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이야기 하나
반야심경 독송을 방해하는 귀신을 쫓아내고 꿈에서 스님에게 항암제까지 받아서 마셨다. 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어느 늦은 밤, 어머니와 나, 그리고 구미 이모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시 집안에 이상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고 안 좋은 일들도 연이어 일어나서 우리의 대화는 무거웠다.
그러다 이모가 문득 내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한참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더니, 이윽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는 전생에… 신라에서 백제 왕에게 보내진 여자였어.”
나는 얼떨떨하게 눈을 깜박였다. 방 안의 공기가 잠시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어머니도, 나도, 아무 말 없이 이모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구미 이모가 하는 말이 그냥 농담으로 흘려듣기엔 무시 못 할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오랜 시간 마음속에 품어둔 이야기를 꺼내는 듯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적국의 왕에게 강제적으로 보내진 희생양이었지. 넌 그곳에서 많은 걸 견뎌냈어. 백제의 신하들이 널 경계했지만, 넌 끝내 왕의 마음을 얻었고 그의 아이까지 낳았어. 하지만…”
이모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전쟁이 터졌지. 신라와 백제가 싸우기 시작했을 때, 신라 출신인 널 보호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결국… 넌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야 했어. 고국도, 남편의 나라에서도 버림받았거든.”
이모의 말이 내 안을 가로질렀다. 찬물처럼 차가웠고, 오래전부터 내 안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던 기억을 두드리는 듯했다.
나는 원래 ‘선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 이름은 나를 따라다니는 별명이 되곤 했다. ‘선화공주’. 처음엔 그저 장난 섞인 놀림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로 운동장에서, 중학교 복도 끝에서, 누군가 툭 내 이름을 부르면 꼭 그 뒤에 ‘공주’가 붙었다.
중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는 출석부를 들여다보다 말고 내 이름을 소리 내어 읽더니, 금세 웃으며 말했다.
“선화공주 나와요.”
아이들이 킥킥 웃었고, 그 순간부터 내 이름은 더 이상 ‘선화’가 아니었다. ‘공주’라는 두 글자가 꼭 내 이름 일부처럼 따라붙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또 국어 선생님이 담임이었다. 두 해 연속이었다. 마치 운명처럼. 그들은 처음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놀랍게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혹시 서동요의 선화공주?”
그 말은 장난이 아니라, 어떤 따뜻한 애정처럼 들리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자연스럽게 ‘선화공주’가 되어 있었고, 아이들도 그렇게 불렀다. 마치 내 이름이 진짜 이야기에서 튀어나온 인물인 것처럼.
대학 시절에도, 내 이름을 처음 듣는 이들은 꼭 서동요의 이야기를 꺼냈다.
“백제 무왕이 사랑한 그 선화공주 말이야?”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예 내 닉네임을 ‘선화공주’로 정해버렸다. 이제는 장난이 아닌, 내 일부가 되어버린 이름. 그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나는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는 ‘선화공주’로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나는 신라의 선화공주와 백제 무왕의 사랑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전설을 읽을 때면,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마음이 뭉클했다. 내 이름은, 그 이야기 속에서 오래도록 숨 쉬었다. 그리고 지금도 조용히 내 삶 한편에, 선화공주가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모, 지금 하는 이야기 지어내는 거지? 선화공주 얘기처럼.”
하지만 이모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넌 무왕의 여인이 아니었어. 너는 의자왕에게 보내진 신라 여자였지.”
그 말에 숨이 턱 막혔다. 이모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마치 아주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는 듯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신라와 백제가 전쟁을 하고 있을 때였어. 신라에서 백제로 보낸 진 널, 지키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때 넌 세상을 원망했어. 신라를, 백제를, 너를 버린 사람들을… 아무도 너를 지켜주지 않았으니까. 너는 그렇게 모두를 저주하며 죽었어. 그리고 그 원망이, 그 저주가 아직도 이 땅 위에 남아 있어.”
이모의 서늘한 눈빛은 내 마음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그때 너를 버린 사람들… 널 외면한 이들은 지금도 그 그림자 아래서 고통받고 있어. 알 수 없는 슬픔, 이유 없는 불안, 무너지는 운명… 다 너의 저주와 한(恨) 때문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이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구미 이모에게 전생 이야기를 듣던 그 시기, 나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겉으론 웃으며 넘겼다.
“이모, 또 이상한 얘기 하네.”
이모의 이야기가 시답지 않은 이야기인 척, 헛소리인 척. 하지만 그 말들은 이상할 만큼 무겁게, 조용히 내 가슴 어딘가를 두드렸다. 마치 잊고 살던 기억을 흔들어 깨우는 것처럼.
그때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 나를 뒤덮는 그림자, 자다가 깨고, 또 울고, 깨어난 뒤에도 무언가를 피해 도망치는 날들이었다. 그래서 반야심경을 놓지 않고 외웠다. 그날 하루도 살아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반야심경을 부적처럼 외웠다.
그날 밤도, 혼자였다. 세상이 조용히 어두워지고, 모든 소리가 멎는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문득, 낙화암이 떠올랐다. 나는 그곳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서른다섯이 되도록. 어릴 적, 어머니는 종종 막내 여동생을 데리고 낙화암과 고란사 근처를 다녔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만 데려간 적이 없었다.
낙화암. 그곳을 떠올릴 때마다 떠오르는 찬 바람.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그리고, 그 끝에서 머리카락이 산발된 채 울부짖는 여인들의 마지막 숨결. 그 안에… 나도 있었을까? 정말 그날, 나는 절벽 끝에 서 있었을까. 신라에서 보내졌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죽을 때, 얼마나 세상을 원망했던 걸까. 얼마나 깊이 저주했기에. 그 원망이, 그 저주가 이토록 긴 시간을 지나 지금도 남아 있다니. 그때 나를 버린 이들, 나를 외면했던 이들이 지금도 그 그림자 아래에서 고통받고 있다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여전히 그 절벽 어딘가에 서 있는 건 아닐까. 눈을 감으면, 바람이 분다. 그곳의 바람처럼.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이상한 순간에 몸이 떨렸다. 책을 읽다가, 혹은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이유도 없이 손끝이 차가워지고, 숨이 막히듯 마음이 뒤흔들리는 순간들. 그건 언제나 비슷한 장면에서 찾아왔다.
나라를 위해, 혹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한 여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다른 나라의 왕이나 권력자 앞에 서기로 결심하는 장면. 그 장면 앞에서 나는 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떨리는 속으로, 절박하게 외쳤다.
‘안 돼… 제발, 안 돼…’
여자를 보내는 이들은 하나같이 달콤한 말을 했다.
“네가 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
“너는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될 거야.”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말들이 얼마나 잔인한 위선인지. 보내진 여자는, 결코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그녀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녀는 그 누구의 기억 속에서도 ‘영웅’이 되지 못한다.
사랑했던 남자도, 목숨 바쳐 지켰던 조국도 결국 그녀를 잊는다. 그녀는 역사 속에서도, 사랑이라는 말속에서도 이름 없는 조연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나는 어린 마음으로 조용히 책을 덮고 주먹을 꽉 쥐곤 했다.
‘나는 절대 그렇게 살지 않겠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나를 다른 남자에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나라가 정말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내 성을 미끼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여자의 순결을 신성시하는 세상에서 그건 나를 ‘버리겠다’는 말과 같으니까.
사랑을 빌미로. 대의를 핑계로.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자의 품에 나를 밀어 넣는 이들. 정보를 빼내기 위해 마음을 숨기고, 원하지 않는 손길을 견디며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삶. 그 끝엔 버려지는 운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위선에 속지 않겠다고. 이용당하다가 버려지는 여자가 되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했었다.
그래서였을까. 남편이 어느 날 무심하게 내뱉은 그 한마디.
“아이를 밖에서 낳을 테니, 너는 돈이나 벌어”
그 순간, 과거의 다짐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수 없으니까.
나는 남편의 말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는 말이라고. 그리고 조용히 준비했다.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재산을 챙기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앞으로의 나날을 다시 설계했다. 이건 내가 나 자신에게, 그리고 그때 책을 덮으며 주먹을 쥐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주는 약속이었다.
몇 해가 지나, 아이가 5살이 되었을 무렵, 아이에게 위인전을 읽어주다가, 책 속 한 문장을 마주한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정말로, 신라가 의자왕에게 여인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었다. 의자왕은 그 여인에게 깊이 빠졌고, 결국 그녀를 향한 집착이 정사를 흐리고 백제의 몰락을 재촉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내가 몰랐던 역사적 사실이었다.
이모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되살아났다. 나는 아주 오래전, 버려진 여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신라에서 보내져, 이름도 없이 적국의 왕 곁에 앉아야 했던 여자. 사랑도, 명예도, 끝내 손에 쥐지 못한 채 절벽 끝에서 바람에 몸을 맡겼던 그 시간. 어쩌면 내 이름 ‘선화’는 그 시절에 두고 온 한 조각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를 통해 그 기억이 다시 살아 숨 쉬는 것일지도.
나는 이제는 이름이 수없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선화, 민주, 법화심, 해안, 무명 그리고 엄마쌤이라는 필명이 있고 그 밖에도 무럭 엄마, 누구 딸, 누구 며느리, 누구의 언니, 누나, 형수, 누구 친구 등등. 내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어떤 시간을 지나왔든, 지금 여기 서 있는 나는 나일뿐이다.
‘선화’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나의 이야기는 이제, ‘나’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 누구의 그림자도 아닌, 나만의 빛으로. 나는 더는 조연이 아니다. 이 삶의, 이 생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누가 나를 뭐라 부르든 나로 살아간다. 조용히, 단단히, 그리고 아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