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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나의 수행과 기도 가피

by 엄마쌤강민주

밤이면 밤마다, 마음속에 검은 파도가 몰아쳤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그러나 맹렬하게 나를 집어삼켰다. 정신이 가루처럼 부서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침묵을 택했다. 말할 수 없었다. 아니, 말해서는 안 됐다.


나는 구미 이모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내 눈으로 똑똑이 보았다. 오래전, 그녀가 신병인지, 미친 건지 이유는 모르지만, 남들과 다른 말과 행동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남편이 가장 먼저 그녀에게 등을 돌렸고 그다음 친정 식구들이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그들은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녀가 아무리 울고 불어도, 문은 굳게 닫혔고, 창문은 쇠창살로 막혔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던 적이 있다. 내 손이, 이모를 병원에 들여보내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내 심장을 쥐어뜯는다.


그래서였다. 내 상태를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된다는 결심은, 두려움 이상의 절박함이었다. 숨죽인 고통은 깊은 어둠이 되어 내 안에 깃들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하나의 불씨가 있었다.


무럭이. 너무나 소중한 내 아이. 나는 그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내 손으로 키울 수 있기를 바랐다.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날들이었지만, 그 바람 하나로 겨우 숨을 이어갔다.


매일 밤, 나는 죽음의 문턱에 한 발을 걸친 채 잠자리에 들었다. 죽음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혹시 오늘 밤이 내 마지막 날일까?’

‘이대로 미쳐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가장 나를 무너뜨렸다. 고립. 그것은 정신의 감옥이었고,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가장 강력한 족쇄였다.


그 무너진 마음을 붙잡고 나는 염불을 외웠다.

“나무아미타불.”

내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그 말은 물속에서 숨을 쉬는 사람처럼,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서 짓이겨진 영혼이 내지르는 마지막 소리 같았다. 염불은 나의 기도였고, 살아 있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간절한 염불은 나에게 ‘고승 법문곡’과 ‘생활 속의 반야심경’ 그리고 ‘무상 법문집’을 가져다주었다. 시아버지가 상갓집에 갔다가 부모의 극락왕생을 발원한 후손들이 법보시 한 것을 받아온 것이었다.


269페이지에 달하는『생활 속의 반야심경』. 나는 그 책을 하루도 빠짐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독송했다. 한 글자, 한 구절, 한 뜻도 흘리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읽었다. 살려달라고, 제발, 제발 나 좀 살려달라고 속으로 외치며 눈물과 함께 베껴 넣었다. 그건 단순한 독송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존재를 부처님 앞에 내던지는 기도였다.


광명진언은 하루에 3,000독씩 했다. 묵주알을 돌리는 손가락이 떨려도, 목소리가 갈라져도 멈출 수 없었다. 앉아서 진언할 시간조차 부족한 날엔 걸으면서, 설거지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진언 하나하나가 어둠 속에 빠진 내 영혼을 끌어올릴 유일한 밧줄이었다.


능엄주도 멋모르고 독송한 적이 있었다. 덕행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독송했던 그 날들, 능엄주의 깊이에 휘말려 제대로 혼쭐이 났다. 몸은 지쳤고, 마음은 두려웠고, 혼은 허공에 붕 떠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확실한 체험은 나에게 더욱 목숨 걸고 수행할 의지를 솟구치게 했다.


과거의 실수와 죄들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이마를 바닥에 대고 절을 하며,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 같은 어리석음을 짓지 않겠습니다.”라며 참회문을 독송했다.


나는 십선(十善)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금생에 업을 씻어내지 못하면, 다음 생도, 그다음 생도, 끝없이 어둠 속일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 업을 녹이지 못하면, 무럭이도 나처럼 신에 시달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기도를 멈출 수가 없었다.


『고승법문곡』에서 읽은 연지대사의 ‘일곱 가지 불살생’ 법문, 적석도인의 ‘일곱 가지 방생’ 법문은 내게 육식을 끊게 만들었다. 고기도, 생선도 오신채까지 모두 내려놓았다. 나의 한 끼 식사를 다른 생명의 희생 위에 있게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생활 속의 반야심경』 뒤표지에 적힌 불서 목록을 보고, 나는 그 목록에 있는 책들을 하나씩 주문해 읽었다. 새 책이 오면, 그 책의 뒷장에 또 새로운 책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럼 또 주문했다.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불경을 읽으며 보냈고, 아이를 돌보거나 일을 해야 할 때는 조용히 진언을 외웠다.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내 삶의 한 편에 깊이 자리한 ‘천도재’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수십 번의 천도재를 지냈고, 그 경험들은 이제 내게 글감이 되어,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리는 문장이 되곤 한다.


그 시작은 사실 두려움이었다. 밤이면 느껴지던 정체 모를 기운, 설명할 수 없는 고통과 불안. 나는 그것들을 떨쳐내고자 애썼고, 그렇게 첫 천도재를 올렸다. 살아야겠다는 몸부림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귀신을 물리치고, 정체 모를 무언가에게서 나를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마음공부가 조금씩 깊어질수록 나를 괴롭히는 이들과 나의 인연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옥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영혼들, 이름도 없이 스쳐간 인연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들은 내 마음 한편에서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이 안쓰러워서, 가여워서,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까운 가족을 위한 기도였다. 이어서 친척들, 그들의 품에서 세상 빛도 보지 못하고 떠난 태아의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과 그들과 얽힌 인연들, 그리고 나와 생을 함께했던 동물들까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그 모두를 위해 두 손을 모았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존재들이 내 마음속에서 하나하나 떠올랐고, 나는 그들을 향해 나라도 작은 등불이 되어주고 싶었다.


내가 구해주고 싶은 이들은 점점 많아졌고 내 기도는 점점 더 넓어졌다. 결국엔 나는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의 전생, 현생, 내생의 인연 있는 모든 이들과, 그들의 전생, 현생, 내생의 모든 인연들이 지금 이 순간, 있는 자리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성불하여 감사합니다.”

기도는 나의 하루를 열고, 나의 숨을 지탱했다. 나는 지갑도, 마음도, 다 부처님 전에 올려놓고 살았다. 더 이상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남은 건 오직 참회, 그리고 언젠가 그들을 구하겠다는 나직한 약속뿐.

나에겐 그런 시절이 있었다.


반야심경 독송 중에는 반야심경 독송을 못하게 내 눈을 가리는 귀신을 꿈에서 보았다. 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기도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신비로운 체험이 꼬리를 물고 다가왔다. 그리고 그 중심엔 예언의 은사를 받은 구미 이모가 있었다.


나는 내 안에 실제 내 나이보다 한참 어린 내면 아이가 있다는 것과 그 아이가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눈을 가린 귀신이 남편이 술을 마시던 술집에서 따라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알게 되었다. 세상엔 천도되지 못한 무주 고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그들은 가족에게조차 잊힌 채, 자신을 구해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떠돌고 있었다.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의 손이라 해도, 누군가 그들을 불러주고, 이름을 기억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또한 반야심경을 독송하면 관음보살이 옆에서 지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스님에게 항암제를 받아서 마셨다. 나는 부처님이 꿈을 통해 은혜를 베푸는 몽중가피가 실제로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구미 이모는 기도 중 “내가 이번 생에는 하느님 법 공부했는데… 전생에는 불법을 공부했구나.”라고 말했다. 그 한 마디가, 내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다. 전생, 윤회, 영혼의 여정, 모든 것이 단번에 이어졌다. 그 후, 나는 ‘이름이 다름을 이유로 종교를 가지고 다툴 필요 없다’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모든 길은 결국 진리를 향해 가는 것이니까. 단 10선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10선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라고 하는 이들은 그가 그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경계한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너는 전생에…”

구미 이모는 마치 오래된 비밀을 꺼내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내 안의 어떤 문을 완전히 닫고, 또 다른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 일이 결정적이었다. 나는 마침내 내 안에 깃들어 있던 외부의 신,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그 막연한 존재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전생을 알게 된 후, 나의 삶, 나의 업, 나의 인연을 바로 보게 되었다. 이제 나는 인과를 믿는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세계를 믿는다. 그리고, 윤회를 믿는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조용히 기도하고 내 경험을 글로 쓴다. 나의 작은 기도가, 내 글이 어둠 속의 나의 인연에게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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