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지만, 아직도 우리의 잠자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모기의 ‘위잉’ 소리는 여전합니다. 모기는 단순히 가려움을 유발하는 불청객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모기가 옮기는 병 중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감염병이 있습니다. 바로 말라리아입니다. 최근 뉴스에서도 ‘말라리아 유행’이라는 기사를 접하셨을 텐데요.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말라리아가 정말 우리 가까이에도 존재할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말라리아를 아이 건강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말라리아는 플라스모디움(Plasmodium)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된 아노펠레스 모기에 물리면서 발생합니다. 모기는 단순히 바이러스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기생충’을 옮길 수도 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성인에게도 심각한 병이 될 수 있지만, 특히 5세 미만의 어린이는 면역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더 큰 위험에 처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말라리아 청정국’은 아닙니다. 주로 휴전선 인접 지역을 중심으로 5월부터 10월 사이에 삼일열 말라리아가 보고되고 있으며, 군인과 지역 주민뿐 아니라 야외활동이 잦은 일반인에게도 위험 요인이 됩니다.
말라리아는 단순히 위생문제 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질병입니다. 즉, 잘 씻고 청결을 유지한다고 예방될 수 있는 질환은 아니라는 이야기이지요. 그보다는 환경과 기후 변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모기가 살고 번식하려면 일정한 기온과 습도가 필요한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모기가 생존할 수 있는 지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없던 고위도 지역이나 산간 고지대에서도 말라리아가 보고되는 이유입니다. 여름철 장마 후 집 주변의 고인 물, 농업용 저수지나 웅덩이는 모기의 산란지가 되며, 산림 파괴나 도시 개발 같은 환경 변화도 사람과 모기의 접촉 기회를 늘립니다. 따라서 말라리아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생태계의 변화’가 직접적으로 아이들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서 말라리아가 시작되면 감기와 비슷하게 보여서 초기에 놓치기 쉽습니다. 감염 후 1~4주 정도의 잠복기를 지나 갑자기 열이 오르고 오한, 두통, 근육통, 극심한 피로가 동반됩니다. 아이가 기운 없이 누워 있거나 구토나 설사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삼일열 말라리아의 경우 3일마다 주기적으로 고열이 발생했다가 호전되는 특징적인 양상을 보입니다. 하지만 간 속에 잠복한 기생충 때문에 몇 달 뒤 갑자기 재발할 수도 있어 치료가 끝난 뒤에도 관찰이 필요합니다. 상태가 심해지면 빈혈과 황달이 나타나고, 의식이 흐려지거나 경련을 하며 호흡 곤란까지 올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증상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으므로 고열이 지속될 때는 ‘혹시 말라리아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이 필요합니다.
말라리아는 일반적인 해열제나 감기약으로는 치료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빠른 진단과 전문적인 치료가 필수입니다. 병원에서는 현미경 검사나 신속항원검사로 원충 감염 여부를 확인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한 삼일열 말라리아는 클로로퀸이라는 약을 3일간 복용해 혈액 속 기생충을 없애고, 이어서 프리마퀸을 14일간 복용해 간 속 잠복 원충까지 제거합니다. 프리마퀸은 특정 유전적 효소(G6PD) 결핍이 있는 경우 위험할 수 있으므로, 필요하면 검사를 먼저 시행한 뒤 안전을 확인합니다. 만약 중증으로 진행한 경우에는 정맥 주사용 아테수네이트 치료가 필요하고, 이후에는 다른 복합 경구제로 이어서 치료해야 합니다. 아이의 나이와 체중에 따라 투약량이 달라지므로 반드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예방은 무엇보다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생활 속에서는 집 주변의 고인 물을 없애고, 방충망을 점검해 모기의 유입을 차단해야 합니다. 아이가 자는 침대나 유모차에는 모기장을 씌우고, 옷이나 텐트에 퍼메트린을 처리하면 모기 접근을 줄일 수 있습니다. 피부에는 아이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된 성분의 기피제를 지침에 따라 발라야 합니다. 해외여행을 계획한다면 방문 지역의 위험도에 따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에게 아이에게 맞는 예방약을 미리 상담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은 말라리아 고위험 지역이므로 예방약 복용이 적극 권장됩니다.
최근 WHO가 권고한 말라리아 백신은 아프리카 지역 영유아를 대상으로 접종되는 백신입니다. 아직 한국 아이들이나 일반 여행자에게 권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라리아 예방 전략의 한 축으로 도입되고 있습니다. 다만 백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여전히 모기장, 기피제, 예방약 같은 기존의 수단이 가장 중요한 예방법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살충 처리된 모기장 보급, 실내 분무 소독, 유충 서식지 관리가 가장 효과적인 예방 전략으로 권고되고 있습니다.
부모가 꼭 기억해야 할 점은 간단합니다. 첫째, 아이가 여름철 혹은 해외여행 이후 갑작스러운 고열을 보이면 말라리아 가능성을 의심하고 지체 없이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이때 여행력을 빠뜨리지 않고 의료진에게 알려야 진단이 지연되지 않습니다. 둘째, 처방받은 약은 반드시 정해진 용량과 기간을 끝까지 복용해야 합니다. 셋째, 일상에서 모기장을 사용하고 기피제를 바르는 생활습관을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넷째, 여행 전에는 반드시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통해 아이의 나이와 체중에 맞는 예방약을 확인해야 합니다.
말라리아는 더 이상 먼 나라의 병이 아닙니다. 기후변화와 환경의 변화 속에서 언제든 우리 아이에게 다가올 수 있는 감염병입니다. 부모의 작은 관심과 생활 속 실천이 아이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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