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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가 내 진짜 인연이라고?

꿈은 무의식이 건네는 편지

by 엄마쌤강민주

희미한 안갯속을 걷고 있었다. 어디쯤 인지도 알 수 없는 그 길 위에서, 세상은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바람도 없고, 소리도 없고, 온기도 없었다. 마치 감각이 지워진 공간처럼. 나는 그저 떠다니는 것 같았다. 시간도, 방향도 없는 낯선 세계 속에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감각. 그건 기분이라기보다는, 어떤 진실처럼 선명한 확신이었다.


그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분명히 사람이 아니었다. 빛인지, 기운인지 모를 온기가 그의 둘레를 감싸고 있었고,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침묵은 묵직한 울림처럼 다가왔다. 눈빛은 깊었고,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마치 아주 오래된 지혜가 나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이번 생 너의 인연은 지금 남편이 아니란다.”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또렷하게 들려온 그 말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는 원래 다른 사람과 만나야 했어. 한 사람은 군인이야. 다른 한 사람은 선생님이지. 한 사람은 이혼했고, 다른 이는 사별했어. 두 사람 모두 딸아이가 있어. 그들이 이번 생, 너의 진짜 인연이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발아래 세상이 살짝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 꿈이구나.’ 그제야 자각이 되었고, 눈을 드는 사이 그 존재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둠 속으로 다시 조용히 떨어졌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고, 심장은 거칠게 뛰고 있었다. 누군가 내 운명의 커튼을 살짝 들추고, 그 뒤에 숨겨진 비밀 하나를 속삭이고 떠난 것 같았다.


심리학은 말한다. 꿈은 무의식의 언어라고. 말로 꺼내기 어려운 내면의 감정들이 상징과 이미지로 피어나, 조용히 내 마음을 두드리는 편지 같은 것이라고.


‘지금 남편이 아닌 다른 인연이 진짜’라는 것은 어쩌면, 남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외로움. 그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쌓여간 서운함.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보호받고 싶고, 따뜻한 눈길로 돌봄 받고 싶었던 간절한 내 마음이 신의 형상을 빌려 내게 말하는 것일 수 있다.


군인, 선생님, 딸을 키우는 남자. 그 디테일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상징들이다. 내면 깊은 곳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다정한 사람, 딸을 소중히 여기며 ‘아들 아들’하며 남성 우월주의에 빠져 있지 않은 사람을 내가 원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즉 꿈속에서 만난 그 ‘신’은, 외부의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 오랫동안 내 안에서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보던 ‘진짜 나’였을 수도 있다.


며칠 뒤, 구미 이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흥분한 채로 목소리를 높였다.

“너, 지금 남편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났어야 해. 하늘이 정한 네 인연은 따로 있었단다. 한 명은 군인이고, 한 명은 선생님이야. 그 두 사람이 너의 진짜 인연이래. 그 사람들이 지금 너를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단다.”

숨이 멎을 듯했다. 그녀는 내가 꾼 꿈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꿈속 그 존재가 했던 말과 단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며칠 뒤. 같은 아파트 6층에 사는 한나 엄마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상한 꿈을 꿨어. 무럭 엄마가 결혼을 한다지 뭐야.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 다시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 참, 웃기지?”

그녀는 웃고 지나갔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심장이 뚝, 하고 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전화. 이번엔 스님이셨던 큰 이모였다.

“이상한 일이야. 기도 중에 네 결혼식을 봤어.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그 결혼식을 도와주고 있었어. 너무 선명했어, 마치 현실처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이건… 무언가가, 나를 향해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어머니는 구미 이모의 말을 듣고 무속인을 찾아가 이 일을 상의했다. 무속인은 담담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큰 따님, 지금 남편 말고 다른 인연 있습니다. 그 사람 만나야 마음이 편하고, 운이 열려요.”


나는 전생과 업을 믿는다. 아니, 믿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삶에서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반복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조심스레 바라보게 되었으니까. 특히 업이라는 실타래는, 같은 색의 인연들을 촘촘히 엮어 한 집안이라는 그물망 안에 불러들인다고 알고 있다.


나는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실마리를 찾고자, 나라는 존재의 업연이 고스란히 담긴 가족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에게는 첫 부인이 있었다. 사랑받던 새댁이었고, 기쁨 속에서 아이를 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낳다가 목숨을 잃었다. 아이도 며칠 뒤, 어머니를 따라 떠나버렸다. 슬픔에 잠긴 집안은 깊은 침묵에 잠겼고, 몇 해가 흐른 뒤, 한 여인이 새로 들어왔다. 아들 둘을 낳고 첫 남편과 사별한 여자. 그녀가 바로 나의 친할머니였다. 그리고 그 슬픔의 집에서 다시 태어난 생명이, 나의 아버지였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편의 집안도 닮아 있었다. 남편의 친할아버지에게도 첫 부인이 있었고, 그녀는 두 아들을 낳았지만 그 아이들 역시 어린 나이에 줄줄이 세상을 떴다. 긴장과 상실이 감도는 그 집안에, 또 한 여인이 들어섰다. 그녀 또한 일곱 명의 아이를 낳은 후 사별의 아픔을 간직한 채, 두 번째 아내로 선택된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아들이, 나의 시아버지였다.


너무나 비슷했다. 두 집안의 여인들은 모두, 첫 결혼에서 남편을 잃고, 첫 결혼에서 낳은 아이들을 두고 두 번째 가정에서 새로이 어머니가 되었다. 낯선 공통점들이 마치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문득 누군가 속삭이는 듯했다.

“너도 우리와 같은 운명이야.”


나는 남편의 첫 부인이다. 그리고 나에게 남편은 첫 남편이다. 집안의 흐름을 따르자면, 나는 첫 번째 결혼에서 아이를 품지 못하거나, 품은 아이를 잃어야만 하는 운명이다. 그리고 결국, 다른 여인과 남편을 나누어 갖고, 그 여인이 낳은 아이를 키워야만 하는 여자. 심하면 목숨을 잃은 수도 있고.


실제로 나는 오랜 시간 아이를 품지 못했다. 유산은 반복되었고, 자궁 외 임신으로 죽을 고비도 있었다. 반복된 유산으로 마음은 점점 깎여나가던 그 시절, 남편은 무심히 말했다.

“아이는 밖에서 나올 테니, 너는 돈이나 벌어.”

그 말은 내 심장 깊숙한 곳에 칼처럼 박혔다. 시간이 흘러도, 사소한 바람만 불어도, 그 말은 다시 날 찌르곤 했다. 만약 정말로 그 말대로 되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나는 결국 아이를 안았다. 작은 몸에 따스한 체온을 품은 채, 나는 울었다. 내 손에 있는 이 아이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다.


그러나 집안의 업연은 이렇게 속삭였다. 아이를 얻었으니, 이번엔 남편을 놓아야 한다고. 그러고 다른 남자를 만나 두 번째 부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들의 삶을 반복하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는 삶이었다.


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나의 이번 생 남편이라는 이들에게 무릎을 꿇고, 조용히 기도했다.

“내 새 남편 될 인연이여, 우리 서로 만나면 업연이 반복될 뿐입니다. 당신도 고생, 나도 고생입니다. 우리는 만나지 않는 게 서로를 위한 길입니다. 부디 나와의 인연을 놓고,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소서.”

그리고 조용히, 나를 이루는 피 속에 흐르는 모든 할머니들의 이름 없는 얼굴을 떠올리며 속삭였다.

“할머니들, 제가 부인되고 어미 되어 살아보니, 당신들의 깊은 한이 느껴져요. 진심으로 위로드립니다. 이제는, 부디 편히 쉬세요.”


내가 꾼 꿈들과 내가 겪은 이 모든 일들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단지 나만의 상상이었을까. 처음엔 그저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알게 되었다. 조용한 밤, 마음 깊은 어딘가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낯설고도 익숙했다. 그건 분명 나의 이야기였지만, 동시에 우리 집안의 여자들, 오래된 생들의 이야기였다. 이 땅에 발 딛고 살아온 이들, 외롭게 버텨낸 존재들의 고요한 속삭임처럼 들렸다.

무의식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건 마치 깊은 바다와도 같다. 인류의 슬픔과 지혜, 외로움과 사랑이 한데 모여 출렁이는 바다. 그 속에서 일어난 작은 파문 하나가 나를 흔들었고, 그 진동은 내가 살아가는 길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이 묘한 직감들,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이 세계 전체와 연결된 하나의 목소리이며, 내가 살아가는 방식 하나하나가 이 세상에 작지만 깊은 흔적을 남긴다고. 내 고통도, 그 속에서 피어난 작은 깨달음도 인류의 무의식 속 어딘가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 믿는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면에서 들려오는 신의 목소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다. 그가 다가오면 조용히 귀 기울인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그를 따르진 않는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수많은 오류를 알기에,

나는 언제나 묻는다.

“나는 진정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삶의 이정표를 다시 세운다. 그 기준이 되는 것은 바로 ‘십선(十善)’. 선한 말, 선한 행동, 선한 생각. 그 단순하지만 깊은 원칙이 나를 지키고, 이 세상의 어딘가에 또 하나의 작은 빛으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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