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이야기 둘
어느 늦은 밤, 어머니와 나, 그리고 구미 이모가 마주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이모가 문득 내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한참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더니, 이윽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는 전생에… 신라에서 백제 왕에게 보내진 여자였어.”
나는 얼떨떨하게 눈을 깜박였다. 방 안의 공기가 잠시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이모는 마치 오랜 시간 마음속에 품어둔 이야기를 꺼내는 듯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적국의 왕에게 강제적으로 보내진 희생양이었지. 백제의 신하들이 널 경계했지만, 넌 끝내 왕의 마음을 얻었고 그의 아이까지 낳았어. 하지만…”
이모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전쟁이 터졌지. 신라와 백제가 싸우기 시작했을 때, 신라 출신인 널 보호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결국… 넌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야 했어. 고국도, 남편의 나라에서도 버림받았거든.”
물결 위로 해가 부서지듯 반짝이던 황금빛 비늘들. 어머니는 늘 말했다.
“네 태몽은 백마강에서 솟구치는 황금빛 용이었어.”
그 말은 마치 전설처럼 내 마음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어머니의 기억 속 백마강은 용의 황금빛으로 가득 찼고, 물결은 그 비늘을 비추며 찬란하게 물들었다고 했다.
낙화암과 백마강이라...
꽃잎처럼 떨어져 물속으로 사라졌던 생, 그리고 다시 솟구친 용. 나는 가끔 상상한다. ‘낙화암에서 떨어진 누군가의 영혼이 백마강 속에서 거대한 용이 되어 깨어났던 것은 아닐까’, 하고. 어쩌면 그게 나였는지도 모른다고.
이렇게 나는 태몽부터 백마강에서 시작하였으니, 오래전부터 어떤 인연으로든 물과 인연이 깊은 것 같다. 스님인 큰 이모, 삼신 기도를 올릴 때 만났던 무속인, 그리고 어머니가 나에 대해 물었던 수많은 무속인들까지, 그들 모두 하나같이 말했다. 내가 물과 인연이 깊다고.
고향 시골집에 살던 시절, 어머니는 물과 연이 깊다는 나를 위해 집 옆에 있는 작은 샘에서 늘 기도했다.
“우리 아이, 무탈하게 크게 해 주세요.”
샘가에 초를 밝히고 두 손을 모으며, 마치 물이 나를 보호해 줄 신령한 존재인 양 어머니는 그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했다.
그래서였을까.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믿게 됐다. 물은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물은 나의 힘이자 기운의 근원일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 삶에서 물은, 나를 끊임없이 삼키려 했다.
처음의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 양촌에서였다. 한여름,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떠난 평범한 물놀이. 그날 나는 튜브 하나에 몸을 맡긴 채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 튜브가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하류로 흘러갔다. 강물은 생각보다 깊고 넓었다. 갑자기 내가 발 디딜 수 없는 먼바다에 던져진 듯한 공포가 엄습했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은 듯했다. 그날 내가 어떻게 구해졌는지, 누가 나를 건져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남은 건 단지, 숨이 막히도록 두려웠던 그 물의 기운이었다.
두 번째는 동학사 계곡이었다. 맑은 물소리, 웃음소리, 아이들의 발장구 소리로 가득했던 여름날. 나는 또다시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분명 다른 아이들과 얕은 곳에서 놀고 있었는데, 어느새 깊은 곳으로 떠내려가 있었다. 발이 닿지 않았고, 손에 쥐고 있던 튜브는 어느 순간 멀어져 있었다. 허우적거리며 물을 마셨다. 어른들은 내가 처한 위험을 보지 못했다. 친구 하나가 나를 보고 튜브를 던져주었고, 나는 간신히 살아났다.
세 번째는 내가 아닌 친구였다. 대학생이 되어 떠난 영동 수련회, 또 하나의 계곡. 그곳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나는 물속에 들어간 적이 없는데도, 그날 이후 수없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며, 마치 내가 그 안에 있었던 것처럼, 또 한 번 익사의 순간을 통과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나 홀로 두고 잠시 집을 비우면 나는 꼭 집 옆에 있는 샘으로 향했다고 한다. 기어가기도 했고, 아장아장 걸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몇 번이고 그곳에서 빠져 죽을 뻔했다. 나중에 어머니는 그 샘에 산다는 신에게 내가 무탈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결혼 후부터는 꿈속에서도 물은 두려움이었다. 꿈속에 보이는 바다는 언제나 잿빛이었다. 물결 대신 짙은 연기가 일렁였고, 그 위로 떠다니는 것은 죽은 물고기들의 시체였다. 배가 갈라진 채 말라비틀어진 물고기, 군데군데 불탄 비늘이 반짝이는 물고기,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지만 곧 기진해 허우적거리는 물고기들… 그 참혹한 광경 앞에서 나는 매번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이를 품기 전,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던 꿈은 폐허가 된 바닷가였다. 검게 그을린 모래 위로 부서진 배와 부서진 꿈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나는 그 위를 맴돌며 숨을 쉬었다. 바닷물이 아니라 검은 잿더미 같은 것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그 속에서 나는 물고기들이 좁은 웅덩이에 갇혀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았다. 작은 웅덩이에 밀집해 겨우 살아있는 물고기들은 비명을 지를 수도 없이 처참히 몸부림쳤다.
그리고 깊은 산속, 돌무더기가 수없이 쌓인 그곳,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그곳에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에는 맑고 잔잔한 물에 몇 마리의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안도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어느 날, 남편이 ‘도깨비 도로’를 보여주겠다며 문경대학에 데려간 적이 있다. 그 대학의 돌무더기들이 내 꿈속 풍경과 완전히 겹쳤다. 현실과 꿈이 맞닿는 순간, 나는 전생의 조각이 지금의 나를 부르고 있음을 느꼈다.
무럭이를 낳고 난 후, 물에 대한 꿈은 또 다른 얼굴로 바뀌었다. 폐허의 바다는 사라지고, 대신 아이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장면이 찾아왔다. 자그마한 무럭이는 얕은 물에서도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나는 손을 뻗어 아이를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물은 내 손목을 비껴가고 아이는 점점 멀어져 갔다.
어느 날은 불탄 바닷가에서 죽은 아이의 차가운 몸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그 울음은 꿈속이었지만, 내 심장 깊은 곳까지 울려 퍼졌다.
이 모든 꿈이 말해주는 것은 하나였다. 나는 이모 말대로 전생에 물에 빠져 죽었을 확률이 높다. 현실에서조차 물에 빠질 듯한 아찔한 경험이 반복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어쩌면, 무의식 속 전생의 파편들이 금생의 나를 따라온 걸지도 모른다. 죽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공포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이모의 말을 듣고 내가 낙화암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대전에 살면서, 가까운 그곳에 단 한 번도 발길 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여동생을 데리고 종종 고란사나 낙화암을 다녀오셨다. 그러면서도 나만큼은 이상하리만치 그곳에 데려가지 않으셨다. 나도 이유 없이 그곳을 찾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해, 공주에서 열리는 빛의 축제에 무럭이를 데리고 갔다. 처음으로 낙화암이 보이는 모래사장에 섰다. 그곳에서 나는 멍하니 강을 바라보았다. 넓게 펼쳐진 물, 그 곁의 모래사장. 꿈속에서 바닷가라 생각했던 풍경이 낙화암 주변과 어쩐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스쳤다. 내 몸이 이 기억을 먼저 알아챈 듯, 묘한 전율이 척추를 따라 흘렀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느낌. 내가 처음 밟은 땅인데도 익숙한 그 느낌이었다. 그날, 나는 오랜 세월 내 안에 흐르던 두려움과 조용히 마주했다.
2013년, 나는 수수께끼 같은 기연에 이끌려 대전 광수사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나는 인연들을 위해 천도재를 성심껏 올렸다. 어느 새벽, 꿈속에서 나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운 어항들을 보았다. 투명한 유리 벽 너머로 수백의 물고기 지느러미가 반짝였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그날부터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거실부터 방구석구석까지 어항을 배치했다. 온 집안에 물이 흐르고,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풍경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내 그들은 나의 일부가 되었다. 그 시절 나는 ‘작은 개울 홈다리’라는 카페에서 엄마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아직도 그 카페에는 내가 쓴 글들이 남아있다.
구미 이모가 집에 들렀을 때, 반짝이는 어항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물에 빠져 죽은 인연들을 구해 달라 그리 간절히 기도하더니, 물귀신이 모두 물고기가 되었구나.”
물고기들을 키우며 내 안에 있는 물에 대한 깊은 공포는 서서히 부서졌다. 나는 이 시간을 인연들의 축생 시절이라 부른다. 그들은 물속에서 나와 함께 호흡하며 세상의 이치와 사랑을 가르쳐 주었다.
어느덧 나는 깨달았다. 원망은 물 위에 맺힌 기름방울 같아 가만히 두면 번지고 마음을 덮지만, 용서는 맑은 물처럼 흐르며 내 마음 모든 것을 비추어 준다는 것을.
물고기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물결 속에서 나는 전생의 아픈 기억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감사의 마음이 수면 위로 환하게 떠올랐다. 그리하여 나는 물의 기억을 품고, 물고기의 속삭임을 따라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