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로 한 행동이 꼭 결과까지 좋은 것은 아니다’
‘선의로 한 행동이 꼭 결과까지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경험이 직간접적으로 반복되면서 지금의 나는 작은 친절 하나도 건네기 전, 망설여질 때가 있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전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정말 내 도움이 필요한 걸까? 이 일로 내가 또 상처 입지는 않을까?”라는 물음을 스스로 반복한다. 그 망설임 속에는 예전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2006년, 막내 이모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외아들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스무 채에 가까운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다. 몇몇은 친정 식구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인 관리는 모두 이모가 했다.
가족들이 부동산에 발을 들이게 된 건, 구미 이모 때문이었다. 막내 이모를 통해 부동산 투자에서 작은 성공을 맛본 구미 이모는, 그 기쁨을 다른 가족들과 나누고자 했다. 막내 이모는 선뜻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누었고, 지방에 사는 이들을 위해 관리까지 도맡았다.
그러나 아들을 잃은 충격은 순풍에 돛을 달고 순항 중이던 막내 이모의 삶의 배를 노를 잃은 채 세찬 바람 속을 떠돌게 했다.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졌다. 세입자들의 불만은 들불처럼 번졌고, 가족들 사이에도 오해와 의심이 끝없이 이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벨이 울렸고, 현관 앞엔 낯선 발자국이 남았다. 문을 두드리며 고함치는 사람, 분에 겨워 유리창을 깨다 손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
나는 그 모든 상황 앞에서 무력했다. 화가 치밀었고, 아팠고, 숨이 막혔다.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었던 건, 이모를 가장 괴롭히던 이들이 가족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모든 시작이 선의였던 것을, 곁에서 지켜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아팠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던 나날들.
내 어머니만이, 막내 이모와 부동산 문제에 얽히지 않았기 때문일까. 어머니는 누구보다 이모를 걱정했다. 나는 어머니의 절박한 부탁 앞에서 결국 막내 이모를 대신해 친척들 명의로 되어 있던 골칫덩이 부동산 문제를 정리하기로 했다.
내 딴에는 어머니의 부탁이었고, 친척들의 간청이 있었기에, 이 일에 선의로 발을 들였다. ‘가족을 돕는 일’에 잠시 내가 불편하고 잠깐만 내가 수고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고단하고, 무거운 길이었다.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분노를 삭이지 못한 세입자들이었다. 그들은 답이 없는 집주인을 향해 소송을 걸어왔고, 그럼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집주인, 그러니까 내 이모를 향해 깊은 원망을 품고 있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기를 붙들고, 속이 타들어 가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다. 마음속 깊은 사정을 꺼내어,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다.
“이모가 지금, 많이 어렵습니다. 부디 소송을 철회해 주십시오. 제발요.”
말이 닿지 않으면, 직접 그들을 찾아갔다. 공인중개사를 대동해, 낯선 얼굴들 앞에 앉았다. 싸늘한 눈빛을 견뎌야 했고, 울먹이는 세입자의 목소리에 함께 가슴이 무너졌다. 다행히도 대부분은 내 말에 한숨을 쉬며, 결국 소송을 취하해 주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감사와 미안함이 뒤엉켜, 어깨를 짓눌렀다.
한 고비를 넘기고, 몇 달 동안 방치되어 있던 아파트를 직접 찾았다. 남편도 함께였다. 현관 앞에는 버려진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었다. 문을 열자, 퀴퀴한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벽지와 천장 곳곳에는 검게 피어오른 곰팡이 자국이 번져 있었다. 터져버린 보일러에서 흘러나온 물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그곳은 더 이상 집이 아니라, 오래전 버려진 폐허 같았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남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확실한 건, 그날 이후로 남편은 친정 식구들에게 차가워졌고, 나를 향한 요구는 날이 갈수록 까다롭고 불합리해졌다. 친정 식구들로 인해 남편과의 관계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무언가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파트를 팔기 위해서는 모든 걸 내려놓아야 했다. 시세보다 훨씬 낮은 급매 가격은 기본이었다. 매수자가 요구하는 ‘업계약’도 받아들여야 했다. 심지어 부동산 중개수수료도 일반적인 금액의 몇 배를 웃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책상 위엔 소송 취하서와 매매계약서가 수북이 쌓여갔다. 이모 가 집을 살 때, 팔 때, 전세를 놓을 때마다 나는 그림자처럼 그 옆에 있었고, 어느새 나만의 촉이 생겼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했던 시간들도 헛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소송을 정리하고, 세입자들을 설득하고, 보일러가 터진 집을 바라보며 들었던 감정과는 별개로, 그 아파트들이 급매로 나가는 걸 바라보는 마음은 아쉬움으로 물들었다. 몇 채는 정말, 너무 싸게 내놓는 것 같았다. ‘이런 조건이면, 내가 인수해도 괜찮겠는데’라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한 부동산 실장에게 조심스레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내 말을 조용히 들은 뒤,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 마음 알지. 눈앞에 너무 아까운 매물이니까. 근데 말이야… 어려움이 닥친 친척 집은, 인수하는 게 아니야.”
그녀의 표정엔 무언가 오래된 경험에서 비롯된, 단단한 확신이 묻어 있었다.
“지금은 정신이 없으니까 다들 헐값에라도 팔겠다고 던지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꼭 후회하게 돼. 그때 집이 모르는 사람 손에 넘어갔다면 그냥 아쉬운 거지. 그런데 그 집을 ‘가까운 친척’이 사갔다면? 그땐 얘기가 달라져. 못 잊어. 결국 원수가 되는 거야.”
그녀는 말을 멈추고 한참 나를 바라보다가,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물에 빠진 사람 구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말 있잖아. 괜히 있는 말 아니야.”
그 말은 바람처럼 내 마음속을 훑고 지나갔다. 따뜻했지만, 싸늘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조용히 그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아파트들이 헐값에 팔려나가는 것을 보며 나는 밤새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 헐값에 팔려나간 집들이, 불과 일 년, 길어야 이년 안에 두 배 이상 뛰어오를 거라는 예감이 있었다.
큰 외삼촌과 외사촌 오빠가 지방에서 인천으로 올라왔다. 큰 외삼촌에겐 세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구미 이모의 권유로, 막내 이모를 통해 그동안 모은 결혼자금으로 각각 아파트 한 채씩, 총 세 채를 샀다. 조심스레 쌓아 올린 꿈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괜찮아 보였다. 아파트 값이 올라, 전세금을 올려 받으면 투자한 돈을 금방 회수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실제로 세입자가 전세금을 올려주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막내 이모가 아들의 죽음으로 삶의 끈을 놓아버리며 이런 내용을 큰 외삼촌과 외사촌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세입자들은 연락이 되지 않는 집주인을 향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서 서류를 보내고, 공인중개사는 쉬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이에 답하는 이들이 없었다. 그사이 집은 몇 달 동안 비었고 망가지고 말았다. 게다가 아파트값마저 떨어져, 집 한 채마다 천만 원에서 이천만 원이 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인천에 온 큰 외삼촌과 외사촌 오빠와 함께 그들의 아파트를 찾았다. 폐허가 된 아파트를 둘러보는 그들의 얼굴엔 깊은 절망이 드리워져 있었다. 외사촌 오빠가 털썩 주저앉아 멍한 눈으로 바닥만 응시했다.
“이게… 내 전 재산이 들어간 집이라고?”
대동한 공인중개사는 그들에게 담담히 말했다.
“지금 당장 손 쓰지 않으면 더 나빠질 거예요.”
그들은 공인중개사의 말에 분노와 허탈함이 뒤섞인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국 화살은 구미 이모와 막내 이모를 향했다.
“다 그 인간들 때문이야. 가만히 있는 애들을 들쑤셔서 아파트에 투자하게 만들더니, 책임도 안 지고. 그 애들이 그 돈을 어떻게 모았는데… 당장 장가는 어떻게 가냐고? 그 인간들, 가만두지 않을 거야.”
거칠고 매서운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졌다.
나는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이모들이 아픈 외삼촌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했다. 불편을 넘어, 깊은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몇 년만 기다리면, 분명 다시 오를 거예요. 확실해요.”
내 말에 그들은 잠시 침묵했다. 눈빛을 주고받던 그들은 이윽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네가 대신 아파트를 관리해 줄 수 있겠니? 막내 이모는 믿을 수가 없어.”
간절한 부탁이 담긴 눈빛이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아파트를 이대로 포기하기엔 아까웠지만, 동시에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떠올랐다. 매일같이 울려대던 전화벨, 수화기 너머 들리던 거친 욕설과 협박, 밤마다 문 앞에 남겨지던 낯선 발자국, 그리고 문을 부수려다 피를 흘리던 사람. 방금 전까지 내 앞에서 이모들에게 거칠게 분노를 퍼붓던 외삼촌. 나는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본 목격자였다.
‘내가 이걸 맡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나 역시 이모들처럼 몰아세우겠지.’
마음 한구석에서 조용한 경고가 울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그건 못할 것 같아요.”
그들의 얼굴에 실망이 스쳤지만, 내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헐값에 팔려나갔던 아파트들은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아 두 배 가까운 가격으로 다시 거래되었다.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그때 내가 외삼촌의 부탁을 들어줬다면? 그 아파트들을 내가 인수했다면?’ 아쉬움이 스쳤지만, 부동산 실장의 말이 마음을 붙들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 하는 게 세상일이야.”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나는 내 부동산 사무실을 열었고,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내 욕심을 다스려 친척들 재산에 관여하지 않았어도 나는 이 일로 오랫동안 가족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다들 망했는데 어떻게 너만 잘될 수가 있어? 뒷돈 챙긴 거 아니야?”
단호하게 아파트 관리를 거절했던 큰 외삼촌 가족들과는 그 일로 사이가 멀어졌지만, 적어도 아파트 일로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이 일로 나는 또 한 번 마음속 균열을 느꼈다. 그 후,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 말할 때면, 먼저 묻는다. “정말로 필요한가요?” 그 질문은 따스함 아닌 차가운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무거운 선택의 순간, 나는 조언이라는 작은 등불만 비춘다. 불빛 아래에서 결정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질 이는 오롯이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그들 자신이어야 한다고 믿기에.
지인들의 돈을 빌려 달라는 부탁은 봄날 꽃망울처럼 달콤하게 나의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그들이 내게 남기는 것은 언제나 시든 낙엽뿐이었다. 정말 친한 이들에게는 딱 한 번만 빌려준다. 그것도 내 가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큰 금액은 처음부터 거절한다. “두 번은 없습니다.” 그리고 돌려받지 못할 각오로 건넨다. 그리고 돌아오는 건 대부분 허망함뿐이었다.
이런 글을 쓰며 누군가는 나를 ‘보살’ ‘부처님’이라 불렀다. 그들에게 나도 그들처럼 부족하고 욕심 많고 상처받는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내 도움은 불경을 보내주는 것까지라고 말한다.
내 글이 누군가의 위안이길 바랐건만, 물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는 그들에게 더 이상 달콤한 위로가 아님을 자주 깨닫는다. 인기가 떨어지고, 조명은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나는 한결 가벼워졌다.
무거운 기대를 벗어던진 영혼은 마침내 고요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 진정한 평온은 나를 무리하게 희생하면서 남을 구원하는 것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지키면서 희생이 아닌 행복으로 타인을 도울 때 그 자리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 이 그림은 DALL·E, OpenAI의 이미지 생성 모델로 만들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