친구를 덮쳤다고 했다. 친구는 “꼭, 옷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 같았어.”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을 마치자, 갑자기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왜 하필 나였을까? 왜 네가 아닌 내가…?”


그 순간, 내 안의 시간이 멈춘 듯 얼어붙었다. 그때였다. 무속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낮지만 단단한 목소리였다.

“쟤(나)는 조상이 엄청나게 공들여 이 땅에 보낸 자손이야. 조상이 쟤를 얼마나 예뻐하는데, 쟤를 무당 만들겠어? 절대 안 만들지.”


그 말을 듣고 있는 내내,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구미 이모는 결혼하고 10년 즈음부터 신에게 시달리기 시작했었다. 그 사실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도 결혼하고 10년이 지나면… 이모처럼 신의 손에 휘둘리게 되겠지.’

그 생각은 조용히 일렁이며 내 마음속 호수에 돌을 던졌다. 물살은 잦아들지 않고 점점 더 커지는 파문이 되어 퍼져나갔다.


2008년, 다태아 유산을 겪은 후에도 그 예감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 나면, 신에게 본격적으로 시달릴지도 몰라.’

그 생각엔 논리도, 증거도 없었다. 하지만 예감은 예고처럼 확고했다.

나는 2002년에 결혼했고, 2009년 무럭이를 낳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결혼 10년을 채워가던 그 무렵. 그 예감은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모든 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대본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갔다.


나의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올 것이 왔다.”

그 말은 소름처럼, 신음처럼, 깊고 낮게 내 안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이모를 내 손으로 정신병원으로 보낸 경험이 있어 죽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도 가족들에게 나의 상태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았다. 그저 부처님께 의지했다. 매일 새벽 ‘생활 속의 반야심경’ 269페이지를 전부 독송했다. 나중엔 금강경, 지장경, 관음경 등등 닥치는 대로 불경을 독송했다. 광명진언도 하루 3,000 독씩 했다. 지난날의 과오가 떠오를 때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절을 올리고 참회문을 중얼거렸다. 십선(十善)을 지키며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고기도 끊었다. 내가 천도재(薦度齋)를 지낸 경험은 지금 수십 편의 글감이 되었다. 그만큼 나는 업을 녹이기 위해 수많은 천도재를 지냈다. 그 모든 수행과 기도, 참회가 모여 업을 녹였고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마음공부가 깊어질수록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지금 내 삶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내 생각 하나, 감정 하나, 예상치 못한 사건 하나까지도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업(業)의 실타래 속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나를 이끌고 있었고, 그 길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에 그려져 있던 운명의 설계도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외가에 드리운 비극도 그저 안타까운 우연이라 여겼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믿으며 넘기려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비극 앞에, 그것이 단순한 사고는 아니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고통의 시작이 외할머니의 극단적인 선택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겼다. 그러한 믿음이 오래도록 내 마음을 지배했다.


그러나 외할머니의 천도재를 지내던 날, 내 마음은 조용히 바뀌었다. 그녀의 삶과 죽음조차도 이번 생의 문제가 아니라,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깊은 인연과 업의 무게 속에서 비롯된 것임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운명의 흐름과의 오랜 싸움 끝에 맞이한 고요한 결말이었다.

외가 식구들은 참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베풀기를 좋아하고, 남을 돕는 일을 마다하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때로는 너무 선해서 상처받기 쉬운,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왜 하나둘씩 잔혹한 운명의 칼날에 쓰러져야만 했을까?


나는 그 답이 이번 생의 잘못이 아닌, 전생에 남겨진 업의 흐름 속에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 고통은 단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고, 나 또한 그 흐름의 일부로 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커다란 비극이 삶의 문턱을 넘어오기 전, 나는 알 수 없는 불안에 잠기곤 했다. 마음속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주 미세한 경고음이 울렸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감각은 분명히 존재했다.

지금에 와서야 알 것 같다. 그 모든 낯선 느낌들은, 내가 이 땅에 오기 전 스스로 선택한 길을 어렴풋이 기억해 내는 순간들이었음을. 풀지 못한 전생의 매듭, 끝내지 못한 오래된 숙제를 풀기 위해 나는 이 삶을 선택했고, 이 길을 걷기로 다짐했으며, 모든 시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그 진실을 마주한 순간, 내 안에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지나온 아픔은 오늘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고, 오늘의 고통은 내일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서서히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걸어온 이 여정, 단 한순간도 우연은 없었다는 것을.

삶이란 결국, 영혼이 성장하기 위해 겪는 배움의 연속이었다.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일들, 그 하나하나가 나를 더 단단하게, 더 깊이 있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 나는 더 이상 삶을 ‘좋다’ 거나 ‘나쁘다’는 잣대로 재지 않게 되었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는 일, 그 안에서 내가 배워야 할 것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진짜 살아가는 것이었다.


삶은 언제나 아주 조용히, 나직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마치 바람처럼, 아주 사적인 음성으로.

“이 일을 통해, 너는 무엇을 배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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